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에서 만나자
1화 보고 오기
‘이호정, 분명히 해두자.
그만하자는 내 말을 무시한 건 너야.‘
다정의 그림이 모두 사라질 뻔 한 그날, 방 안 의자에 구부정하게 앉아 홀로 분노하던 다정은 자리를 피해버린 호정에게 가기 위해 벌떡 일어났다. 방 문을 열어젖히고 발걸음을 내딛던 찰나, “악!“ 문지방에 다정의 발이 쾅 부딪혔다. 평생을 왔다 갔다 한 문지방에 별안간 발이 걸리다니, 다정은 헛웃음이 났다. 쪼그려 앉아 발가락을 살피다가 문득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하얀 문지방 위, 두 소녀가 그려져 있다. 각각 왼쪽과 오른쪽 끝에 그려져 있었고, 둘 사이가 헝클어진 선으로 이어져 있다.
6살 다정과 호정이 매직으로 끄적였던 흔적이다. 다정은 호정을 그려주었고, 호정은 다정을 그려주었다. 안경알처럼 커다란 눈에 삐죽삐죽 짧은 머리, 반바지와 운동화가 잘 어울리는 호정이. 웃느라 한껏 벌어진 입에 머리는 양갈래, 하트무늬 원피스를 입고 있는 다정이. 세월에 쓸려 조금 벗겨졌지만 여전히 알아볼 수 있었다. “이게 있었지…“ 다정은 손때 묻은 박스에서 오래된 편지를 꺼내 읽듯 미소 지었다. 다정은 더듬더듬 그림을 만져보다 문득 문지방 가운데 부분이 움푹 파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언제나 집에 없던 엄마아빠.
다정과 호정은 서로밖에 없었다.
남는 시간을 어쩌지 못해 서로의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던 그때. 책상에 이불을 덮고 그 아래 들어가 또 다른 방을 만들던 그때. 침대 위로 올라가 세상 제일가는 가수인 양 함께 노래하고 춤추던 그때. 엄마 몰래 장롱 안에 스티커를 덕지덕지 붙이곤 들켜서 혼이 나던 그때. 아빠가 마당에 만들어준 타이어 그네에 서로 마주 보고 앉아 하루종일 수다 떨던 그때. 다정은 그림 그리고 호정은 노래하며 서로 다른 일을 하더라도 꼭 옆에 붙어있던, 그때.
‘내가 너였고, 네가 나였던 그때.
우리가 우리일 수밖에 없었던 그때.‘
다정은 그 꼬마들이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갑자기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누가 누구인지도 모르게 너무나 가까웠던 학창 시절을 지나 각자의 태도, 생각, 가치관으로 갈라져 버린 20대 끝자락.
‘어쩌면 우리는 욕심부리고 있는 걸지도 몰라.
여전히 서로가 서로이길 바라는 걸지도 몰라.‘
다정은 깨달았다.
그러자 이 모든 게 유치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계속.
안녕하세요, 유이음입니다. ‘중간에서 만나자’는 마지막화인 24화까지 매일매일 연재될 예정입니다. 20화를 재미있게 읽어주셨다면 <라이킷과 댓글, 작가 소개 옆 구독 및 알림 버튼>을 눌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다음화에서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