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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 Jun 20. 2024

미국 뉴저지 '임장'을 다녀왔습니다_1편

미국 집, 구할 수는 있는 겁니까?

  주어진 시간은 수, 목, 금 사흘. 이 사흘 안에 나 홀로 미국에 가서 우리 가족이 살 집을 구해야 했다. 정해놓은 건 미국 뉴저지, 가능하면 버겐카운티 내에서 집을 구하겠다는 것 하나뿐이었다. 버겐카운티는 뉴저지 21개 카운티 중 면적이 가장 작은 곳이지만... 그 작은 면적이라 함이 서울과 비슷한 크기다. 한국어도 잘 못하고, 서울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외국인이 단 사흘 동안 서울을 돌아다니며 가족이 살 집을 구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하다못해 싱글하우스에 살 것인지, 타운하우스인지, 듀플렉스인지, 아파트인지조차- 정해놓은 게 없었다. 사실 정해놓을 수도 없는 구조다. 미국은 주로 Zillow라는 부동산 플랫폼에서 매물을 보고 움직이는데 괜찮은 매물은 거의 바로 계약 체결이다. 괜찮아 보이는 집들을 추려서 리얼터에게 물어보면, 거의 다 이미 계약이 끝난 상태였다. (리얼터는 전미부동산협회에 가입한 전문 부동산중개인을 뜻합니다!) 


  그래서 좋은 리얼터를 만나는 게 사실 첫 관문이다. 리얼터가 Zillow에 올라가기 전 좋은 매물을 먼저 잡아 '쇼잉', 즉 '임장'을 시켜주는 게 주요했다. 감사하게도 능력 있는 리얼터를 만난 덕에 거의 뭐, 실시간 임장이 이뤄졌다. 매물을 가진 다른 리얼터에게 수시로 전화하며 '가도 될까요? 그럼 내일은 되나요?'를 무한 반복해 준 리얼터 덕에 그래도 하루 8개씩 집을 봤다. 그래. 돌이켜보니 또 감사한 사람만 생각난다. 


  맨해튼과 가장 가까운 포트리(Fort lee)에서는 비교적 최근에 지은 듀플렉스를 둘러봤다. 두 집이 벽을 대고 맞닿아 있는 집으로, 한국에서 말하는 땅콩주택 구조다. 층고가 높아 쾌적하고 지하에 업무 공간 꾸리기도 딱 좋다. 다만 내가 본 집은 지하 공간을 분리해 줄 내부 문이 없어서 일단 탈락. 동네를 두고도 고민이 많았다. 포트리는 버겐카운티 대표 코리아타운 중 하나다. 한국인이 많다는 건 뚜렷한 장점이다 뚜렷한 단점이다. 무엇보다 아이가 한국인이 많은 지역에서 더 잘 적응할지, 반대로 없는 곳이 나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막판까지 고민 끝에, 코리아타운 너무 가까운 곳은 가지 말자고 일단 결론 내린 참이었다. 지하에 문이 없다는 걸 핑계 삼아 빠르게 다음 동네로 이동했다. 


  테너플라이(Tenafly)는 '학군지'로 유명한 동네다. 학군으로 유명한 동네는 유대인과 한국인이 많다. 주로 유대인이 먼저 학군지로 이동하면 이어서 한국 사람이 많이 들어간다고들 한다. 가자지구 전쟁 이후 반유대주의 공격이 발생하면서 테너플라이 학교들이 며칠 문을 닫기도 했다고. 여기서 말하는 '좋은 학교'는 주로 중고등학교 얘기여서 초등학교 학부모인 나는 딱히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포트리에서 테너플라이를 향해 가는 길에 '어마어마'한 숲을 보고는 입이 떡 벌어졌다. 한겨울(맞습니다, 당시는 2월 한겨울이었습니다!), 나뭇잎 하나 없는 앙상한 나무로 느슨하게 들어찬 숲이 이렇게 웅장하게 느껴지면. 한여름 온통 녹색잎으로 가득 찬 숲은 대체 어떤 모습일까- 생각만 해도 벅찼다. (슬픈 건, 정작 너무 바빠서 아직 그 숲을 다시 가보지 못했다는 것...) 이런 숲 가까이 살면 너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을 활짝! 열고 집을 봤지만! 테너플라이 집은 정말 정말 비쌌고, 정말 정말 귀했다. 예산을 벗어나더라도 구경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볼 수 있는 집 자체가 거의 없었다. 아. 외국도 학군지 집 귀한 건 똑같구나- 알게 된 순간이랄까. 테너플라이에서 본 유일한 집은 콘도였다. 아쉽게도 사무 공간을 꾸릴 별도 공간이 안 나와 여기도 탈락. 그래도 덕분에 콘도의 장점은 확인할 수 있었다. 수영장과 운동시설, 공용 공간이 있다는 것, 출입 관리가 엄격해서 안전할 것 같다는 것. 공동 주택이지만 건물이 낮아서 아늑해 보이고 집 안에 계단이 있는 2층 구조여서 꽤 넓었다. 사실 그때는 미국 산다는 게 무섭게(!) 느껴져서 안전한 콘도 자체가 좋은 선택지로 보였다. 물론, 나한테는 안 맞았지만. 

테너플라이 콘도. 출입 관리가 엄격했다. 싱글하우스 관리가 부담스럽다면 좋은 선택지일 듯!


  다음 기억나는 집은 클로스터(Closter)다. 여기는 거의 유일하게 Zillow에서 미리 보고 콕 집어서 들러본 곳이었다. 숲 속 한가운데 있는듯한 느낌을 주는 전형적인 싱글하우스, 단독주택이었다. 업의 특성상 업무 공간에 가로, 세로, 높이 제한 조건이 있었는데 그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완벽한 별도 공간이 있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었다. 포트리에서 클로스터까지 쭉 올라오며 '이러다 집을 못 구하는 건 아니겠지'라는 불안감이 엄습해 오던 순간이기도 했다. 이 정도면 되는 거 아닌가, 이 정도면 너무 좋은 거 아닌가!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리며 집을 둘러봤다. 집에 비해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월세에, 탁 트인 거실 구조까지 '합격'이었다. 대나무로 시선을 차단한 근사한 뒷마당 의자에 앉아 책을 읽으면 너무 행복하겠다 싶었다. 그. 런. 데. 그렇게 아름다운 그 집의 결정적인 단점은 '도로'였다. 2차선 도로에 면해있는데 실제 가서 보니 차량 통행이 꽤 많은 도로였다. 사진으로 봤을 때 그림 같기만 한 그 뒷마당에 실제 잠시 앉아있어 보니 자동차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아. 느낌이 왔다. '이거, 쉽지 않겠다.'


'도로 앞 집'으로 이름을 붙이고 일단 후보로, 주머니에 넣어놓기로 했다. 


사진1 테너플라이 콘도. 사진2와 3은 클로스터 '도로 앞 집'의 뒷마당과 도로. '임장' 즉 현장에 가봐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 뒤로도 데마레스트, 크레스킬, 파라무스, 올드타판까지... 임장은 계속됐다. 데마레스트는 집 내부 구조가 너무 오밀조밀했다. 뭔가 느낌이 안 왔달까. 크레스킬 집은 두 곳 다 너무 마음에 들었지만 한 곳은 이사 날짜가 안 맞았고, 한 곳은 업무 공간으로 쓸 지하가 마감이 안 돼 있었다. (그때도 나는, 이대로면 집을 못 구하고 귀국해야 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에 그냥 마감 안 된 시멘트 지하에서 일할까...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파라무스 첫 번째 집은 흔히들 3-Bay라고 부르는 구조였는데 한 줄로 길쭉한 집이 뭔가 어색했다. 파라무스 두 번째 집을 보러 갔을 때는 급기야 해가 완전히 저버려서 휴대전화 손전등을 켜고 마당을 둘러봐야 했다. 그 집 역시 큰 도로에 바로 맞닿아 있었고, 앞마당에 흙 한 줌 없이 돌바닥으로 모양을 내놔서 또 바로 탈락. 다음날 타운하우스를 구경하러 더 북쪽으로 올라가 올드타판까지 갔을 때는, 이러다 캐나다까지 올라가는 아닌가... 살짝 울고 싶었다. 올드타판 타운하우스는 단지도 크고, 층고가 높아 쾌적하고, 공간도 널찍하고 좋았지만, 잔디가 깔린 공용 마당에서 아이들이 뛰어놀면 안 된다 하길래 바로 나왔다. 


마음에 들어도 인연이 안 닿으면 도리가 없다. 가로로 긴 집은 뭔가 내부가 어색. 타운하우스는 높은 층고가 큰 장점인데 마당을 마음껏 못 쓰는건 우리 가족에 안 맞았다.


우리 가족의 미국 생활이 나한테 달렸다. 그런데 볼 수 있는 매물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미국 집, 구할 수는 있는 겁니까...?


 (_2편으로 이어집니다. 네, 곧 써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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