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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런 영화

<히어>

여기 긴 세월 속에 잠시 머무르다 떠나가는 우리의 삶을 기억하는 영화

by FREESIA

본 리뷰는 1ROW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소정의 활동비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남은 인생을 여기서 보내고 싶어.
common (6).jpg 영화 <히어>

영화를 사랑하는 수많은 이들의 명작으로 남은 <포레스트 검프>의 드림팀이 신작으로 다시 뭉쳤다.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을 비롯하여 톰 행크스와 로빈 라이트까지 함께 한 영화 <히어>는 각기 다른 시대에 살았던 여러 세대의 가족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관객들에게 인생에 대한 감동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추억 속 영화의 제작팀과 배우들이 다시 모인 것만으로도 흥분되지만 이 영화가 가진 독특한 연출은 우리의 시선을 또 한 번 사로잡는다. 바로 고정된 앵글이라는 것. 영화가 시작하는 순간부터 화면은 움직이거나 초점을 바꾸지 않은 채 한 곳에 고정되어 있다. 반대로 영화적 시간은 광범위하게 흐른다. 백악기부터 빙하기와 그 이후의 원시시대, 윌리엄 프랭클린의 저택이 있었던 18세기. 그리고 마침내 20세기에는 새롭게 집터가 생기고 네 번의 다른 가족이 그곳에 머물다 간다. <포레스트 검프>에서 주인공의 인생을 그가 살았던 시대적 흐름 즉, 미국사의 흥망성쇠와 연결시켰듯이 이번 영화 <히어>에서도 이와 비슷한 방식의 연출을 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일반적인 영화의 경우 인물과 사건을 중심으로 배경이 유동적으로 따라가기 마련인데 이 영화에서는 배경인 장소를 고정시켜 시간의 흐름을 고도로 체감할 수 있는 경험을 선사하는데 굉장히 실험적이면서도 새롭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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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히어>

시간의 마법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화면이 비추고 있는 이곳(here)을 중심을 거주했던 사람들의 일상은 영화상에서 시간 순서대로 진행되지 않고 랜덤 하게 섞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게 초반에는 다소 무작위 하게 느껴져서 이 자체가 영화라기보다는 새로운 방식의 전시를 보는 것에 가깝다는 느낌도 받았다. 하지만 점차 어지럽게 흩어져 있던 각 시간의 조각들은 서로 다른 시대에 있으면서도 어딘가 조금씩 닮아 있는 듯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이곳에 머물렀던 사람들은 서로 다른 시간대 속에서 각자의 꿈을 염원하기도 하고, 현실의 벽에 부딪혀 포기하기도 한다. 어느 시대에나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그러는지'라며 한탄하기도 하지만 세상은 잘만 돌아갔고 예상치 못한 사건이 앞날을 좌우하기도 하고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날이 있다면 어떤 날에는 죽음이 있기도 한, 이 땅 위에서 무수히도 반복되어 왔을 모두의 인생이 보였다.


그래서인지 영화가 보여주는 각각의 서사는 드라마틱한 사건이 있다기보다는 일상적인 이야기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런 지점이 시간의 간극이 굉장히 멀게 느껴질 정도로 다른 시대를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모두가 별다를 것 없이 비슷한 삶을 살아오고, 비슷한 고민을 하며 살아온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한다. 그리고 이는 영화에서 보여주는 여러 가족의 인생이 서로 다르면서도 비슷하게 느껴지는 데에만 그치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의 일상을 한 걸음 떨어져서 지켜보는 것만 같기도 해서 이상하리만큼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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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히어>

영화에서 사용된 AI 디에이징 기술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근래 AI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면서 예술 영역에 있어서의 AI 도입에 대한 많은 우려의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여기서 20세기 후반 가족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리처드와 마가렛은 10대 시절부터 노인 시절까지 한 배우가 연기하기 때문에 젊은 시절의 모습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이러한 기술이 필요했다. AI 기술 자체가 가지고 있는 논란을 떠나서 적어도 영화 <히어>의 연출에 있어서 가장 핵심이었던 '세월의 흐름'이란 요소는 이러한 AI 기술력을 통해 더욱 완성도가 높아졌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동일한 배우가 아역부터 노인까지 모든 나이대의 인생을 전부 연기할 수 있다는 점이 캐릭터 소화력 면에서도 좋을 것이고 이를 바라보는 관객 역시도 흐름을 놓치지 않고 주인공들의 압축된 인생사를 더욱 몰입하여 들여다보게 된다.

common (12).jpg 영화 <히어>

인류에게 있어서 삶의 정착은 일정한 공간에 자리를 잡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 그런 물음에서부터 시작하는 영화 <히어>는 그 위로 축적되는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보여주었다. 특히 앞서 언급한 이 영화만의 독특한 연출법은 오랜 역사의 시간 속에 잠깐 머무르다 떠나는 인간의 삶을 극대화해서 보여주는데 이로써 영화에서 말하는 여기(here)는 무수한 과거를 지나 온 우리의 현재 시점(time)과 오랫동안 소중한 기억이 머무르는 장소(place)를 동시에 강조한다. 그것은 곧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하는 순간들일 것이다. '우린 바로 여기에 있었어.' 오래전 자신들이 살던 집으로 다시 돌아온 리처드와 마가렛처럼 영화가 끝나는 순간에는 긴 인생에 있어서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공허할 정도로 우리의 인생이 참 짧게 느껴졌다. 뒤돌아 볼 여력도 없이 바쁘게 앞만 보고 가느라 정작 나의 오늘, 내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놓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 보게 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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