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지 않아도 돼.

by daeyoung

출근길의 경로는 이렇다. 집 앞 버스 정류장에서 5616, 602, 6623, 6714, 6716번 버스 중 빨리 오는 녀석에게 몸을 싣는다. 염창역에 내려 9호선 급행으로 옮겨 같다. 버스에서 내리면 신호 체계상 횡단보도가 바로 파란불로 바뀐다. 버스에 내린 후 출구를 향해 시선을 돌린다. 전광판에 다가오는 지하철의 아이콘을 보고 뛸지 말건지를 결정한다.


요즘 신호등은 초록불의 남은 시간을 표시해 준다. 아주 편리하다. 세상이 점점 나아지는 것을 느낀다. 오늘은 뛰지 않아도 건널 수 있겠다 싶지만, 지하철 전광판을 보니 빨간(급행)색 기차가 등촌역에 다다르고 있었다. 뛸까 말까 고만하다가 걷는다.


추석 도쿄 여행 때 무릎을 다친 후 한 달 반 정도 불편한 생활을 했다. 그중 3주는 눈칫밥 먹으며 재택근무를 했고, 조금 완치가 된 후에는 느리고, 느리게 걸으며 출퇴근을 했다. 그 기간은 뛰지 않았다. 뛸 수 없었다. 눈앞에 버스가 와도 천천히 걸으며, 천천히 호흡하며 다음 버스를 기다렸고, 자신 있게 노약자석에 앉았다.


급행 지하철이 오는 것을 발견하면 많은 사람들은 달리기 시작한다. 걷기로 했으니 뛰지 않는다. 다만 조금은 빠른 걸음으로, 숨이 차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기후동행카드가 담긴 핸드폰으로 개찰구를 통과하고 계단을 내려가니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 보인다. 아직 도착을 안 했나 보다. 약간 속도를 높여 무사히 지하철에 탑승한다. 무리해서 뛰지 않아도 지하철을 탈 수 없다. 먼저 가버리면 다음 열차를 기다리면 된다.


무릎 이슈 시절의 마음 가짐을 다시 꺼내보았다. 뛰면 멀리 갈 수는 있지만, 지속 가능성이 낮다. 걸으면 천천히, 멀리 갈 수 있다. 빨리 가야 할 때가 있고, 걸어도 되는 때가 있다. 이를 구분하는 것도 세상 사는 방식이 아닐까.


걷는 출근길이다 보니 이런 생각도 하게 된다. 내일도 걷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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