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n Dongyoon Dec 18. 2015

#7. 걸어야 볼 수 있는

Posted by DONGYOON_HAN / 2015년 4월 여행 중

비행기에서 볼 수 있는 것이 따로 있고 버스에서 볼 수 있는 것도 따로 있다. 그러나 나는 두 발로 걸을 때만이 볼 수 있는 것들이 좋다. 걸음이 반드시 수반되는 트래킹이 그렇고 좁은 길 골목을 지나다닐 때도 그렇다.


걸을 때는, 특히 혼자 걷는 여행에서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바람들과 그로 인해 왜곡된 풍경 소리를 피할 수 있다. 자전거 혹은 오토바이로 여행하면 시원한 바람을 만끽할 수 있지만, 편안한 소리, 아늑한 바람을 느끼진 못한다. 날씨에 따라, 바다인지 산인지 그리고 내가 위치한 곳에 따라서 바뀌어지는, 즉 자연의 바람이 주는 청량함은 걷는 여행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이다. 또한 아이들이 뛰 놀며 내는 목소리,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심지어 규칙적으로 지나다니는 자동차 소리들은 걷는 여행자에게 편안한 느낌을 준다.

알란산드르 네프스키 성당 뒤로 보이는 4월의 눈 덮인 산
저렴한 물가, 준수한 맛
군필자라면 알 수 있는 바보 걸음, 그래서 바보 사자

소피아의 여행은 주로 걷는 여행이었다. 내가 가진 대충의 감을 믿고 무작정 걸었다. 지하철을 환승해야 하는 경우에는 굳이 지하철을 갈아타지 않고, 환승역에서 그대로 내려 가고자 하는 곳까지 걸었다. 한 시간 넘게 걸으며 만날 수 있었던 풍경은 – 좋은 날씨가 좋은 느낌을 가지게도 했지만 – 여유롭고 포근했다. 오랜만에 느낀 여행 중의 포근함이었다.

길 곳곳에 있는 꽃과 조형물
소피아의 작은 공원에서 발견한 조형물
잔디밭에 덩그라니 있던 벤치, 미녀들의 수다에 끼고 싶지만,
저렴하고 깨끗한 소피아 지하철

길이 닿는 곳까지 걸었다. 쌀쌀한 날씨일 줄 알았는데 두 시간 가량 걷다 보니 땀도 났다. 그래서 길가에 있던 벤치에 앉아서 쉬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요구르트로, 그리고 장수 국가로 유명한 불가리아는 그 명성 그대로 노인들이 많이 보였다. 아마 지하철, 버스를 주로 이용했으면 딱히 발견하지 못했을 많은 노년의 모습들이다. 또한 곳곳에 오래된 교회들이 많고 벤치가 많았다. 이 또한 노인이 많은 곳임을 나타내는 지표가 아닐까.

예전 공산당 본부
성 니콜라이 교회, 러시아 정교회의 영향을 받은 것이 눈에 띈다
책과 모니터로만 보던 유적지를 직접 접한 기분이란, 알란산드르 네프스키 성당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다양한 느낌을 직접 느낄 수 있는 도보 여행,

사실 걷는 여행의 가장 큰 장점이라 하면 생각을 정리하고, 또한 생각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기차, 버스를 탄 상태라면 무슨 생각이 그리 많아지는지, 오래된 과거의 작은 실수조차 기어코  끄집어내서 다시 스스로에게 실망한다. 또는 해결할 수 없는 고민을 시작해서 텁텁한 마음을 괜히 창 밖에  지나다니는 자연에 내 던지곤 한다. 그런데 걷는 여행은, 특히 한 걸음 한 걸음에  집중하다 보면 이내 고민과  잡생각이 줄어든다. 한 걸음을 내 디딜 때, 보폭은 어느 정도가 좋을까? 발이 지면에 닿을 때 뒷 꿈치가 좋을지 앞을 먼저 디딜지 생각해본다. 그러면서 내 몸의 움직임에 집중해본다. 그리고 가장 편안한 상태를 찾고, 그리고 다시 걷는다. 그렇게 걷다 보면 내 옆으로 멋진 자연이 나타나거나 행복한 웃음을 짓는 사람들이 보인다. 언제 잡다한 고민과 참회의 시간을 가졌는지 모르게 나의 여행은 좋은 것들로 채워지게 된다.


소피아는 걸으며  여행했다. 그리고 걸어야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경치와 사람, 그리고 좋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6. 목적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