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DONGYOON_HAN / 2015년 4월 여행 중
장기여행을 하다 보면 때로는 목적지를 상실하기도 한다. 목적지 상실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면, 어떤 사람은 도착한 여행지가 너무 좋아서 방문 지역 이후의 일정을 없애기도 하고, 또 누구는 건강상의 이유로 모든 일정을 일단 멈춰야 할 때도 있으며, 여행이 귀찮아진 나머지 한 곳에 눌러앉으면서 다음 목적지를 잃는 경우가 있다. 이 이외에 가장 빈번한 이유에는 도난, 분실, 부상 등으로 여행이 멈추고 다음 행선지가 없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여행자가 목적지를 잃으면, 여행의 방향을 새로 설정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일단 새롭게 목적지가 정해지면, 다시금 여행이 시작된다.
사실 루마니아, 부쿠레슈티는 내가 계획하지 않은 여행지였다. 유럽을 떠난 지 8개월 만에 다시 돌아와서, 이전에 가보지 못한 곳, 그리고 세르비아와 육로로 이동이 가능한 가까운 곳을 찾다가 정한 여행지가 바로 부쿠레슈티였다. 물론 마지막 여행지인 밀라노로 향하는 비행기가 부쿠레슈티에서 출발하는 항공권이 가장 저렴한 것도 큰 이유가 되었다.
그러면 새로운 목적지인 부쿠레슈티가 단순히 가보지 않은 곳이어서, 그리고 비용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정한 것이 옳은 선택인가? 정답은 물론 없다. 하지만 한 번 가 본 여행지를 다시 가는 여행보다, 가보지 않은 곳을 가는 것이 나는 더 좋았다. 그리고 낯선 분위기에 적응하는 나 자신을 보면서 작게나마 성장한 기분을 느끼는 것이 좋다.
당연히 내가 꼭 가보고 싶은 여행지가 있거나, 한 번 방문한 곳이어도 두 번, 세 번 방문하고 싶은 여행지가 있으면 그곳을 우선순위 여행지로 선택하게 된다. 나에게는 가족 같은 친구들이 있는 베오그라드가 그렇고 스쿠버다이빙의 천국인 필리핀 등이 세 번 이상 방문했고 그 이상 방문하고 싶은 여행지다. 그러나 이렇게 우선순위가 높은 여행지가 아니라면, 그리고 비용이라던지 다른 제반 조건들이 맞다면 가 보는 것이다.
부쿠레슈티는 야간 버스의 피로와 무거운 배낭 모두를 어깨에 메고, 호스텔을 향해 아침부터 힘들게 걸으면서 시작한 여행지다. 세르비아에서 그대로 들고 온 감기와 위경련도 낫지 않아서 최악의 컨디션으로 방문한 곳이어서, 사진처럼 멋진 여행지도 낮에 푹 쉬고 저녁에 기어나가다시피 해서 방문한 여행지다.
짧은 일정 상 루마니아의 여러 여행지를 가보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물론 그 만큼 사전에 알아보지 않고 간 것도 있지만, 짧은 시간에 내가 느낀 부쿠레슈티의 감상은 슬픈 도시였다. 의회 궁전을 위해 엄청난 세금을 부과해야 했던 노동자들과, 급격한 자본주의로 길거리에는 취한 사람들, 구걸하는 사람들이 많은 골목은 빛나는 조명과 간판들이 도시를 수놓고 있던 것과 너무 대비되었다. 그리고 흔치 않은 동양인을 보고 이유 없이 시비 거는 젊은이들도 다른 도시보다 조금 더 많았다.
그럼에도 부쿠레슈티는 후회 없는 여행지다. 대충의 지도만 가지고도 찾는 방향 감각, 어설픈 의사소통이 어딜 가도 통한다는 자신감을 부쿠레슈티에서도 얻을 수 있었다. 나의 온 정신과 마음이 여행을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실수 없이 컨디션을 조절해가면서 굶지 않고 여유 있게 여행할 수 있다는 것을 루마니아에서 한 번 더 돌아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