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불 May 16. 2021

피아노에 얽힌 복잡 미묘한 감정들

1편

아니  주말마다 이렇게 비가 오는지


누군가 주말마다 놀러 가는 사람들을 시샘해 

날씨를 조작하고 있다고 해도 믿겠어


어쨌든 미지근끈끈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나의 애정 하는 사촌언니가 집으로 놀러 왔다


같이 주꾸미 제육도 시켜먹고 

아주 닮은 서로의 엄마들에 대한 이야기도 실컷 하고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엄마랑 언니네 엄마는 자매다. 당연한 얘긴가?)

피아노 위에 앉아있는 고양이와 함께 

젓가락 행진곡도 쳤다.


피아노 치는 모습이 너무 잘 어울리는 언니. 젓가락 행진곡이 아니라 녹턴 분위기.


피아노 하니까 생각난 것인데 

사실 나는 피아노와 조금 안 좋은 사이다.



지금보다 한 십오 년쯤 전,

이차성징이  일어나던 이른 사춘기 시절,

죄라도 지은 양 고개를 푹 숙이고

벌게진 얼굴로 아빠에게 끌려

도착한 곳이 있었으니 

바로 ‘OO엔젤음악학원’이었다.


내가 그렇게 부끄러워한 이유는,

그곳이 유치원 생들이나 갈 법 한 이름의 음악학원이었기 때문이다.(실제로 유치원생들로 가득했다)


한창 또래보다 키도 비쭉이 크고 웃자랐던 나는

다 큰 어른 같은 몸을 하고

아빠 손에 이끌려 어린애들이나 갈 법한 곳에

간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창피했다.


그날의 축축한 땅과 차가운 공기마저 생생히

기억난다.


그것이 나와 피아노의 첫 인연이었다.


그땐 왜 그리도 부끄러운 것이 많았는지

도레미 음계부터 뚱땅거리고 있는 나 자신이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지금과 다르게

그 시절 나의 엠비티아이는 INFP로 추정된다.)


그래도 나름 음악에 조예가 깊었던 사춘기 소녀로서

나는 그렇게 창피한 나를 극복해가면서 매일 같이

연습을 했다.


어느 정도 피아노를 치게 되었을 땐

대여섯 살이나 어린 동생들을 곁에 두고

신나게 동요를 쳐주었던 생각이 난다.


당시 살았던 넓은 집에서

나는 피아노 반주를 쳐주고

어린 동생들은 목이 터져라 몇 시간이고

동요를 불렀던 날들의 기억은

그래도 피아노에 얽힌 꽤 좋은 기억이다.


 피아노에 얽힌 좋은 기억이라면  있다.

그 촌스러운 이름의 피아노 학원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정도로 성숙해진

중학생의 어느 시절에

그곳에 다니던 ‘쌍방울 오빠’를 좋아하게 된 것이다.


왜 쌍방울이냐 하면 귀에 점인지 무엇인지

두 개의 볼록한 표식(?)이 있었던

오빠였기 때문인데

화이트 데이날 내 연습 방으로 와서

사과맛 츄파춥스를 건네주며

쇼팽의 혁명을 멋지게 쳐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 오빠와는 이후 학교 오케스트라단에서

또 만나게 되었는데

그때 그 오빤 나보다 훨씬 멋지고 잘난

바이올린 제1파트 언니를 좋아하게 되어버려

그만 내 풋사랑으로 끝났다는 슬픈 전설(?)이 있다.


어쨌거나 이렇게 좋은 기억도 많지만

사실 피아노는 대체로 내게 상처만 줬다.


앞서 말했던 학원을 나는 몇 년 동안

어린 동생과 함께 다니게 되었는데,

피아노를 좋아해 매일같이 연습하던 나와 달리

동생은 연습도 대충 하고 레슨도 대충 받던

좋게 말해 자유로운 아이였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 앞에서(특히 어른)

피아노를 치게 되면

자꾸 상대를 의식하게 되고

그 순간 머리가 하얗게 되며 손가락이 꼬여

완전히 곡을 망치곤 했다

반면 동생은 곡도 뚝딱 외우고

떨지도 않고

같은 곡을 쳐도 건반 터치부터가 달랐다


일례로 그다지 섬세하지 못한 부모님은

내가 피아노를 칠 때면 종종 언제 그만두니

라는 신호를 보내셨고 지겨워하셨다.

하지만 동생에게는 제발 한 곡 더 쳐달라고

애원하기까지 할 지경이었다.


비단 부모님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사정이 어려워져

동생이 그만두어야 했을 때

동생의 재능을 아깝게 여긴 선생님이

친히 집으로 와서 동생을 위한 개인 레슨을

해주기도 했다.


동생이 레슨 받던 어느 날

다과를 가져온 온 나를 보고

선생님이 너도 피아노를 배우지 않았냐며

내게도 한 번 쳐보라고 하신 적이 있다.

갑작스러웠지만

기회인  같아 떨리는 마음을 안고 피아노를 다.


 소절 듣지도 않더니 이윽고 선생님은


넌 아무래도 이쪽은 아닌 것 같구나! 가봐라


하셨다.


그날은 너무 속상해서 방에서 많이 울었던 것 같다.


대체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재능이 없는 내가 너무 싫었고 비참했다.

동생과 항상 비교당하는 게 서러웠지만

그래도 동생이 피아노를 

기가 막히게 치는 것은

사실이었다.

아무리 연습해도 나는 그런 느낌을 

  없단 것을  알았다.


이후로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동생이 준비하는 콩쿠르를 돕기로 자처했다.

연주하는 것엔 영 재능이 없었어도

동생을 부드럽게 가르치는 것에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매일같이 동생의 연주를 봐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기다리던 동생의 콩쿠르 날이 되었다.


-다음 편 계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