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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 Feb 06. 2022

우리 집 마당에 오소리가 나타났다.

단독주택에서 계절의 두 바퀴를 돌자 생기는 일들.

# 집에 오소리가 나타났다. (정확히는 오소리로 추정되는 생명체가 등장했지만 그냥 오소리로 부르기로 했다.) 오소리가 나타났다는 엄마 목격담에 CCTV를 돌려보니 진짜 오소리가 마당을 둘러보고 지나갔다. 한겨울에 웬 오소리? 신기하면서도 쟤는 뭘 먹고사나 걱정도 됐다. 알고 보니 그 오소리는 옆집 고양이 밥을 뺏어 먹고살고 있었다. 그것 역시 엄마를 통해 알게 됐는데, 옆집 아주머니께서 고양이들을 혼내는 소리를 들으셨다고 했다. "야 이 바보들아, 너네 밥을 다 뺏기고 있어!" 뭐 이런 내용이었다. 그러고 보니 옆집 고양이들도 우리 집 마당을 자기들 놀이터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데. 거기에 오소리 가족도 합류했나 보다. 


어제저녁 뀨가 침대에 누워 이야기 하나를 해달라고 했다. 겁쟁이 사자가 겁이 많다는 이유로 자꾸 놀림을 받게 되자 살던 곳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사자는 걷고, 걷다 한 마을로 들어가게 된다. 풀숲에 숨어 고양이 밥을 뺏어먹던 겁쟁이 사자는 어느 날 오소리를 만난다. 고양이 밥을 두고 경쟁을 벌이던 사자와 오소리는 곧 친구가 됐다-는 이야기였다. 반쯤 잠들어 이야기를 듣던 뀨는, 그 이야기가 무척 마음에 든다고 했다.


오소리 이전, 우리 집 마당에는 매가 왔던 적도 있다. 작년 이맘때쯤, 푸다다닥! 큰 소리에, 밥을 먹던 가족들이 일제히 마당을 쳐다보았다. 커다란 새 한 마리가 자그마한 산비둘기 목을 누르며 제압하고 있는 현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선명하고 노란 눈을 마주 보게 되자 나도 모르게 먼저 눈을 피하게 됐다. 범상치 않은 새인 게 틀림없었다. 야생조류 관련 단체에 사진을 찍어 문의했더니 "참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천연기념물 제323-1호. 참매였다. 우리 집에... 참매가 왔었다. 지금 생각해도 놀랍다. 


오소리랑 참매. 수시로 와서 물을 마시고 놀다 가는 (옆집) 고양이들. 예상치 못한 손님들이 오는 게 무척 재밌다. 


차례로 올해 처음 등장한 오소리(추정 생명체), 작년 들렀던 참매(눈을 보아라 범상치 않다), 수시로 오는 옆집 고양이. 마당이 있어 마주하게 되는 예상치 못한 손님들.


# 올해 첫눈이 쌓인 날. 우리는 당황하지 않았다. (뿌듯.) 겨울이 오기 전, 시장을 지나다 먼지 쌓인 눈삽을 보고 미리 사놨던 터였다. 장비를 챙겨 들고 주차장 앞쪽을 쓸어내기 시작했다. 마침 주말 오전인지라 옆집 어르신들도, 맞은편 집 어르신들도 하나 둘 나와 눈을 쓸어냈다. 동네잔치라도 열린 듯 오랜만에 얼굴 보고 인사를 나눴다. 어른들께서는 다정한 목소리로 아기는 잘 크는지 챙겨 물어봐주셨다. 나야 새 이웃이지만, 몇십 년 이웃으로 살아오신 어르신들은 서로 '거 왜 지금 나오나' 핀잔을 줘가며 능숙하게 눈을 쓸어내셨다. 뀨는 신이 나서 내가 쌓아놓은 눈을 다시 헤치고 다니며 뛰어놀았다. 골목길이 깔깔 거리며 웃는 아이 웃음소리와 여럿이 눈삽으로 바닥을 긁는 소리로 채워졌다. 그 소리와 모습이 가만가만 좋아 보였다. 


1년 전에는 못 느껴본 느낌이었다. 단독주택 생활 첫겨울에는, 눈이 오면 바로 쓸어내야 한다는 걸 몰랐다. (그래서 제대로 된 눈삽도 없었다.) 다섯 집이 한 칸씩, 함께 쓰는 우리 집 앞 주차장은 집 지붕에 가려진 북향이라 눈이 쉽게 녹지 않는다. 포근하게 눈이 쌓인 직후, 그러니까 눈이 잘 쓸릴 때 치워놓는 게 최선이다. 제때 안 치워서, 차가 얼어붙어 문짝을 떼어내야 했던 지난겨울의 경험으로 알게 된 일이다. 가만 보니, 옆집 어르신은 눈삽을 들고 나오면서 차에 시동을 걸어놓으신다. 배터리 방전도 막고, 눈도 쉽게 녹았다. 오호, 그렇구나! 하나 또 배운다. 내년에는 조금 더 수월하겠구나 싶다. 







마당 있는 집에 살고 싶어 단독주택에 전세로 들어와 살고 있습니다. 

이사 오기 전부터 시작해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나 다시 봄을 맞은 이야기를

브런치북 <마당 있는 집에 살기로 했다>로 엮었습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with-yard


미처 못 남긴 글은 매거진에서 종종 이어가고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름 끝, 봉선화 물을 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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