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매년 기대하는 축제, 네이버웹툰 최강자전이 2021년에도 찾아왔다. 이렇게 많은 실력자가 어디에 숨어 있었나 놀랄 정도로 올해도 놀라운 이야기와 연출, 작화가 돋보이는 작품이 예선에 진출했다.
하지만 언제나 내 pick이 다른 사람의 pick과 일치할 수는 없는 법. 이미 Top 16까지 결과가 나왔지만, 내가 투표한 작품이 모두 16강 진출에 성공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아쉬운 마음과 최강자전을 준비한 수많은 작가님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내가 픽한 작품을 선별했다. 물론 내 마음대로 뽑았기 때문에 플랫폼과 잘 어울릴지, 작품 소재가 다른 작품과 겹치는지, 매출이 잘 나올지 등 나와 상관없거나 내가 알 수 없는 요소는 배제했다. 내 개그코드에 맞아서, 내 눈에 귀여워서, 내가 꽁냥꽁냥해져서. 말 그대로 사심 가득 담아 뽑은 나만의 네이버웹툰 최강자전 2021 Top 8!
[한 편의 동화 같은 작품 - <땡큐, 베리>(김코인)]
이번 최강자전에서 내 마음 속 원픽 작품이다. 예선에서 1화를 보고 망설임 없이 투표 버튼을 눌렀지만 아쉽게 32강의 벽을 넘지 못했다.
<땡큐, 베리>는 아빠와 오빠를 따라 낚시꾼을 꿈꾸는 아이 베리가 주인공인 작품이다. 바다가 무서운 곳임을 알지만 바다를 사랑하는 베리는 몰래 고기잡이 배에 따라 탔다가 모종의 이유로 혼자 표류하게 된다. 밤바다에서 처음으로 바다가 주는 공포감을 온몸으로 느끼게 된 베리는 멀리서 자신을 바라보는 어떤 생명체와 눈이 마주친다.
<땡큐, 베리>는 동화책 또는 그림책이 연상되는 작화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동글동글 귀여운 주인공과 바다 속 생명체가 동화만이 가진 환상적인 느낌을 배가하고, 바다가 등장할 때 컷 배경이 꽉 차 독자도 주인공과 함께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 느낌을 준다. 진정으로 현실이 아닌 작품 속 공간에 푹 빠지는, 기분 좋은 착각을 선사하는 작품이다.
[이미 연재 중인 로맨스 작품을 보는 느낌 - <선을 넘은 연애>(서녜)]
네이버나 카카오와 같은 유명 플랫폼에서 연재 중인 로맨스 작품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완성도를 자랑하는 작품이다. 예선 때부터 상위권을 유지하며 거침없이 16강까지 올라간 작품으로, 이견이 없다면 8강까지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동갑이지만 첫 만남에 서로 누나-동생으로 오해한 아라와 가람은 동갑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 친구가 되지만 어쩐지 남매 같은 친구가 된다. 하지만 이 관계는 작품이 진행되면서 변화가 암시되는데, 두 사람 사이의 꽁냥꽁냥함과 간질간질함을 보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예상한다.
처음 예선에서 1화를 봤을 때는 그림체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기비 작가님과 ㅁㅣㄱ 작가님이 연상됐다. 장르도 같고 작풍이 두 작가님과 닮은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두 작가님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오히려 비슷한 부분이 처음부터 작품에 확 끌린 계기가 되었다. 기비 작가님 작품 <우리가 사랑하는 방법>이나 ㅁㅣㄱ 작가님 작품 <너에게 도달하는 방법>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꼭 권하고 싶은 작품이다.
[쎄하고 미묘한 분위기를 잘 살린 작품 - <네가 되는 법>(넌서)]
평범한 전학생이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알아내려 한다면? 감시와 조사를 넘어서 점점 나와 닮아간다면?
<네가 되는 법>은 주인공 이진과 그녀를 점점 닮아가는 의문의 전학생 지환희의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이다. 네이버웹툰의 대표 작품 <치즈인더트랩> 이후 신조어가 된 ‘손민수하다’를 묘하고 쎄한 분위기로 풀어낸 작품이다. 물론 환희가 진이를 단순히 손민수하는 것인지, 아니면 닮은 모습이 되기 위해 집착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네가 되는 법>은 단 두 회차만으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진이를 향한 환희의 시선을 극대화한 연출 덕분에 독자는 섬뜩함을 느끼는 동시에 뒷이야기에 궁금증을 품게 된다.
추가 회차가 풀리면 어떨지 모르지만 이대로라면 8강 진출까지는 무리가 없어 보일 정도로 흡인력이 있는 작품이다. 혹여 최종 4위 안에 들지 못하더라도 이후 전개가 궁금해서 꼭 네이버웹툰에서 만나보고 싶은 작품이다.
[향후 전개가 기대되는 게임 소재 개그물 - <고인물은 아가야>(불닭맛밀크티)]
게임 소재를 다룬 작품은 별로 읽어본 적이 없다. 게임이라면 종류를 가리지 않고 못하는 타고난 게임 똥손이기 때문이다. 실제 게임 실력이랑 게임 소재 작품을 읽는 일이 무슨 상관이냐고 물을 수 있지만, 어쩐지 만화 내용에 이입이 안 될 것 같다는 이유로 게임 소재 작품은 찾아 읽지 않았다.
사실 이 작품은 게임 속 세상을 배경으로 할 뿐 게임 판타지물보다 개그물에 가깝다. <고인물은 아가야>는 만렙을 찍고 이미 게임 내 모든 던전과 공략을 꿰고 있는 유저가 새로운 마음으로 게임을 즐기기 위해 뉴비로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를 다루는데, 포인트는 자신이 고인물이라는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머리를 써가며 뉴비인 척하는 주인공이다. 게다가 동행하는 뉴비도 어딘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다. 두 사람의 동행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지 지켜보는 것도 관전 포인트이다. 게임 공략이나 전투보다 개그감에 포인트를 두기 때문에 게임 소재 작품이 낯선 독자에게도 편하게 다가가며, 개그물을 좋아한다면 더더욱 망설일 필요 없이 도전하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작품이다.
[요즘 보기 드문 정통 판타지 - <(N)Ever Ending Story>(MJ)]
최근 판타지 웹툰은 연예계나 스포츠계, 전문 업계를 다루는 현대 판타지나 헌터, 이세계, 게임 등을 다루는 퓨전 판타지가 강세이다. 웹툰은 아니지만 <룬의 아이들>이나 <드래곤 라자>처럼 독자적 세계관을 중심으로 한 정통 판타지는 신작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장르가 되었다.
<(N)Ever Ending Story>는 요즈음 보기 드문 정통 판타지를 표방하는 작품이다. 서로 다른 수명을 부여받은 다섯 종족이 공존하는 세계. ‘로그’라는 종족은 시간을 빼앗기 위해 살인을 서슴지 않고 저질러 모두가 두려워하는 대상이다. 하지만 ‘로그’ 안에서도 살인을 하지 않는 자가 있고, 살인을 하지 않는 동족을 뒤쫓는 자가 존재한다. ‘로그’ 종족 분열을 중심으로 거대한 서사가 진행될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림체나 색감 역시 정통 판타지가 가지는 분위기를 잘 드러내며, 세계관 설명이나 서사도 복잡한 부분 없이 독자에게 잘 전달된다. 오랜만에 보는, 장대한 서사가 예감되는 작품에 보는 내내 마음이 뛰었다. 스케일이 큰 정통 판타지 작품을 기다린 독자라면 무조건 투표하기를 권장한다.
[예상치 못한 반전미(?)가 있는 동양풍 판타지 - <반혼>(광윤)]
<반혼>은 운명의 실을 볼 수 있는 한 나라의 세자가 갑작스러운 혼담을 앞두고 자신의 운명을 찾기 위해 궁을 떠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최근 신작 리스트에서 동양풍 로맨스는 간혹 봤어도 동양풍 판타지는 드물었기에 눈길이 갔다.
사실 <반혼>은 나에게 여러 번 반전을 선사한 작품이다. 작품 소개글을 보고 운명의 실을 주제로 한 동양풍 로맨스인 줄 알았는데, 적어도 1~2화에서는 로맨스보다 판타지에 훨씬 가까운 작품이었다. 썸네일을 보고 웃음기가 쫙 빠진 작품을 예상했는데 예상과 달리 주인공인 세자 저하가 너무 하찮고(?) 귀여운 캐릭터여서 보는 내내 웃음이 터졌다.
개인적으로 네이버웹툰 최강자전 2021 출품작 가운데 작품 썸네일을 가장 잘 만든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썸네일을 보고 상상한 내용이나 톤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 자체로 매력이 있었다. 최근 추세처럼 1~2화만에 윤곽이 드러나는 스피디한 전개는 아니었지만, 완성도 높은 그림과 독특한 설정으로 다음 화를 기대하게 하는 작품이다.
[자극은 없지만 결코 밍밍하지 않은 - <무자극 라이프 타임>(코네)]
<무자극 라이프 타임>은 제목처럼 자극 없이 주인공 재희의 서울살이를 조명하는 드라마 웹툰이다. 하지만 자극이 없다고 해서 너무 밍밍하거나 잔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크나큰 오해이다. 작품은 재희의 삶을 우울이나 활기참 등 어느 한 분위기로 몰고 가지 않는다. 하루는 대개 다양한 감정으로 채워진다. 일상을 지배하는 큰 감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대체로 우울함을 느끼는 사람도 소소하게 행복하거나 갑자기 화가 나는 등 다른 감정이 격해질 때가 있고, 대체로 활기차고 긍정적으로 일상을 보내는 사람도 어떤 때는 뭘 해도 풀리지 않아 짜증을 느끼기도 한다.
작품은 재희의 일상에 렌즈를 두고 하루 안에 벌어지는 다양한 일과 감정을 다룬다. 재희는 서울에 올라와서 정신없이 벌어지는 일상에 외로움과 조급함을 느끼지만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정신없이 바빠 부정적인 감정을 잊고, 우연히 동향 사람을 만나 반가움을 느끼고, 꼬마 손님 때문에 화가 나기도 한다. 뭔가 숨기는 면모가 많아 보이는 같은 알바생 연재와 얽히며 이야기가 진전될 분위기인데, 두 사람의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일상에서 위로와 재미를 얻고 싶다고 느낀 작품이다.
[까다로운 입맛을 가진 드래곤을 만족시키는 법(?) - <드래곤의 식사법>(벌타)]
이렇게 야망이 작은 드래곤을 본 적이 있나? 으레 드래곤은 범접불가능한 힘과 수천 년 세월이 주는 카리스마를 겸비한 존재로 그린다. 하지만 <드래곤의 식사법> 속 드래곤이 원하는 것은 단 하나, 더 맛있고 더 새로운 요리이다. 어떤 요리에도 만족하지 못한 드래곤은 셰프에게 이세계에서 떨어진 용사가 있으며, 용사는 이곳에서 어떤 음식을 먹어도 이전 세계 음식을 그리워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드래곤은 용사를 찾아가 이전 세계 요리가 어떤지 묻지만 식사 시간을 방해받은 용사는 단칼에 드래곤을 처치하고 그 순간 드래곤은 용사가 살던 세계인 한국으로 떨어진다.
작품의 킬포인트는 드래곤이 보여주는 하찮은 면모다. 벌벌 떨며 드래곤에게 음식을 바치는 셰프도 사실은 입맛 까다로운 드래곤을 귀찮게 여기고, 용사는 식사 시간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드래곤을 처치하며, 드래곤은 또 한 방에 죽는다. 위엄 따위 없는 드래곤의 모습에 웃음이 한 번 터지고, 한국으로 떨어진 당황스러움도 잠시, 바로 급식실로 달려가는 놀라운 적응력을 보여주는 모습에 웃음이 두 번 터진다. 예선에서 탈락했지만 개인적으로 정말 재미있게 읽은 작품인 만큼 다른 곳에서라도 만나보고 싶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