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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콩 Dec 03. 2020

가난에 대하여

자각 1



 사업이 망했다. 내가 이 사실을 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중학교에 들어서고, 아버지에게서 카드 하나를 받았다. 그러고는 생일이 되는 날 원래 한도에서 10만 원을 더 올렸다고 말씀하셨. 나를 생각해서 주는 선물보다 돈이 더 좋았고, 나는 이 사실에 좋아라 하며 펑펑 쓰고 다녔다. 금수저나 은수저라고 불릴 만큼은 아니었지만 친한 친구 몇에게 으스댈 정도는 되는 집안 사정이었으니 말이다.


 때문에 친구들이 돈이 없다며 노는 일을 무르는 게 싫었고, 이해할 수 없었다. 나에게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 공감할 수 없었다. 지금 떠올려보면 헛웃음이 나오겠지만 그때는 그러했다. 철은 물론이거니와 돈에 대한 개념도 잡히지 않았다.


 아버지는 내가 초등학생 고학년이 되기 전에 다른 지역에서도 사업을 하겠다며 그곳에서 사업을 성공시킨 후, 이사를 가서 집을 짓고 살자는 말을 남기고 훌쩍 떠나셨다. 이주, 길게는 한 달 반 정도에 한 번씩 집에 찾아오셨고, 나는 용돈을 많이 주시는 아버지가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시간을 보냈다(조경과 건설업을 같이 하셨다). 아버지는 1층에는 대게 집을 운영하는 건물을 두고, 사놓은 땅을 두고 다른 지역으로 가셨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다른 지역으로 가실 때에 프랜차이즈 가게의 사장님이 되셨다. 집에서 삼십 분이 걸리는 거리에서 출퇴근을 하며 익숙하지 않은 일을. 월 육백 정도를 벌었다고 하셨는데, 애초에 가난해질 거라 여기지 않았던 탓에 빼놓은 돈은 없었다. 우리 집안 사정은 그 정도였다. 남겨놓을 필요 없이 돈이 쑥쑥 들어오는. 하지만 쌓아두지 않거나 못하는.


 어머니는 나와 나의 언니를 돌보며 삼십 분이 걸리는 거리를 출퇴근하며 돈을 버셨다. 이때에도 나는 맞벌이로 인한 외로움을 느껴본 적은 없었다. 가끔 늦게 들어오는 어머니는 내가 걱정돼 가정부 아주머니께 기다려달라고 부탁을 하고 가셔서 내가 혼자 있다고 느껴지지는 않았으니까(가정부 아주머니께서는 가끔 오셔서 집을 치워주시고는 하셨다).


 기립성 저혈압 때문에 쓰러진 날에도 가정부 아주머니가 계셨다. 아주머니께서는 어머니께 말을 했고 그 후 어머니의 핸드폰 인터넷 검색어에는 기립성 저혈압에 관한 글이 넘쳐났으니, 바쁜 와중에도 나를 챙기셨다는 걸 모를 수 없었다. 아버지는 기립성 저혈압은 친가를 닮아 피가 없어 그런 거라고 하셨다. 그에 좋은 음식도 몇 개 추천해주셨던 걸로 기억한다.


 한 번은 어머니가 장을 보러 가신 시간에 거칠게 문을 두드리고 비밀번호를 누르며 문고리를 돌리는 소리가 들린 적이 있다. 나는 이 날이 아직도 선명하다. 처음 문을 두드릴 때에 날이 섬을 알아채고 티비 소리를 죽였다.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리기에 큰 방 안으로 숨을까 망설이다가 철컹철컹하며 문고리를 돌리는 소리에 문이 금방이라도 열릴 것 같아 문 앞으로 달려가 머뭇대다가 겨우- 철컥, 큰 소리를 내며 잠 문고리를 잠그지는 못하고 안전고리 하나만 달랑 걸어놓고 큰 방으로 달려갔다. 소리 안 나게 닫은 채 떨리는 손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문 뒤에 주저앉아 엄마.. 엄마하고 불렀다. 금방 계산을 마치고 물건을 봉투 안에 집어넣고 있었는지 부스럭 소리가 났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엄마만 불렀다. 몇 번을 반복하자 이상함을 알아채고 다급하게 이름을 부르며 왜, 하고 물으셨고 나는 문장 하나 만들지 못하고 이상한 사람이 문을 두드린다고 더듬더듬 떨며 말했다.


 어머니는 지금 간다며 전화를 끊으셨고 멀지 않은 거리에 있던 터라 금방 도착하셨다. 엘리베이터 소리가 선명히 들리고 문이 열리자 어머니는 소리치셨다. 왜 남의 집 앞에 있냐고. 나는 어머니가 오셨다는 사실에 안심하고 어머니가 걱정돼 문 앞에서 문고리를 잡고 기다렸다. 문고리를 잡지 말라고, 여기는 아저씨네 집이 아니라고 그 뒤는 계단이니까 뒤로 가지 말라고. 인사불성이 되어 여기가 자신의 집이라 주장하는 아저씨와 대화가 통하지 않자 어머니는 경비실 아저씨께 전화해 이상한 사람이 집 앞에 와 있다며 도와달라고 요청하셨고- 경비원이 오고 나서야 사건은 일단락이 되었다. 어머니는 따라가 상황 설명을 듣고 올라와 옆 라인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셨다.


 그리고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많이 놀랐겠네' 같은 말은 바랐는데 아버지는 '아빠도 그런 적 있어 괜찮아'라고 하셨다. 그게 위로였는지, 나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인지했지만 무엇이 이상한지는 역시 알지 못했다. 이상하다 여겼던 이유를 알게 된 건 삼 년은 족히 지나고 나서였다.


 아무 생각나지 않던 그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떠올렸지만 나는 그때 경찰을 불렀어야 했다. 이상한 사람이 어머니를 다치게 할 거라는 생각까지 이어지지는 못 했고- 우리 집 문을 두드린 사람이 정말로 무서운 사람은 아님에 안심했으며, 왜 아버지는 떠오르지 않았는지에 대한 생각은 없었다. 아버지의 부재를 인식하지 못했다. 우리 집에 없는 게 당연해지기 시작했다.


 몇십 년째 나이를 먹지 않고 다섯 살을 유지하고 있는 감자 머리 아이가 나오는 애니메이션은 그때까지도 음소거된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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