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 일기 쓰기 프로젝트(15/365)
아파서 회사를 조퇴했다.
점심 먹고 잠깐 쉬는데 언니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분명 눈을 뜨고 있는데도 모자이크 된 것처럼 흐려 보이는 현상, 자주 겪어본 일이었다. 거북목 때문에 근육 경직이 심해지면 이렇게 눈이 잠깐 잘 안보였다가 곧이어 큰 두통이 온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예고도 없고 항상 갑작스러운 일이다.
눈이 뻑뻑해서 그런가 싶어 인공눈물도 넣었다. 청소도 괜히 더 열심히 하고 혹시나 싶어 스트레칭도 했다. 가끔 탈수 때문에 두통이 올 때도 있어서 그건가 싶어 물도 막 마셨다. 다 부질없는 노력이라고 비웃듯 두통이 찾아왔다. 참아보려고 했는데 잘 안됐다.
요즘 회사는 참 바쁘다. 나만 바쁜가. 사실 다른 사람 신경 쓸 여유가 없다. 내 속도가 맞는지 계속 의심하고, 더욱더 나를 몰아세웠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괜히 그랬다.
생각해보면 참 예민했던 것 같다. 솔직해지자. 이번 달 참 힘들 일이 많았다. 어느 날은 옛 친구가 꿈에 나왔다. 우리는 그 시절로 돌아가 같이 웃고 떠들었다. 소풍 가는 버스 안이었나. 어느 날은 우연히 차단 메시지 창에 들어갔다가 옛사람이 나를 용서한다는 문자를 보낸 것을 보았다. 그때를 뉘우친다고, 자기가 부족했다고. 그러나 그 문자는 작년 겨울에 보내진 것이었다.
몸 관리도 거의 하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밥은 배고플 때만 먹고, 잠은 새벽 늦게 잤다. 운동을 하진 않았지만 가끔 무리해서 걷거나 아예 누워서 보냈다. 달거리까지 겹치니 아픈 것이 당연하다.
대표님께 조퇴한다고 말씀드리기까지 고민을 많이 했다. 저번 주에도 치과 예약 때문에 연차를 썼는데, 그런 것으로 뭐라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프로젝트 일정이 미뤄질까 봐 걱정됐다. 그렇지만 2시간 정도 버텨본 결과 도저히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회사에서 점심을 대충 때울 때 걱정하시던 대표님의 눈빛이 생각이 났다. 대표님이 너무 바쁘셔서 항상 건강이 염려되었는데 되려 내가 아프다니. 역시 자기 관리가 되니까 진즉 대표님이 되신 건가 싶기도 하고 하하 생각이 뒤죽박죽이다.
대표님이 넌지시 너무 아프면 꼭 병원 가고 내일도 연락 주고 천천히 나와도 된다고 말씀해주셨다. 옆자리 언니도 괜히 머리 한 번을 쓸어 주었다. 친언니 생각이 났다. 이 회사 사람들은 정말, 이미 우리 친언니만큼이나 내 큰 기둥들이다.
사실 난 이 자리를 계속 지키고 싶다. 내가 부족한 것도 알고 여기서 많이 배운 것도 안다. 계약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요즘 무리하고 있는 게... 솔직히 맞다. 대표님이 어떻게 생각하실지는 몰라서 두렵다. 동기 언니가 이직한다고 하니까, 벌써 언니의 빈자리가 두렵다. 내 능력을 증명해야 할 거 같고, 이제 2년 차니까 좀 더 완성도 높은 일을 해야 할 거 같고, 여기서 내가 필요하게끔 해야 할 것 같고. 한 번도 취업전선에 뛰어든 적이 없는데, 그 흔한 기업 조사, NCS 문제풀이 한 번 한 적 없는 내가 내 작은 경험을 가지고 새로운 일을 구할 수 있을 지도 두렵다.
회사를 후다닥 나오는데 나오자 눈물이 났다. 정신이 무너져서 몸이 무너진 건지 그 반대인지. 병원을 들릴까 했는데 그냥 집에 가고 싶은 생각만 들었다. 걸으면서도 울고 버스에서도 울고. 뭐 대단한 일 했다고 고작 2주 힘든 것도 못 참는 내가 너무 시원찮고 한심했다. 막 언니도 보고 싶고. 동거인도 보고 싶고. 집 근처에 이르자 저 멀리서 뛰어오는 동거인이 반갑고 부끄러워서 엉엉 울었다.
집에서는 열심히 쉬었다. 자고, 밥 먹고, 목에 좋다는 스트레칭도 했다. 조금 우니까 오히려 덜 아픈 거 같기도 하다. 내일은 병원에 가야 할까? 스트레칭만으로 좀 풀리면 좋을 텐데. 정신력은 어떻게 키우는 걸까. 나는 왜 약할까. 속상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