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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활곰 Jul 20. 2016

1.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게 맞다

입사하고 가장 즐거웠던 날은 입사 당일



나는 호주 워킹홀리데이 1년의 경험이 있다. 내게 많은 추억을 남겨준 경험이지만, 요즘 회사생활을 하면서 자주 떠오르는 기억은 한국으로 돌아가느냐 마느냐 친구들끼리 서로 질문을 하던 그때이다.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 중에 워홀 비자기간이 만료되어 한국으로 돌아가는 이가 생길 때마다 우리는 모여서 파티를 했다. 요리를 만들어 먹고 함께 술을 마시며 즐겁게 어울리다가도 우리는 마지막에 항상 이런 질문을 했던 것 같다.



비자만 해결되면 호주에 남고 싶은 사람?




20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 중에 언제나 손을 들지 않는 사람은 단 두 명이었다. 그만큼 호주 생활은 타지에서의 힘든 점을 상쇄하고도 남는 매력이 있음이 분명했다. 나 또한 그랬다. 호주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매 순간 했었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손을 들지 않는 2명 중 1명이었다. 한국에서 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바로 대기업 입사였다.


타즈매니아에서 찍은 여유로운 갈매기들


부모님께 생떼를 써가며, 때론 상처를 주면서까지 반항했던 내 어린 시절부터,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 까지 나는 사회가 강요하는 공부를 했다.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할 뿐이었다. 호주에서 친구들과 그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내 손이 선뜻 올라가지 않은 것은 억울해서였다. 맞다. 억울했다. 하기 싫은 공부를 그렇게 해왔는데, 안 그래도 인생이 허비되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공부한걸 진짜 날려버린다는 기분이 들었다.



결말을 내고 싶었다. 어떤 식으로든.




대기업이 나에게 보상해줄 것만 같았다. 높은 임금, 안정적인 일자리, 성취감을 주는 업무, 수준 높은 복지.. 내 인생에 대기업이 자리 잡는 순간 나는 수준 높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래서 1년의 워홀 경험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 노력했고, 대기업에 입사를 했다. 기뻤고 행복했다. 하지만 입사한 지 1년 만에 조직생활에 환멸을 느꼈고 선배들에게 실망했다. 처음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모르는 것이 많고 순진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수많은 신입들 중에 운이 없는 케이스라고.


하지만 그러한 실망감은 줄어들 낌새가 보이지 않았고, 내 희망과 열정은 볼링핀 쓰러지듯 무너지기 시작했다. 난 어지간한 마음으로 한국에 돌아온 것이 아니었다. 내가 처한 현실을 인정할 수 없었고 분노하기 시작했다. 회사가 사람이면 멱살을 잡아 집어던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회사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공격 대상을 찾지 못하고 갈 길을 잃은 내 분노는 스스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답을 찾지 못한 나는 변명했고, 내가 욕하던 선배들처럼 행동했다. 난 절대 닮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사람을 닮아갔으며, 그런 스스로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또 슬퍼했다. 악순환의 고리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발악을 하면서도 자리를 털고 일어날 생각을 못했다. 나는 정말로 길을 잃었었다.





여행을 다니며 영혼을 씻어내는 듯한 기분을 느꼇다



그때부터 여행을 했다. 멀리도 가고 가까이도 갔다. 돈 벌면서 받은 스트레스는 돈을 쓰면서 푼다더니 그 말이 맞았다. 평소 나의 이성적인 기준보다 조금 더 돈을 썼다. 그 약간의 차이가 나를 자유롭게 만들었다.


영어 학원을 다녔다. 막연히 자기계발을 위해 다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아마도 난 정말로 한국을 떠나야겠다고 결심했는지도 모른다. 30만 원이 넘는 개인 돈을 다달이 지불해가며, 졸린 눈으로 새벽에 영어 학원으로 향할 수 있었던 까닭은 날 깊게 화나게 만든 회사 덕분임을 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직 준비도 했다.


영주권 준비도 했다.


유학 준비도 했다.


각종 세미나에, 유학원에, 기관을 찾으며 내게 가장 적합한 것이 어떤 것인지 찾았다.




난 그렇게 반항하며 버텨가고 또 적응했다.







그렇게 직장생활을 한 지 만 4년이 지났고 아직 회사를 다니고 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이런저런 발자취들이 한데 모여 뭔가 구체적인 형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곧 내 회사 생활에 어떤 변화가 있을 것 같다. 여기까지 오게 만든 내 수많은 발자취들이 워드로, 피피티로, 에버노트에 그리고 A4용지에 갈겨져 있다.


한데 모아 정리도 하고 싶고, 이야기도 하고 싶고 또 도움이 될만한 형태로 누군가에게 전달도 하고 싶다.


지금부터 그런 이야기들을 할 것이다.


내가 중구난방 밟아 댔던 눈길이 누군가가에게 이정표가 될지 안될지는 모르겠지만 차근차근 시작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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