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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 Aug 06. 2023

기쁨을 보낼 용기

대학생에 관한 편지, 이경

    유희씨, 고백부터 하자면 저는 혼자 있을 때 지나치게 무른 사람입니다. 길거리든 퇴근길 버스든 사람들이 있는 사무실에서든 함부로 마음이 터져버리기가 일쑤입니다. 그렇다고 길거리에서 눈물을 터트릴 수는 없어서 눈가를 훔치면서 피곤한 척 하품을 해댑니다. 아니면 먼지가 들어간 척 눈을 비비거나요. 이런 나약함은 날이 좋을 때 갑자기 커지기도 합니다. 새파란 하늘과 선명하게 펼쳐진 길거리를 보자면, 어쩌자고 그렇게 아름다우냐고 생각하지요. 이것은 제가 비감(悲感)을 지나치게 사랑하는 탓입니다. 고르지 못하고 들쑥날쑥한 마음 속 해구에 발이 푹 빠진 탓입니다. 강한 햇빛이 제 마음을 바싹 말려나가는 것을 보면서도 자맥질을 멈추지 못하는 탓입니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다운 채로 즐기지 못하는 습성은 너무 오래된 것입니다. 안산을 오갈 때도 저는 생경하게 닥쳐오는 기쁨들이 곧 저를 떠나가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롯이 문학을 위한 수업 시간들, 글쓰기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골몰하던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 로망이나 취미 정도로 애써 미루려 했던 것들을 본업으로 삼는 기쁨 같은 것들 말입니다. 또는 약간 추웠던 회색 강의실과 의자와 일체형이었던 책상, 길쭉하게 난 창을 따라 빈 강의실에 비스듬한 형태로 비치던 햇빛, 합평할 작품의 인쇄물을 하나씩 들고 가던 손길들 같은 것을요.      


    어느 하루는 그랬습니다. 전공 수업만 듣던 날이었고, 2학년 1학기 기말 고사가 멀지 않은 날이었지요. 오전부터 이른 오후까지 걸친 수업을 듣고 간단하게 끼니를 챙긴 후에 이런저런 인쇄물, 노트와 필기구를 챙겨 들고 도서관으로 갔어요. 얇은 후드티에 슬리퍼를 질질 끌고 기숙사를 나와 밖이 까무룩하게 어두워질 때까지 도서관 구석에 앉아 창작 실습 수업에 낼 과제를 이러저리 써보는 데 푹 빠져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니 배도 고프고 기력이 빠진 상태라 터덜터덜 밖으로 걸어 나오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쓰기만 해도, 쓰는 것을 생각하기만 해도 괜찮구나. 쓸모없는 짓을 하는 것은 아닐지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그리고 곧 슬퍼졌지요. 지금은 그렇지만 졸업을 하게 되면 이런 시간에 살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어느 정도 사실이긴 했지만, 대체 불안의 심지가 얼마나 깊이 박혀있는 것인지 지금도 정확히 가늠을 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더 오래 살다 보면 이 양가적인 감정이 나아질 일이 생길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아름다운 것에 너무 많은 마음을 두지 말아야 할 텐데, 작은 슬픔과 상실은 밀려가는 파도로 보내야 할 텐데. 매번 용기가 없는 탓에 쉽지가 않습니다.      


    얼마 전에는 적선동에서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이른 점심을 함께 먹고 디자인 소품을 파는 가게에 함께 구경을 갔습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것들이 가득한 가게였지요. 한참을 둘러보다 마음에 드는 것을 하나 골라 계산하려는데, 계산대 한 켠에 ‘행복해지는 부적’, ‘모든 일이 잘 풀리는 부적’ 그리고 ‘용기가 나는 부적’을 팔더군요. 깜찍한 캐릭터들이 몽글몽글한 구름으로 만든 글씨에 앉아 있는 모양새와 말들이 너무 따뜻해서 하나씩 샀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친구들에게 행복과 행운의 부적을 나눠 주었지요. 저에게는 용기의 부적을 남겨두었습니다.      


    유희씨, 당신께도 편지를 쓸 때마다 무력하고 유약한 마음에 대해서만 적는 것 같아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마음이 필요해서 글을 쓸 때면 가로수 하나 없이 명명백백한 길을 걷다가 작은 그늘을 발견한 것 같다고 느낍니다. 그늘 아래에서는 숨을 고를 필요가 있지요.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더 마음을 놓고 숨을 골랐습니다. 다음 그늘을 찾아 또 편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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