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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활곰 Nov 17. 2016

1. 터키 여행(4)

카파도키아는 겨울에 혼자 가지 말자 ㅋ

2014년 초 터키 여행에 대한 조금 늦은 기록

이스탄불이 너무 보고 싶어서 시작한 여행이라 초반에 신나게 놀고 보니, '해외여행이랍시고 괜히 길게 휴가를 받았나'하는 근원적인 질문을 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구체적인 계획이 있던 게 아니라서 블루 모스크와 하기아 소피아를 보고 나니 이제 뭐하나 하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던 것이다. 사실 9박 동안 내내 모스크를 봐도 좋았을 거 같은데, 그래도 '터키까지 왔는데'라고 되뇌며 카파도키아행을 결정하게 되었다.

따뜻하다..(읭?)

검색을 통해 교통수단, 투어, 기암석, 열기구, 동굴 교회 및 동굴호텔 등 대략적인 정보를 파악하였다.


'겨울엔 춥다'는 글도 언뜻 보긴 했지만, 그래 겨울이니까 당연히 춥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게 얼마나 추울지는 깊게 생각 안 해봤다.



시외버스(오토뷔스)

터키에서 가장 발달된 광역교통서비스

이스탄불을 제외하고 터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을 꼽으라면 주저 않고 장거리 버스(시외버스-오토뷔스)를 꼽을 것이다. 여행 시 교통수단으로 선호하기도 하지만, 장사를 하는 터키인들이 아닌 실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곁에서 볼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어딘가로 떠나는 사람들 특유의 표정을 간직한 채 터미널에 모여 티브이를 보거나, 서로 이야기를 하는 일련의 모습들이 이상하게 내 마음을 흔들어 놨다.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내 가슴속 한편에 조용한 울림이 생기는 것이 느껴졌다.


날이 어둑해질 즈음에 버스가 출발했다. 허리가 아프지 않게 좌석에 몸을 최대한 밀착하여 잠을 자다가도 소란스러운 소리에 눈을 떠보면, 어느새 휴게소에 도착해서 뜨거운 차이(터키식 홍차)로 몸을 녹이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어색하게 그 틈에 섞여 돈을 지불하고 똑같이 한잔을 들이켜면 추위로 얼어있던 몸과 긴장했던 마음이 풀리곤 했다.



오들오들 떨면서 들이킨 평범한 차이 한잔은 특별했다.


그렇게 밤과 새벽을 달려 몇 군데의 휴게소와 정류장을 거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턴 내가 꿈을 꿨던 건지, 아니면 잠에서 깨어 목격한 장면인지 구분이 안 가기 시작한다. 비몽사몽 하던 내 옆자리에 언젠가부터 자리를 잡은 웬 터키 소년은 군입대를 하기 위해 버스를 탄 모양인지, 우리나라 논산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을 내 옆에서 생생하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창 밖 가족과 친구들을 향해 연신 경례를 하다가, 버스가 그들에게서 멀어지자 혼자 한참을 훌쩍거리며 우는데.. 기골이 장대한 녀석이 그렇게 훌쩍훌쩍 우는 모습을 보니 갑자기 군대 가던 그때의 내 모습이 떠올라 급 심란해졌다.

투어를 하다보면 저런 풍경이 심심찮게 보인다.

카파도키아(정확한 도착지 명칭은 괴레메)를 가기 전에 검색을 하면서 '네브쉐히르'라는 지역에 대한 경고성(?) 글을 많이 봤다. 보통 카파도키아라고 하면 괴레메 지역을 목적지로 하는 게 대부분인데, 네브쉐히르는 카파도키아의 일부이지만 괴레메 지역을 버스로 들어가기 전에 거쳐가는 지역이다. 그런데 여러 블로그와 카페 글에서, 버스가 그곳에 정차하면 조그만 차량을 가진 어떤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여기가 카파도키아니까 내려서 밖에 있는 차로 갈아타'라고 종용한다는 것이다.


일부는 거칠게 대하기도 하고, 버스 기사와 실랑이를 벌이다가 험악한 모습을 연출한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내가 읽었던 글과 똑같은 모습이 진행되고 있었다. 아 어쩌지, 그냥 자는 척하고 버텨볼까.. 아님 나도 거칠게 맞서야 되나.. 뭐 이런저런 고민들을 하고 있는데 의외로 버스에 탄 사람들이 순순히 나가기도 하고, 또 분위기가 부드럽게 흘러가기에 나도 안내를 해주는 차량에 조용히 따라 탑승했는데, 진짜 괴레메에 순순히 내려줘서 조금 맥이 빠졌다.

꼭 낙타같이 생긴게 실제로 보면 엄청 크고 튄다.



동굴호텔(디반 케이브 하우스)

겨울에 혼자 가면 심각하게 춥고 외롭다.

카파도키아는 특이했다. 한마디로 강렬한 인상을 주는 곳이었다. 돌밖에 없는데, 그 돌의 형태가 기이하고 규모는 거대했다. 뾰족뾰족 솟아올라 있기도 하고, 가운데가 뻥 뚫려 있기도 하는 등 패턴을 종잡을 수 없었다. 거기다가 옛날 박해를 받던 기독교인들이 카파도키아 지역에 숨어 살며 바위 안에 숙소와 교회를 만들어 신앙생활을 이어 간 흔적들이 남아 있어 그 시절 종교와 역사의 일면을 눈으로 목격할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바위에 구멍을 내서 집을 만들었다. 아기자기 한게 낭만있어 보이지만 실제로 살아보면 낭만과는 전혀 거리가 먼 집일 것이다.

그래서 '무조건 동굴호텔에 숙소를 잡아야겠다'라고 결심하게 된 건 사실 우연은 아닌 것이다. 두 번 생각해보지 않고, 그런 수많은 기암괴석들을 바라보고는 바로 동굴호텔을 예약하게 되었는데 그게 '디반 케이브 하우스'였다.

숙소 화장실에서 보이는 전경. 사방에 이런 풍경이 깔려있다.

결론적으로 그 숙소는 거의 다 좋았다. 조식도 좋았고, 패기가 넘치는 젊은 사장님도 좋고, 아름다운 야경도 좋았다. 숙소를 통해 계약하는 투어는 할인을 해주고, 불편한 건 부담 없이 얘기 할 수 있게 미리 언질을 주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젊은 사장의 태도가 건네주는 신선한 에너지가 너무 좋았다.


하지만 그날 밤에 내가 뭔가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숙소의 맨 꼭대기 층을 썼는데, 방이 정말 너무 추웠다. 동굴집이라서 그런지 내가 노숙을 해도 이것보다는 안 추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가져온 옷을 몽땅 꺼내서 껴입고, 이불도 두 겹을 두르고 히터도 사장님께 부탁해서 새로 틀었는데도 소용이 없었다. 만화를 보면 캐릭터가 몸이 꽁꽁 어는 모습을 연출할 때 이를 딱딱 거리는데, 자다가 진짜 그러고 있는 내 모습을 깨닫고는 헛웃음이 나왔다. 바다와 숲이 없고, 돌밖에 없는 내륙지역의 일교차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간간히 눈까지 내리는 추운 겨울에 생각 없이 동굴호텔을 선택하다니.. 너무 생각이 없었다.


잠에서 수시로 깨었다.


밤새 이를 딱딱거리며 자고 일어나니 목과 턱 근육이 당겨왔다. 한겨울에 군대에서 겪은 추위와는 달랐다. 기온이 아주 낮아서 춥다기보다 뭔가 혹독하게 추운 느낌이랄까.. 한국에서 겪는 추위는 깔끔하게 날리는 잽이나 훅으로 맞는 느낌이라면, 이건 후드려 패는 느낌.. 하여튼 아침에 깨자마자 살아 있음에 감사하며, 팔다리를 주물러 제 기능들을 하는지 확인을 했다. 거울을 봤는데, 볼살이 쏙 빠져있었다.


 난 그때부터 다가올 카파도키아의 밤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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