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자

by dyn


어제는 어린 왕자를 읽었어요.

금발의 작은 소년이 대담하게 서서 저에게 인사를 건내더라구요.

오묘하고 추상적이고 어둡기도 하며 예술적인 그런 그림들은 다들 땅을 보거나 벽 또는 허공을

응시했는데 말이죠. 인사를 하는 어린 왕자를 보았을 때 잠시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어요.


근처 카페로 가서 앞 부분을 읽다가 집에 와서

나머지 부분을 읽었는데 집에서 남은 부분을 읽길 천만다행이지 뭐예요!

책을 읽고 눈물을 흘린 게 처음은 처음은 아니었지만 (처음 눈물을 흘린 책은 ‘아낌 없이 주는 나무’)

그렇게 제 마음 속에도 어린 왕자가 살게 되었어요.


이후에 읽은 책이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인데 지금 내가 어른이 되어 버렸다는 사실이

좀 괴롭달까요. 그치만 곧 다시 잊고 살아갈 것도 알아요. 이미 어른이 되어버렸으니까요.

철이 들고 성숙한 어른이 아닌 그저 각박하고 환상 따위 없는 어른.


그치만 이런 어른이 되지 않는다면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란 말이야!



요즘 저는 사막을 걷는 기분이랍니다.

차라리 진짜 사막을 걷는다면 모래의 깊이라도 알 수 있었을 테니 그것이 더 나을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목구멍에 갈증은 없고 피부에 땀이 맺힐 정도로 덥진 않으니, 사막을 걷는다는 둥 이런 소리는

오만한 것이겠죠. 그렇지만 갈증이 있고 땀도 난다도 느껴요.


그런데도 내가 사막을 걷는 것는 것이 아니라니!


이따끔 사막을 걷는다거나, 물속에 가라앉는다거나, 외딴섬에 있는 기분이 드는 것은 아마 스스로의 부재,

시기별 방황, 성인이 되었지만 어김 없이 오는 중2병과의 작별은 언제쯤 할 수 있을까 하며 부정하진 않는.

파도들이 요동치고 방파제가 제 역할을 할까 걱정하며 별 도움이 되지도 않는 손으로 파도를 막기.



리셋. 리셋. 리셋.

분명 버튼은 있는데 고장이 난 걸까요

말도 안 듣는 리셋 버튼을 이만큼이나 누르는 사람은 아마 저밖에 없을 거예요.

아님 말구요 나는 내가 제일 중요해!

혹시나 리셋이 된 걸까 하며 기대했지만, 빵 먹은

배가 그대로인 것을 보곤 시무룩해진 나.


만약, 아무날 아무때나 원하는 시절로 갈 수 있다면 어디로 가고 싶나요.

일단 저는 초등학생 시절 제게 축구 선수 김병x (욕설 아니고 사람 이름입니다) 와 닮았다며 저를 놀려댔던

남자애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러 가고 싶어요. 찝찝한 기분으로 집에 가서 인터넷으로 김병x 를 검색하고

거울 앞에서 내 얼굴과 김병x 사진을 번갈아 보게 만든 내 설욕을 이루리라!


만약, 두 번째 기회가 있다면 쥐라기 시대로 가고 싶어요.

진짜 살아있는 공룡들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 된다면, 이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나도 받아들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내가 이 세상을 받아 들이지 못하는 건 살아있는 공룡을 보지 못해서야!



그들의 입안으로 들어가는 빵 조각은 침팬지가 먹는 사과 조각 같았다.

그 순간 나는 나를 포함해 모두를 침팬지로 겹쳐 보았다.

나는 아주 먼 과거로 돌아가서 그 시절의 지금 내가 있는 이 장소에서 살아있었을 어떤 존재를 떠올렸다.

이런식의 원초적인 것에 집중하는 순간 마치 자신이 이미 우주 안에 있었다는 듯, 깊은 우주 너머로

빨려 들어가 무한히 떠돌게 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나는 누구인가. 왜 존재하는가. 무엇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나.


이런 생각들로 머릿속이 가득 찰 때면 자신만이 조금 특별한 존재가 아닐까 하는 착각을 종종 불러일으킨다. (우주의 힘) 그래서 자신이 평범하게 느껴질 때마다 오히려 고의적으로 불러일으키는 생각들. 심지어 이것을 별로 내어 하늘에 수놓는 순간 자신만의 우주 공간이 펼쳐져 달콤한 꿈에서 깨기 싫은 것처럼 그런 순간이 존재한다. 고통이라는 우주 속에 빠졌다가 그곳에서 떠돌고 있는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곤 또다시 희망을 찾아 허우적거리는 연약하고도 사랑스러운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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