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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듀군 Jul 10. 2023

10년 된 엄마의 속옷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발견

후. 누렇다. 늘어졌다. 망가졌다. 족히 10년은 더 되어 보인다. 마치 삶을 버티지 못한 채 쓰러진 어깨와 같으며 기진맥진해 보인다. 일어서기 어려워 보인다.


끝내 말을 건넨다. 사연이 있다. 귀가 울린다. 소리를 무심코 지나칠 수 없기에 답을 한다. 어떠한 마음이었을까 궁금해하며 행동하고 다짐한다.


하루를 알차게 시작하며 엄마의 빨래를 거든다. 양말, 수건, 티셔츠 등 수많은 빨래는 여름이 왔음을 알린다. 손이 늘어나니 일이 수월하다. 금세 빨래를 넌다.


띵동. 뭐지. 누굴까? 이 시간에 올 손님이 없는데. 이상한 집단의 설문조사는 아니겠지 생각하며 문으로 향한다. 문을 연다. 택배다.


'원더브라'다. 우리 집에? 의심한다. 시킬 사람이 없는데 말이다. 아들 둘 뿐인 우리 집으로 여자 속옷을 시키는 사람이 누굴까. 호기심은 점점 극에 달하던 찰나에 엄마가 대답한다.


'그거 엄마 속옷이야.'


시킬 일이 없다. 묻는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엄마는 대답한다. '정말 빨리 왔네~ 17일에 온다더니'


나는 다시 묻는다. '엄마 택배 맞는지 확인해 보셔요~'


돌아오는 대답은 옹골차다.


'아이~ 맞다니까 그러네. 10년 만에 샀다 왜!'


고정관념이 와르르 깨진다. 같은 속옷을 10년째 입고 계셨는지 몰랐다. 나의 시선은 빨래 건조대로 향한다. 단색의 속옷들이 세월을 말해준다. 그런데 속옷을 보니 마음 한편이 시려온다. 늘어진 라인, 구멍 난 재질, 누렇게 변색된 겉감. 모든 것이 화살처럼 내게 박힌다.


나는 괜스레 묻는다.


'엄마, 옷은 무조건 가서 보고 사는 분이 속옷을 왜, 어떻게 택배로 시키셨어요?'


엄마가 웃는다. 그런데 그 이면엔 잦은 떨림과 긴장감이 느껴진다.


'병원 일하기 전에 옷을 갈아입는데 지금 속옷이 다른 분들 보기 창피해서 그만..'


할 말을 잃는다.


같이 사는 내 주제에 그런 감정조차 헤아리지 못하고 있었다. 나를 낳아준 이의 감정을 태어난 이가 보듬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엄마의 마음과 상황을 저버린 채 살아온 내 삶에게 불을 던진다.


잠시 마음을 추스른 채 엄마에게 말을 건넨다.


'그런 사정이 있었네.. 아들이 왜 몰랐을까 엄마? 미안해. 너무 신경 못썼다 그렇지? 그거 얼마야? 아들이 바로 보내줄게. 되게 예쁘네~'


뭐라도 말하려고 점점 말이 길어진다. 내 마음은 창피하기 그지없지만, 엄마가 당당히 사회에 맞설 수 있도록 선물을 해주고 싶다. 그런 엄마는 내 속도 모르는지 자꾸 거절한다. 하지만, 나도 지지 않는다. 엄마에게 용돈 겸 속옷 선물금액을 보낸다. 그제야 엄마가 활짝 웃으며 말한다.


'누가 물어보면 아들이 사줬다고 자랑해야지~'


엄마는 8개의 속옷 세트를 이것저것 뜯어보시더니 방방 뛰어다니신다.


주변을 둘러본답시고 가장 가까운 것을 놓쳤다. 먼 길을 돌아오니 견고한 땅엔 젖은 흙이 가득했다. 단단한 땅인 줄로만 알았던 그곳엔 물이 스며들어 걸을 수 없는 진흙이 되어버렸다. 핑계로 가득한 삶 속에서 진실을 마주하지 못했다. 엄마의 10년 된 속옷은 그간 엄마가 버텨내 온 삶의 무게였다. 그저 엄마였다.


어린 시절엔 아무것도 안 해도 당당해 보이던 엄마가 힘을 잃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꼭 보듬기로 자처하고 다짐한다.


'미안해 엄마. 앞으로 그러지 마. 엄마가 뭐든 당당히 살아갈 수 있도록 아들이 도울게.'


젖은 땅이 다시 말라 견고한 발판이 되도록. 부단하게 그리고 성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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