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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담 Jan 04. 2020

1/3_회사 워크숍

매일매일 일기 쓰기 프로젝트(2/365)

 지난 양일간 여수로 워크숍을 다녀왔다. 여수의 야경은 반짝였고 아침은 어슴푸레했다. 여수는 참 독특한 곳이다. 어느 곳에서든 바다가 보이면서도 불쑥불쑥 오르막길이 솟아 있는 곳. 그래서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아름다운 곳. 

 

 간단하게 진행된 세미나에서 두괄식 보고법에 대해서 배우고, 지난 업무 태도를 반성하고, 연초 계획을 세우고. 멀지만 가까운 대표님의 말씀도 듣고. 비록 계열사(?)까지 다 합쳐서 9인밖에 안 되는 중소기업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구성원들의 사정을 속속들이 살피시는 대표님들이 계셔서 다시 한번 애사심을 다지는 기회가 되었다. 조금이나마 서로에게 하고 싶었던 말도 하고. 사실 하고 싶은 말이 더 많았는데 몇 개는 그냥 삼켜버렸다. 삼키기로 결정하니까 차라리 속이 시원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키로 쭉정이를 날려버린 것처럼 뱉어낸 말들이 있어 삼킨 말들이 더욱 가치 있어졌다고나 할까. 나의 말의 가치는 남의 쭉정이만큼이나 가볍겠지만.


  워크숍은 유익했고 재미있었는데, 집에 돌아와서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사실 이번 워크숍을 마지막으로 회사를 그만두는 언니가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그만두는 사유는 아주 축하해줄 만한 일이다. 대기업으로 이직에 성공했다고 한다. 애초에 언니는 우리 회사에 오래 머물 사람은 아니었다. 언니는 원래 서울에서 3년 정도 대기업에서 일했었는데, 본인 말로는 버티다 버티다 때려치우고 내려왔다고 한다. 퇴사를 자축하면서 잠시 인연이 있던 우리 회사에 머문 것이다. 3개월 남짓한 시간, 1년보다 길거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짧아도 너무 짧았다.


 서울서 일하면서 자소서 쓰기가 취미가 되었다는 언니. 회사에 남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았다는 언니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혼자 말없고 풀 죽은 언니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지금의 언니와는 도통 겹쳐지지 않았다. 언니는 잘 웃고, 야무지고, 이직하며 너무나 바뀌어버린 업무 내용에도 서툴지만 씩씩하게 배워나가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언니가 좋았다. 매번 언니가 깔깔 웃을만한 농담을 골라서 하고, 일부러 철없게도 굴어보고. 그런 언니랑 마지막 워크숍이라니.


 결국 눈물샘을 터뜨려 버린 것은 언니의 카톡 한통이었다. 회사 단톡방 하나하나에 인사하며 나가는 언니의 모습을 보니 정말 끝이라는 게 실감이 났다. 사실 나도 막 이렇게 눈물을 줄줄 흘리는 내 모습에 많이 놀랐다. 왜 그런지는 금방 알게 되었다. 나의 친언니가 너무나 일찍 결혼하여 출가해버린 것이 내 안의 큰 슬픔이었는데, 그때의 감정이 덩달아 살아났나 보다. 그러니 다시 못 볼 사이가 된 것 아닌데 이렇게 속이 상하고 서운한 것이겠지. 


 마지막 인사라도 제대로 할걸. 그렇지만 정말 마지막은 아니니까 그냥저냥 넘어가버렸다. 주말이 지나면 다른 곳으로 출근하겠지만, 그곳에도 언니를 웃게 해 줄 무언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너무 힘들어서 버티다 버티다 또 퇴사하고 싶어 지면 언제든 다시 우리 회사로 왔으면 좋겠다. 너무 속없고 이기적인 생각일지라도. 


 울고 나서 힘이 빠져서 잠깐 자빠져있다가 정신 차리고 욕실 청소를 했다. 평정을 되찾기에는 물청소만 한 것이 없다. 주말근무를 낀 3개월 동안 한 번도 배수구 청소를 못했더니 여기저기 빨간 물 때가 제법 끼었다. 그래도 이를 악문 칫솔질 몇 번에 거의 다 사라졌다. 방치한 기간에 비해서 많이 악독한 놈들은 아니었다. 세상 일이 이렇게 다 마음먹은 대로 되면 좋겠다. 낡은 마음에 물때가 겹겹이 낄지라도 잊지 말고 계속 솔질해 나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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