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좋은 어른을 만났다.
#나의 마음을 흔들었던 서비스
작년 여름이었다.
오랜만에 동네 근처에서 대학 친구를 만났다. 우린 저녁 메뉴를 기획했고, 선택에는 포기도 따랐다.
결국, 우리는 낡은 간판이 붙어있는 치킨집에 들어갔다. 동네를 왕왕 돌아다니곤 했지만, 이 치킨집은 처음이었다. 실내는 사람들로 즐비했다. ‘내가 이런 곳을 몰랐을 리 없어’ 라며 스스로에게 묻기도 했다. 인산인해인 실내를 벗어나 우린 야외로 향했다. 야외엔 우리를 제외하고 한 팀 밖에 없었다.
지나가는 강아지의 속삭임이 적막함을 깨는 것도 좋았고 근처 울창한 공원을 통해 새어 나오는 공기가
시원하게 몸을 감싸는 느낌도 좋았다. 갓 튀겨 나온 반반 치킨의 풍채도 우수했다. 맛과 냄새는 당연했다. 이렇게 오감이 만족스러운 적이 있었나 싶었다.
사실, 이 보다 더 만족스러웠던 것은 따로 있었다.
다름 아닌 좋은 어른을 만난 것이었다.
무더위가 기승하기 시작하는 날엔 유독 모기가 인사를 하러 온다. 인사도 인사 나름이지, 반갑지 않은 인사도 있다. 친구와 나는 애써 그 인사를 무시하고 있었다. 아름답고 찬란한 이 오감을 해치려는 모기의 인사를 못이겨 친구는 질문했다.
"사장님~ 혹시 죄송하지만 모기향 같은 거 없어요?"
"흠.. 잠깐만 기다려봐유~"
"아니에요~ 없으면 그냥 놔두세요 괜찮습니다!"
친구가 했던 질문의 의도는 '없으면 그냥 먹자' 라는 마인드였다. 한 5분쯤 지났나? 사장님이 다가오셨다. 어디를 갔다 오신 모양이다. 검정 봉투에서 무언가를 만지작 거리시더니 테이블 밑에 내려놓으셨다.
고개를 숙여 바라보니 그건 모기향이었다. 사장님은 곧장 그 자리에서 허리를 숙여 불을 붙이셨다. 친구는 화들짝 놀라며 극진한 호의에 오히려 죄송해진 마음이 들었다. 자칫하면 강한 모기향에 치킨의 냄새가 잊히기 마련인데 그러지도 않았다. 적당히 불이 붙은 모기향은 오감을 방해할 만큼의 깜냥이 못되었다. 모기는 인사를 거둬들이고 유유히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는 이후 감사를 표하기 위해 사장님께 다가갔다.
"사장님 신경 써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근데 돌아오는 대답이 기가 막히다.
"에휴 아녀~ 한 끼 먹어도 제대로 먹어야지. 우리는 마감시간도 없어~ 손님이 즐기고 맛있게 먹으면
기다리는거여~"
한방 먹었다. 동네라서 그런 걸까. 장사가 안돼서 그런 걸까. 어느 것을 갖다 붙여도 이해가 되지 않을 답변이었다. 사장님의 사소한 배려와 아름답게 꾸며진 오감이 그 시간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그분은 사장님 이기전에 좋은 어른이었다.
나는 그날 맛있는 치킨을 먹었다기보다, 좋은 어른을 만났다. 그분 자체로 하나의 브랜드라는 느낌을 받았다.
사람이 곧 브랜드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마치 증명하는 것 같았다.
나는 엊그제도 좋은 어른을 만나고 왔다.
여전히 살가운 미소와 함께 반겨주셨다.
아 참, 자녀분이 합류했다.
그분도 어마한 감사와 친절의 소유자이다.
경험을 통해 느꼈던 건, 서비스는 작은 차이로 시작된다. 작은 차이는 소중한 기억에 방점을 찍는다.
방점이 찍힌 기억은 나를 행동하게 만들고, 곧 그 브랜드를 사랑하게 만든다.
수려한 이름, 거추장한 형식 보다도 방문하는 이들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차이를 만들지 않을까.
자꾸 기본, 본질이 떠오르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