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 의문의 갈래를 지나 마침내 도달하는 깨달음의 순간
본 리뷰는 1ROW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소정의 활동비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확신은 화합의 가장 큰 적입니다.
'콘클라베'란 무엇인가. 이것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신임 교황을 선출하는 제도로 콘클라베가 시작되어 추기경들이 시스티나 성당으로 모이게 되면 문은 잠기고 일체의 외부와의 통신과 접촉이 차단된다. 이곳에 모인 추기경들은 새로운 교황을 선출할 때까지 밤낮으로 밀폐된 공간에서 비밀투표를 진행해야 하고, 이때 최다득표자는 3분의 2 이상의 표를 받아야 한다. 합의에 이를 때까지 콘클라베는 멈추지 않고 성당의 문도 열리지 않는다.
교황 선거의 시작부터 모든 과정을 섬세하고 치열한 시선으로 담아낸 영화 <콘클라베>는 최선의 답을 내리기 위해 고민하는 종교인의 자세와 더 나아가서는 종교의 차원을 넘어 의심과 믿음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웰메이드 종교 스릴러극이다. 이야기는 콘클라베를 총괄하는 단장 '로렌스'의 시점에서 주로 다루어지는데 이 '단장'이라는 특별한 직위로 인해 로렌스는 유력 후보 추기경들의 소문과 결격 사유들에 대해서 내외부의 예민한 정보를 다른 추기경들에 비해 보다 많이 알고 있는 상황에 놓인다. 바로 이 지점이 일반적인 정치인 선거에 비하면 자칫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는 교황 선거에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로렌스 앞에 펼쳐지는 혼란스러운 변수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전 교황의 선종 직전에 있었던 비밀스러운 사실들이 조금씩 드러난다. 전 교황이 현재 교황 유력 후보자 중 한 명인 '트랑블레'에게 개인 비리를 이유로 사임을 요구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고 때마침 전 교황이 의중 결정으로 임명하여 공식 추기경 명단에 없던 인물이 새롭게 등장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몇 차례 투표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성당 내부에서 한 추기경을 대상으로 한 스캔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러한 사건들 사이에서 로렌스는 우연히 본인만이 알게 된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정보를 공개해야 할지, 그리고 새롭게 들어오는 정보를 철저하게 외면한 채로 투표를 해야 할 지에 대해 심리적 갈등을 보이며 수차례 '의심'과 '확신' 사이를 오간다. 108명의 표의 향방 역시도 매 투표 때마다 예측불가였다. 확신할 수 없는, 그저 추측에 불과한 예민한 소문이라도 퍼지면 표는 순식간에 뒤집혔다. 종교 내부에서는 그런 것들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했기 때문이다.
반면, 콘클라베에서의 회의 과정은 이러한 루머를 제외하고도 생각보다 복잡하고 전략적인 면이 존재한다. 바로 추기경들 간의 파벌 다툼이다. 추기경들 사이에서는 출신지나 정치적, 종교적 성향에 따라 이탈리아 로마의 전통을 고수하는 전통보수파부터 중도파 그리고 이혼, 동성애, 여성인권과 같은 이슈에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는 진보주의까지 여러 무리로 나뉘고 있었다. 추기경들은 철저히 개인주의가 아니었고 이들은 이왕이면 자신이 지지하는 입장에 서 있는 사람을 교황으로 올리고 싶기에 주변 사람들을 설득하기도 하고 최악의 경우를 피하기 위해 차악으로 표를 모으려는 수를 쓰기도 한다.
로렌스는 진보주의자인 벨리니를 교황 후보로 지원하고 있었지만 단장으로서 앞서 언급했던 사건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두드러졌던 면모 때문인지 매번 약간의 표를 얻게 되는 불편한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로렌스는 근래 '기도가 잘 되지 않는다'라고 언급할 만큼 신앙심이 흔들리고 있었기에 교황직에 대한 욕심은 추호도 없다고 단언했지만 예상치 못하게 흘러가는 표의 흐름 속에서 본인의 '확신'에 대해서 회의감이 들기 시작한다. 이렇듯 <콘클라베>는 본디 선량하지만 주어진 역할의 위치(단장)나 내면적 갈등(신앙심)에 있어서 복잡한 상황에 처해있는 인물인 로렌스를 앞세워서 '의심과 확신'이란 주제를 점차 심화시켜 나간다. 처음에는 '타인'에 대한 확신을 경계하고 수 없이 의심했다면 중반부로 넘어가서는 그 대상이 비로소 '자신'에게로 향하게 되는 식이다. 이러한 로렌스의 복잡한 심경은 성당의 기둥과 기둥 사이, 여러 개의 방이 있는 길게 이어진 복도를 지나는 그의 모습에서 극대화되어 표현된다. 그런 의미에서 콘클라베의 어원인 '열쇠로 문을 잠글 수 있는 방'은 문이 잠긴 시스티나 성당인 동시에 수없이 갈등하는 한낱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가리키는 말일 수도 있겠다.
영화를 통해 '콘클라베'는 이 일련의 과정이 그저 마땅히 좋은 미덕을 가진 자를 신임 교황으로 정하는 전통적인 절차에 그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콘클라베를 통해 수없이 의심하고 부딪히고 부서지며 각자의 심연을 진실하게 헤아려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것은 고도로 숭고하고도 상징적인 종교적 행위인 셈이다. 더 나아가 추기경뿐만 아니라 성당 내부의 진행을 돕는 또 다른 중요한 존재인 수녀들에게도 지속적으로 카메라를 옮기는 영화적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비록 제한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며칠 간의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담아내고 있는 내용의 깊이와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는 훨씬 거룩하고 장대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신성하고 아름다운 성당 내부를 비추는 미장센, 그리고 웅장하면서도 긴장감을 주는 현악기 베이스의 사운드트랙은 또 어떠한가. 영화를 채우고 있는 담대한 요소요소들은 다소 익숙하지 않은 종교 영화에 순식간에 빠져들게 만들고 로렌스라는 인물을 필두로 마음속 깊은 지하에 숨겨진 각자의 염원을 탐구하게끔 한다.
<콘클라베>는 종교영화이기는 하지만 이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울림이 있다. 우리는 무수히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갈등 속에서 너무 많은 일들에 대해 쉽게 확신한다. 각종 분노를 화풀이하듯 표출할 대상을 찾거나 자극적인 이슈들 사이에서 맥락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앞서 로렌스의 의심의 대상은 '타인'에서 '자신'에게로 향하며 한 단계 확장했다면 영화 말미에서는 그 의심의 대상이 우리가 '확신'한다고 믿었던 근본적인 개념 자체로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즉, '확신할 수 없다면 계속해서 의심하라'는 말은 궁극적인 삶의 지표가 될 수 없으며 이 세상에 확신이란 성역은 인간의 오만일 뿐 애초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물음을 관객에게 던지고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이 허무하게 느껴진다고 해도 절망적이지는 않다. 이 세상은 인간에 의해서 단정 지을 수 없을 만큼 놀랍고도 무한한 가능성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우리가 마주하는 불확실성은 서로를 가로막고 있던 벽을 부수는 희망의 신호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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