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습니다. 시월의 마지막 주말입니다. 멀고 가까운 당신, 잘 지내십니까.
이 계절이 되고 보니 저도 혼자 나와 산지 꽤 되었습니다. 저는 미간을 쥐어짜며 일을 하다가도 늦은 저녁에는 운동을 하러 갑니다. 가서 땀을 잔뜩 흘리며 강사가 가르쳐주는 여러 동작을 따라 하다가 집에 와서 씻으면 금세 곯아떨어지곤 합니다. 그 사이사이에 잘 만들어 먹기도 하고, 사 먹기도 잘하고요. 청소도 빨래도 먼지가 나뒹굴거나 냄새가 날 정도로 방치하지 않고 곧잘 해치우지요.
어느 정도는 보람차고 괜찮다고, 아주 약간이라도 멋있다고 표현할 수 있는 구석이 있는 생활을 이어가려고 합니다. 저는 그런 데서 안도감을 느낍니다. 다른 사람들이 저를 생각할 때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바라온 일입니다.
제가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으로 자립하는 일에 십 수년의 시간을 쏟은 것은 그런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압도적으로 뛰어나거나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해도 자격 미달처럼 보이지는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때로는 이 악물고, 때로는 뒤돌아 울어도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서야 겨우 보통의 인간 정도로 살아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점점이 괜찮은 생활입니다. 다만 나아가지 않는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남들이 삶에 새로운 의미를 찾고 뜨겁게 연애를 하고 치열하게 성과를 이뤄가는 무대 중심부에서 비껴 난 어느 한구석에서 존재하는 듯합니다. 저는 그저 짜인 패턴을 반복하다 작은 오류가 생길 때조차 쉬이 버벅거립니다. 수많은 게임에 산재하는 NPC처럼 말이지요.
제가 하는 모든 활동은 유효하지 않은 플레이로 기록되고 새로운 관계는 맺어지지 않습니다. 같이 일하기 괜찮은 사람, 성격 나쁘지 않고 성실한 친구의 역할을 잃지 않으려는 것만으로도 애를 쓰며 삽니다. 진전은 없습니다. 저는 이 게임에 갇혀 있습니다.
플레이어는 누구일까요? 어느 때에는 이 말이 우습게 읽힐 겁니다. 그저 상념에 깊이 빠져 보일 것입니다. NPC의 마음을 넘어서는 그때, 그럴 테지요. 다시 올 깊은 계절에는 이런 질문 같은 것은 하지 않는 모습을 그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