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n Dongyoon Jan 02. 2016

#8. 친구-2

Posted by DONGYOON_HAN / 2015년 4월 여행 중

보스턴에 살고 있는 이승재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다. 초등학교부터인지 그 전부터인지 언제부터 친구였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동네 친구를 술과 담배의 세계로 안내할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그 누구보다도 중독성 기호 식품에 대해 빠삭한 30대 아저씨가 되어 있다. 이 친구도 어릴 때는 누구보다 순수한 눈을 가진 소년이었는데.

보스턴과 뉴욕의 비싼 담배 가격을 대비해 타국에서 준비한 담배 뭉치들
매탄동 바보들

보름 정도 승재가 살고 있는 보스턴 근교에서 머물렀다. 보름 동안 집 밖을 나간 적이 손에 꼽을 만큼 게으른 여행자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스턴을 선택한 것은 훌륭한 선택이었다. 사실 2014년 가을에 이미 한 번 여행을 한 보스턴이라서, 그리고 당시에 마음 상했던 이벤트도 있어서 다시 방문하기 꺼려진 것도 있었지만, 보고 싶은 친구와 함께 지낸다는 것 자체로 추억을 쌓을 수 있었다.

할 일 없어 찾아 온 퀸시 마켓

승재는 직장에 다니기 때문에 출근을 한 이후에는 주로 집안일을 하면서 쉬었다. 보스턴 시내의 한인마트를 이용하면서 비빔밥, 한국 라면 등으로 아침, 저녁밥을 같이 차려 먹으면서 그간의 한식에 대한 갈증을 풀고, 친구에게는 남자 혼자 살면서 대충 넘길 수 있는 건강한 끼니를 줄 수 있었다. 또 하루는 오후에 반차 내고 근교에 호숫가에 가서 맥주를 먹으면서 삶의 여유도 부리고, 밤에는 Jameson 위스키를 부어라 마시면서 끝나지 않는 수다를 떨기도 했다. 그리고 보스턴 시내로 나가서 퀸시 마켓에서 밥도 먹고 (굳이 퀸시 마켓에서 먹지 않아도 될 음식들이었지만) 집 근처에 있는 스시집에서 배 터지게 초밥도 먹었다. 또 피츠버그에서 대학을 나온 승재는 대학 친구가 보스턴에 살아서 같이 Bar에서 다트를 하면서 맥주 먹는 소소한 즐거움도 있었다. 한국에서 할 수 있는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들이었지만 1년 이상 만나지 못한 친구와 함께 하는 시간은 편안하고 즐거웠다.

퀸시 마켓 내부

미국에서 오래 살았던 승재도 NBA를 직관한 적이 없다고 해서, 저렴한 티켓을 사서 전통이 있는 보스턴 셀틱스 홈경기를 봤다. 당연히 나도 처음 본 NBA직관이었는데 혹시나 기회가 생긴다면 누구에게도 NBA 직관은 강력 추천하는 바이다. 미국의 스포츠 산업은 그 어떠한 산업보다도 자본집약적이기 때문에 화려함에 압도당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경기의 수준도 (축구를 제외한) 세계 최고이다 보니 재미는 보장되어있다. 승재도 나도 TD Garden에서의 직관은, 물론 경기는 졌지만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그리고 경기 끝나고 집에 오는 기차에서 예쁜 여자의 전화번호를 따는 스릴 있는 이벤트도 있었다.

Let's go Celtics! (in TD Garden)
과거의 영광들, 하지만 지금은 너무 못하는 셀틱스

글로 적다 보니 생각보다는 한 일이 많아 보이지만, 정말 승재네 집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냈다. 집이 위치한 곳은 백인 '노인'들이 주로 사는 조용한 마을이라 흥미로울 요소는 전혀 없고, 심지어 집 바로 옆은 장례식장이라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사실 어릴 적 하루도 빠지지 않고 붙어 다니던 친구이다 보니 굳이 분류를 하자면 나한테는 따로 없는 남자 형제 같은 존재다. 상냥한 성격이 아닌 내가 가족, 형제 같은 사람과 함께 있으니 같이 있는 것 자체가 편안해서, 게으름을 조금 보태서 그냥 집에  눌어붙어버렸다. 그리고 청소, 빨래, 요리를 해도 귀찮기보다는 내가 사는 집안의 일처럼 할 수 있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승재가 어느 곳에서 던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승승장구했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7. 걸어야 볼 수 있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