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과 손해의 개념으로 정의할 수 없는 무한한 가치를 지닌 존재들을 위해
본 리뷰는 1ROW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소정의 활동비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당신은 대체 누구예요?
라스트 마일, 물류 유통과정에서 택배가 고객에게 배송되는 최종구간에 이상이 생겼다. 기업에게도 소비자에게도 반가운 7일간의 쇼핑 이벤트인 블랙프라이데이에 연쇄 테러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고객에게 배달된 바로 그 택배 상자가 폭발하면서 말이다. 모든 유통과정이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시스템화되어 운영된다면 어떻게 택배 상자에 폭탄이 설치될 수 있었을까. 그렇다면 이 테러는 내부자의 소행인가. 그 사람은 무엇을 위해 이토록 무모한 범행을 자행했나.
영화 <라스트 마일>은 세계 규모의 쇼핑 사이트인 '데일리 패스트 (Daily Fast)'의 일본 관동지역 거대 물류 창고 센터 직원들이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그려나가며 이 시대가 성공과 야망에 경도되어 있을 때 쉽게 놓치고 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관동 센터의 새로운 센터장 '후나토 에레나'는 이곳에 부임한 첫날부터 테러 사건이라는 위기를 맞게 되지만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기 위해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는 인물이다. 열정적이고 슬기로운 면모가 있지만 그 태도가 정의로운 방식으로만 나아가지도 않는다. 그녀는 영악하다. 이를 테면, 에레나는 블랙프라이데이 광고물과 관련하여 범죄 수사에 유리한 단서가 될 만한 증거를 찾았음에도 이를 경찰에게 알리려는 부하 직원을 (말 그대로) 뜯어말린다. 테러 사건으로 나라가 시끌시끌해도 해당 사실이 외부에 공개가 되면 '데일리 패스트' 기업의 뉴욕 시장 주가에 미칠 영향을 먼저 고려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이기적이기만 한 인물은 아니다. 그녀는 어느 하나를 위해 다른 하나를 포기하는 성정이 되지 못한다. 그 모두를 구할 방법을 찾고 싶을 뿐이다. 그런 점이 이 테러 사건과 관련하여 그녀의 돌발적인 행동들을 미심쩍게 만든다. 부하 직원인 팀 매니저 '나시모토 코우' 역시 가장 가까이서 그녀를 의심한다. 이 물류 센터가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인물인 그는 폭발물이 들어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물건을 찾기 위해 일일이 창고를 발로 뛰어다니기도 한다. 캐릭터 면에서는 자신의 의사를 강하게 표현하기보다는 뒤에서 조용히 관찰하는 타입이지만 어느 시점에 다다라서는 기업의 윤리나 인간의 도리 사이에서 영화가 하고 싶은 물음을 대변하는 중요한 인물이다.
이외에도 영화는 많은 인물들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센터장인 에레나의 상사인 데일리 패스트의 일본지사 본부장, 운반회사인 '양 익스프레스'의 관동국 국장, 이 운반회사에서 위탁 운송을 맡고 있는 운전사. 그리고 물류 센터에서 쉴 새 없이 일하는 노동자. 서비스 직종 노동자의 업무는 공장의 쉴 새 없이 흘러가는 레일처럼 딱, 딱, 딱 균형 있게 획일화되어 잘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테러라는 위험천만한 사건 하나가 그 레일 위로 거대한 폭탄처럼 뚝 떨어졌을 때엔 그 사이에 이미 망가져 있던 균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책임 문제를 서로에게 미루고 사람의 목숨이 오가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익을 잃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도를 넘는 욕망과 책임 회피 방식으로 인한 피해는 노동계급의 가장 마지막까지 내려가 낮은 단가와 고된 노동에 허덕이는 힘없는 노동자가 짊어지게 된다. 그렇기에 현실적인 관점에서 생산관계에서의 사업가와 노동자의 삶을 대비시키고 있는 이 영화 속에서 일어난 테러 사건은 단순히 누군가의 분노나 복수심의 발현으로만 치부하기엔 무리가 있다. 성공에 눈이 멀어 사람을 언제든지 대체할 수 있는 기계 부품처럼 대하고 그런 누군가의 고통을 너무 쉽게 외면했던 일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더욱 큰 위기를 만든 것이다. 어쩌면 영화 속, 과거 희생된 노동자가 쓰던 (처음에 고장 났다고 언급된) 사물함처럼 사건의 결정적 원인은 고장 난 채로 고치지 않고 내버려 두었던 모두의 무관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사물함에 새겨진 흔적이 지워지지 않고 그대로 있을 수 있었던 건 그날의 희생을 기억하려던 사람들의 자그마한 바람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엔 그런 바람들에 힘을 실어주는 유능한 조력자들도 등장한다. 쉐어 유니버스 작품인 <라스트 마일>에는 많은 이들에게 삶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었던 법의학 드라마 <언내추럴>과 경시청 기동수사대의 이야기를 담은 <MIU404>의 제작진이 다시 모여 만들어 낸 감동적인 스토리 위로 해당 드라마에 출연했던 배우들까지 다시 각자의 역할로 출연했다. 주연급 배우뿐만 아니라 익숙한 조연 배우들까지도 짧게나마 등장해 이 작품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었는데 전작을 좋아했던 이들이라면 여전히 애틋하고 반가운 마음으로 이 영화를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전작들을 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감상에 문제는 없다.) 다만 전작의 주인공들이 마치 어벤져스처럼 등장해 이 영화에서도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리라 기대한다면 조금 실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미미한 분량이 아쉬울 수는 있겠지만 드라마를 통해 그들의 속사정까지 뼛속들이 알고 있는 관객들이라면 우리는 이들이 느리더라도 믿음과 의지만 있다면 결국에는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하리라는 것을, 그리하여 이번에도 그리 할 것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그 든든한 마음을 가지고 우리는 어딘가로 흩어져 있을 폭탄이 들어간 택배를 찾고 용의자를 찾아야 하는 전대미문의 상황에서 보다 몰입하여 진실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전 드라마 작품들의 주제곡('레몬'/ '감전')을 불렀던 요네즈 켄시가 이번 작품에서도 '잡동사니 がらくた'라는 곡으로 OST에 참여했다. 잔잔하면서도 울림이 있는 곡이니 영화가 끝나고 난 뒤의 여운을 엔딩크레딧과 함께 들려오는 노래로 마무리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영화 속의 배경이 되었던 물류센터는 우리 사회의 일면 같기도 했다. 서로 다른 생김새를 하고 서로 다른 쓰임을 가진 물건들이 가야 할 곳을 향해 이리저리 흩어져가는 모습들이 우리 모두가 서로가 다 다르게, 뒤섞이며 살아가는 모습과 겹쳐진다. 마치 잡동사니처럼. 끝으로 이 영화의 주제와도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가사를 옮기며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매일을 열심히 살아가는 모든 존재들에게 평안한 밤이 깃들기를 소망해 본다.
멀리 돌아서 돌아가자.
헤매도 괜찮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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