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DONGYOON_HAN / 2015년 3월 여행 중
사회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유기체다. 사람은 자신이 속한 사회 속에 살면서 그 안의 구성원들과 함께 어우러지며 삶을 영위한다. 따라서 나 혼자서 살 수 없기에, 서로 의지하면서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게 된다. 특히 여행을 하면 사람들의 크고 작은 도움을 주고받게 되는데, 뉴욕을 여행할 때는 이상하리만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여행지에 미리 숙소를 정하고 가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우선은 무거운 짐을 놓아야 하기 때문에 해당 여행지에 도착하면 곧바로 숙소로 향하게 되고, 예약을 했으니 빼도 박도 못하고 그 숙소를 이용해야 한다 - 정말로 숙박하지 못할 시설과 환경이 아니라면 말이다. 이러한 단점을 없애려면 짐을 들고 이곳저곳의 호스텔과 게스트하우스를 방문하면서 내 입맛에 맞는 숙소를 찾을 수는 있지만, 그러기에는 등에 지고 있는 짐이 무겁다.
브라질에서 뉴욕에 넘어갈 때는 숙소를 잡지 않고 갔다. 다양한 종류의 숙소가 있었고, 외국인과의 교류도 귀찮아진 나는 굳이 호스텔이나 저가 호텔을 찾지 않고 뉴욕 근교에 있는 한인민박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래서 JFK공항에 아침에 도착해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와이파이를 이용한 끝에, 가격 대비 저렴한 한인민박에 예약 없이 무작정 찾아갔고, 여기서부터 뉴욕과 나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주소만 있으면 숙소가 어디든지 찾아 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찾아간 한인민박 숙소의 주인은 알고 보니 내가 20년 넘게 살았던 수원이 고향인 동향분이었고, 특히나 우리 집에서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곳에 살았던 한 살 터울의 동네 형이었다. 이런저런 공통된 인연의 아는 사람들을 이야기하면서 형님도 반가운 나머지 숙소에 있는 쌀 이건 집기류건 무엇이든 마음대로 사용하라고 허락해주셨고, 숙박비도 원가에 30%를 할인해주셨다. 심지어 가끔은 소주와 맥주를 사 오셔서 오래도록 밤에 술도 마시고 밖에 나가서 점심도 사 주시는 등 기묘한 인연을 통해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었다. 아메리카 대륙 여행을 마치고 유럽으로 다시 넘어가기 전, 뉴욕에서 하루를 묶었어야 할 때에도 점심을 사주면서, 숙박도 하루 무료로 할 수 있게 배려도 해 주셨다.
도움이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친누나가 뉴욕에서 어학연수차 머물 때가 있었다. 그 당시, 누나와 친했다는 형님이 있었는데, 누나가 뭘 얼마나 잘 해줬는지 누나의 지인인 그 형님은 내가 보답할 수 없을 만큼의 호의를 베풀어주셨다(물론 시간이 지나면 형님께 꼭 받은 것 열 배 이상으로 보답해 드리리라고 마음을 먹었다). 당시에 10개월 넘게 미용실을 이용하지 않았던 나의 머리카락 상태를 보면서 이건 도저히 사람이 아니라는 평을 내려주셨고, 결국 뉴저지의 미용실에 나를 데리고 갔다. 그리고 덕분에 나는 내가 그토록 원했던 예수님 머리를 할 수 있었다-형님은 그렇게 만족스럽지 않으셨던지 '이 스타일이 하고자 했던 것 맞지?'라고 재차 물어보셨다. 게다가 먹고 싶은 것 마음껏 먹으라면서 자리가 없을 정도록 사람으로 꽉 들어 찬 유명 한식당에서 소고기를 먹었고, 이튿날에는 여행 중에 얼마나 힘들었냐며 몸보신하자고 해서 흑염소 식당도 가서 제대로 원기 충전할 수 있었다. 사실 그간의 여행 동안에 한식이 얼마나 그리웠던지, 형님을 통해서 먹고 싶은 음식, 그리고 몸보신까지 한 방에 해결할 수 있었다. 이에 더해서 그동안 쌓인 피로를 사우나에서 몸을 풀라면서 '값 비싼' 찜질방 티켓도 주시고, 캐나다의 설원에 바람막이 잠바 하나 없이 무슨 관광을 하냐면서 (예전에 누나가 사 줬다는) 바람막이 잠바도 하나 주셨다. 추운 날씨에 목도리 하나 없냐며 본인이 메고 계셨던 (고급 브랜드의) 목도리를 바로 풀어서 내 목에 걸어 주시고, 앞으로의 진로와 삶, 그리고 여러 고민에 대해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시간도 가졌다. 심지어 캐나다로 향하기 전에 형님은, 제발 맛있는 것 사 먹는데 다 쓰고 아끼지 말라면서 내 손에 100달러를 쥐어 주셨다. 지금 글을 쓰는 와중에도 형님의 고마움에 압도당하는 느낌이다.
사람을 통해서 받은 인연으로 도움을 받은 것과 함께, 뉴욕이라는 사회에서 받은 도움도 있었다. 뉴욕을 상징하는 여러 가지 중 브로드웨이는 빼놓을 수 없는 뉴욕의 명소, 뉴욕의 상징이다. 평소 뮤지컬 하면 두 손에 땀이 찰 정도로 오글거리는 공연이고,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을 끝까지 보지 못하는 나로서는 나와는 맞지 않는 예술 장르라고 생각했다. 물론 한국의 뮤지컬에 대한 나의 편견과 잘못 경험한 학습 효과이기도 하지만, 그 와중에, 브로드웨이의 정통 뮤지컬은 좀 다르지 않을까 싶어서 찾아서 보기로 했다. 그러다가 숙소의 주인 형님이 Lottery라는 제도가 있는데, 운이 좋으면 뮤지컬을 저렴한 가격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셨다.
결론적으로 4번의 lottery를 시도해서 두 번의 뮤지컬을 30달러 내외로, 훌륭한 좌석에서 볼 수 있었다. 하나는 2010년 이후에 가장 흥행한 뮤지컬로 평가받는 'Kinky boots'이고, 나머지 하나는 영화로도 유명한 'Hedwig and the Angry inch'를 감상했다. 두 작품 모두 뮤지컬과 관련한 상을 수차례 받은, 브로드웨이에서도 인정하는 작품이다 보니 매우 재밌게 감상할 수 있었다. 그것도 30달러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내가 받은 감동은 원가를 내고 작품을 봤어도 그 값어치 이상을 충분히 할 수 있는 명작이었다. 그리고 내가 가진 뮤지컬에 대한 편견을 단박에 깨 부술 수 있는 훌륭한 공연이었다.
특히 헤드윅은 원작자 존 카메론 미첼(John Cameron Mitchell)이 직접 공연하는 원작 중에서도 원작을 보게 된 행운을 누렸는데, 한 사람이 대중을 상대로 이렇게 무대 위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장악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John은 주어진 대본과 애드리브를 넘나들며 관객을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본인이 구성한 2시간가량의 공연을 한 사람의 힘으로 감동과 웃음을 통해 관객들을 짓이겨버렸다. 나 또한 공연 후에 감동에 취한 나머지, 추운 날씨를 이겨내고 공연장 밖을 나서는 John을 구경하고자 무대 밖 연기자 출입구에서 기다렸고, 간단히 팬들에게 인사하는 John을 만날 수 있었다. 도전적인 마음으로 John에게 '공연 너무 잘 봤고, 실례가 안 된다면 악수를 권해도 될까요?'라고 짧게 이야기 한 뒤 John이 직접 전해주는 초콜릿과 악수를 받는 행운까지 취할 수 있었다.
별다른 도움 없이, 어찌 보면 손해가 더 많았던 여행이 10개월 간 이어지다가, 이렇게 열흘 간의 뉴욕 여행에서 사람으로부터, 사회로부터 크나큰 도움을 받다 보니 뉴욕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감사드린다. 이를 통해 여행에서 또 하나를 배울 수 있었다. 작은 도움이라도 그 도움을 받는 사람에 따라서 도움의 크기가 천차만별이고, 잊을 수 없는 고마움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