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손>

아무리 뭉쳐봐도 쉽게 으스러져버린다는 것

by FREESIA
내 죽더라도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된다
common (12).jpeg 출처: 영화 <장손>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고, 모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나름으로 불행하다.'라는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잘 알려진 첫 문장이 있다. 너무나도 강렬하고 완벽해 보이는 이 문장에 대해 평생 동안 크게 의심을 해온 적은 없었으나 영화 <장손>을 보고 나서는 이 문장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그러니까 마냥 행복하지도 또 그렇다고 불행하지도 않은 가정은 어떤 것일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영화를 보며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두부’라는 이미지였다. 콩을 곱게 갈아 하나로 섞고, 틀에 넣어 굳히면 단단한 형태를 갖춘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힘을 주면 너무도 쉽게 부서져버리는 것. 가족이라는 것도 어쩌면 이와 비슷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살아온 시간과 관계가 만들어낸 형태는 분명 존재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단단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 ‘하나로 뭉쳐 있다’는 감각이 때로는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 허상인지, 영화는 이 메타포를 통해 조용히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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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화 <장손>

영화 <장손>은 인물들은 쉽게 감정을 폭발시키지 않고, 카메라도 그들을 과장하여 몰아붙이지 않는다. 그 절제된 시선 속에서 오히려 더 또렷하게 드러나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균열이 생긴 채 위태롭게 버텨온 가족의 시간이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는 듯 유지되어 온 관계들이 사실은 얼마나 위태로운 상태였는지, 그리고 그 균형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영화는 조용하게, 그러나 집요하게 드러낸다. 이 지점에서 문득 영화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이 떠오르기도 한다. 아버지의 장례식에 모인 가족들이 사이에서 드러나는 막장 비밀들과 마구 헐뜯는 가족들. 하지만 그 영화가 뜨거운 여름날, 억눌려 있던 감정이 한순간에 폭발해 버리는 이야기였다면, <장손>은 그와는 정반대의 결을 가진다. 오히려 오랜 시간에 걸쳐 눌리고 쌓여온 것들이 서서히 응축되어 있는 상태에 가깝다. 감정은 비교적 겉으로 크게 분출되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무겁고 더 오래 남는다.


이러한 이야기의 중심에는 가업을 잇지 않고 배우의 길을 선택하려는 장손 ‘성진’이 있다. 가업인 두부 공장을 잇지 않겠다는 ‘성진’의 선택은 단순한 진로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이라는 구조를 지탱해 온 전제를 흔드는 일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장손>은 그 제목이 가리키는 것처럼 '장손'이라는 역할에 균열이 생기는 순간에서부터 출발하는 셈이다. 단순히 장남의 아들이라는 호칭을 넘어, 오랜 시간 이어져 온 가족의 질서와 전통, 그리고 그 안에 축적된 기대와 책임까지 함께 품고 있는 위치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것이 가부장적인 구조 속에서 유지되어 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장손’이라는 위치는 개인의 선택 이전에 이미 정해진 역할에 가까운 것처럼 느껴진다.


<장손> 속 가족의 시간은 단순히 한 세대의 이야기에 머무르지 않고, 각기 다른 시대를 통과해 온 인물들의 기억 위에 쌓여 있다. 6·25 전쟁을 겪어온 할아버지 ‘승필’과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을 경험한 아버지 ‘태근’은, 각자의 시대 속에서 몸으로 버텨온 시간을 바탕으로 이 집안을 지켜내려 한다. 그들의 선택과 태도는 단순한 고집이라기보다, 혼란의 시기를 지나오며 가까스로 붙잡아온 삶의 방식에 가깝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의 전반부는, 여러 시대의 격랑 속에서도 어떻게 한 가족의 형태가 유지되어 왔는지를 보여주는 과정인 셈이다.

common (4).jpeg 출처: 영화 <장손>

하지만 할머니 ‘말녀’의 죽음을 기점으로 영화의 결은 눈에 띄게 달라진다. 장례식과 이후의 정리 과정은 단순한 애도의 시간이 아니라, 그동안 잠재되어 있던 감정과 이해관계가 드러나는 계기가 된다. 자식 세대 사이에서 엇갈리는 서로 다른 본심들이 표면으로 올라오면서, 억지로라도 묶어 놨던 가족의 형태는 점점 느슨해지고, 결국에는 해체의 방향으로 나아간다. 특히 고모 '혜숙'이 집에 불을 지르는 사건은 그 균열이 더 이상 봉합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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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화 <장손>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완전히 끊어내기보다는, 어떤 방식으로든 이어지려는 움직임 또한 함께 포착한다. 고모의 갈등의 원인이 되었던 돈은 사실 할아버지 ‘승필’이 ‘성진’의 이름으로 모아두었던 것이고 그 통장은 비닐봉지에 담겨 비로소 장손인 '성진'의 손에 들어온다. 비닐봉지 안에 들어 있던 것은 가족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따뜻한 두부 한 모와 같은 것이 아니라 돈이고, 뼈저리게 지독한 현실인 셈이다. 이어지는 롱테이크 속에서 겨울 산길을 따라 멀어지는 ‘승필’의 뒷모습은, 이미 균열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붙들고 살아온 삶의 방식과 책임을 끝내 다음 세대에 넘겨주려는 태도로 보인다.

common (8).jpeg 출처: 영화 <장손>

결국 이 영화는 ‘장손’으로부터 시작해 다시 ‘장손’으로 끝난다. 그리고 이 영화의 마지막에 남는 것은, ‘장손’이라는 이름이 이 시대에 여전히 유효한가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그 이름이 더 이상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작동할 수 없는 시대에 우리가 서 있다는 깨달음에 가깝다. ‘장손’은 분명 크게 요동치는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현실에 가까운 방식으로, 오늘날 대한민국의 가족이 놓여 있는 상태를 포착해 낸다. 쉽게 무너지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관계들. 그 모순적인 상태를 끝까지 응시하는 이 영화는, 결국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가 붙들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조용히 되묻게 만든다.

common (10).jpeg 출처: 영화 <장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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