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한테 왜 그랬어요?

'피의 군주' 이방원의 숨겨진 화력

by 이재

'피의 군주' 이방원!

그에겐 분명 냉혈한스러운 면모가 있지만, 그가 처한 상황이나 행동의 동기를 살펴보면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측면도 있다.

이방원은 왜 왕자의 난을 일으켰을까?

그리고 자신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처가와 나아가 며느리 집안까지 망가뜨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의 인생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세 사람, 새어머니·정도전·아버지에 대한 배신감과 원한도 커다란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방원과 이 세 사람의 인연에 돋보기를 비추며 따라가 보자.


1. 새어머니 신덕왕후

: 지극한 효심이 지독한 배신감으로


이성계의 경처(도성에 거주하는 아내)인 신덕왕후 강씨가 이방원을 처음 만난 건 이방원이 8살 때였다. 남편 이성계가 아들 중 가장 똘똘했던 이방원을 강씨가 있던 개경으로 유학 보냈기 때문이다.


실록에 따르면 어린 이방원이 책 읽는 소리를 들은 그녀는 "너처럼 똘똘한 아이가 어찌하여 내게서 나지 않았는가!"라며 그의 영특함을 놀라워했다고 한다.

그녀는 그를 사랑으로 대했고, 이방원도 그녀에게 효성을 다했다.


강씨도 또한 기이하게 여기고 사랑하니 태종(이방원) 또한 효성을 다하였다.
-태종실록-


즉, 어린 시절 이방원은 공부 잘하고 예의 바르며 부모님께 효성을 다하는, 품성이 좋은 어린이였던 것이다.


새어머니는 그가 학업에 정진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요즘으로 비유하자면, 공부 재능이 있는 이방원을 위해 장거리 운전도 마다하지 않고 유명 학원에 등록시켜 주며 고된 뒷바라지를 충실히 해준 고마운 존재였다. 그 덕분에 이방원은 성균관 재학 시절에도 두각을 드러내다 마침내 어려운 과거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다.

무예에는 능했지만 공부 머리는 없던 아버지 이성계에게 아들 이방원의 과거 급제 소식은 가문의 자랑이자, 아들을 통해 드디어 학문에 대한 한을 풀 수 있었던 커다란 경사였다.


이 빛나는 성과를 함께 이룬 이방원과 새어머니는 사이가 매우 돈독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위화도회군으로 가족 전체가 역적으로 몰려 쫓길 때의 일화에서도 알 수 있다.

이방원은 포천에 있던 친모를 구한 후, 자신의 안위를 생각지 않고 10시간 넘게 말을 타고 달려가 개경의 새어머니와 이복동생들을 구해냈다.

그에게 있어 새어머니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목숨을 걸고서라도 반드시 구해야 할 진짜 가족이자 소중한 존재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랬던 새어머니가 새 나라 건국 후에는 야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이, 실력, 공로 그 무엇으로 봐도 합당한 후계자인 자신을 제치고, 제 몸에서 난 어린 아들(이방석)을 세자 자리에 앉히 위해 밤마다 남편 이성계에게 '베갯머리송사'를 펼치고, 정도전 등 핵심 참모들과 작당 모의를 했다. 급기야 정도전을 통해 사병 혁파를 구실로 자신의 정치·군사적 팔다리까지 자르며 벼랑으로 내몰았을 때, 이방원은 극심한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2. 동지였던 정도전

: "목숨까지 구해줬는데, 내게 칼을 겨누다니!"


이방원보다 나이가 25살 많았던 정도전은 이성계 진영에서 새 나라의 명분과 제도 설계를 담당한 매우 중요한 인물이었다.


고려를 지키려 했던 정몽주는 이성계 진영을 무너뜨리기 위해 이성계의 핵심 인물부터 괴멸시키는 전략을 폈는데, 그렇게 타깃이 된 인물이 바로 정도전이었다. 그래서 정도전은 정몽주 세력에 의해 체포와 투옥, 유배를 당하며 정치적 사형 선고를 받은 상태였다.

이 상황이 이방원에겐 어떻게 보였을까?

정도전이 무너지면 칼끝은 결국 아버지에게 향할 것이고, 정도전 없이는 건국의 꿈도 물거품이 되어, 아군은 그저 지방 무장 세력으로 전락해 괴멸당할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이방원은 자신의 수족과 같은 믿을만한 가신들을 동원하여 정적의 수장인 정몽주를 선죽교에서 철퇴로 내리쳐 처단했다.

이 결정에는 정적 제거라는 목적뿐 아니라, 아군의 핵심인재인 정도전을 반드시 구해내야 한다는 현실적 판단도 포함되어 있었다. 즉, 이방원은 손에 피를 묻히면서까지 정도전을 구해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꿈꾼 정치 이상은 전혀 달랐다. 정도전은 재상들이 왕권을 강하게 견제할 수 있는 재상 중심의 정치를 꿈꿨고, 이방원은 강력한 왕권 중심의 정치를 꿈꿨으니 말이다.

두 사람은 서로의 이상을 알았고, 서로의 이상에 동의하진 않았지만 지금 당장은 서로가 필요했기에 한 배를 타고 있었다. 그래서 이방원도 정도전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썼던 것이다.


그런데 조선이 건국되자마자 정도전이 발 빠르게 아버지·새어머니 합심하여 자신을 후계구도에서 제외시키고, 그 후 점차 부모님의 묵인하에 자신의 정치·군사적 손발을 자르며 사지로 몰기 시작했을 때,

이방원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정도전! 당신이 나를 견제할 거라 예상은 했지만, 생명의 은인인 내게 이렇게까지 발 빠르고 철저하게 칼끝을 겨누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당신은 단순히 나의 앞길을 막는 것을 넘어, 새어머니의 불안을 부추기고, 아버지의 눈을 가려서 나를 '가족'이라는 울타리 밖으로 밀어내고 있구나.

당신은 ​내가 손에 피를 묻혀 정몽주를 처단해 준 덕분에 살아나지 않았나? 보통 사람이라면 생명의 은인인 내게 어떻게 보은(報恩)할까를 궁리할 거야. 그런데 당신은 그 피를 구실로 나를 맹수 몰아세우며 부모님과 나 사이를 이간질하고 있다!


당신은 새어머니의 욕망에 편승하고, 모성애와 생존 본능을 교묘하게 파고들 이렇게 속삭였겠지.

"방원의 칼끝에 묻은 피가 진정 정몽주 한 사람으로 끝날 것이라 보십니까?

보십시오. 방원은 전하의 명도, 나라의 법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입니다. 그런 방원이 보위에 오르면 당신의 품속에 있는 어린 대군들이 과연 무사하겠습니까? 지금 결단하여 저 맹수를 쳐내지 않으시면, 훗날 대군들의 피눈물을 닦아줄 기회조차 얻지 못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당신은 한때 나를 극진히 아꼈던 어머니에게 공포와 불안이라는 암흑을 주입하여, 나를 죽이려는 칼잡이로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당신이 내 아버지는 또 어떻게 구워삶았을지, 그 뱀 같은 교묘한 혓바닥을 어떻게 놀렸을지 안 봐도 뻔하구나.


당신은 내가 정몽주를 격살한 사건에 '불충(不忠)'이라는 프레임을 씌워서 내 아버지의 귀에 이렇게 속삭였을 거야.

"​전하, 방원은 아들이 아니라 '잠재적 찬탈자'입니다!

보십시오. 방원은 전하의 명령도 기다리지 않고 나라의 대유(大儒)인 정몽주를 길에서 도륙했습니다. 이는 전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앞길에 방해가 되면 그 누구도 죽일 수 있다는 잔혹한 본성을 드러낸 것입니다. 지금은 아비의 적을 쳤으나, 훗날 전하의 뜻이 본인의 야망과 어긋날 때 그 칼끝이 어디로 향하겠습니까? 저 아이는 전하의 신하가 아니라, 전하의 자리를 넘보는 사나운 맹수일 뿐입니다."


그리고 전쟁터에서 살생을 많이 했던 아버지가 노년에 들어 '도덕적이고 평화로운 임금'이 되고 싶어 하는 심리를 파고들어 이렇게 속삭였겠지.

"전하! 새 나라는 '칼'이 아닌 '붓'으로 다스려야 합니다.

고려는 무력에 의해 망했으니, 조선은 달라야 합니다. 피 묻은 칼로 세운 나라를 다시 피 묻은 손에 맡기시겠습니까?

방원은 이미 피의 맛을 보았습니다. 그런 아들을 후계자로 세우면 조선은 영원히 칼춤이 멈추지 않는 아수라장이 될 것입니다.

나라를 오래 보존하시려거든, 도화지처럼 깨끗한 어린 대군(이방석)을 세워 재상들이 보필하며 '성리학의 나라'를 만들게 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신은 아버지가 새 나라를 시작함에 있어 무력으로 찬탈했다는 비난을 극도로 꺼리셨음을 알았지. 그래서 끝까지 당대 최고의 명망가인 정몽주의 '동의'를 얻어 '반역자'가 아닌 '천명을 받은 왕'이 되고 싶어 하셨던, 그 정당성을 향한 갈망을 파고들며 이렇게 속삭였을 거야.

"전하! 방원은 전하의 '덕'을 훼손했습니다.

전하께서 정몽주를 아끼셨던 그 숭고한 진심을 방원이 단번에 무너뜨리는 바람에, 세상 사람들은 이제 전하를 '혁명가'가 아니라 '고려의 충신을 암살한 자', '반역자', '왕위를 찬탈한 자'로 기억할 것입니다.

이 모든 오명이 누구 때문입니까? 방원은 전하의 덕망을 깎아먹는 아들입니다. 그런 아들을 곁에 두시는 것은 전하의 위엄을 스스로 짓밟는 일입니다."


당신의 세치 혀에 완전히 압도당하여 나의 능력을 위험한 야심으로 간주하게 된 내 부모님!

그리고 그 부모님께 내쳐진 내 신세!


당신은 내 어머니와 아버지 앞에서 습관처럼 유교적 명분과 '성인(聖人)의 도'를 설파했겠지만, 실상은 자기 목적을 위해서라면 생명의 은인에게도 칼을 겨누고, 그 무엇이라도 뒤틀어 참소할 수 있는 비정하고 냉혈한 인간일 뿐이야.

당신의 교활함에 치가 떨린다!!!


3. 아버지 이성계

: "아버지, 어떻게 사랑이 변합니까?"


이성계도 이방원에게 상처를 주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성계는 이방원에게 어떤 아버지였을까? 이방원의 말을 들어보자.


"어릴 때 아버지는 형제 중 나만 개경으로 유학을 보내주고 나의 과거 급제를 가문의 영광으로 여길 정도로 나를 아끼셨는데, 이제는 꼬맹이 어린 이복동생에게 권력을 넘겨주시려고 내 목에 칼이 들어오는 것도 방관하고 계시는구나!


문무를 겸비한 나의 재능을 필요할 때 쓰기만 하고 제대로 된 보상은 전혀 하지 않는 아버지!


새나라를 위한 거시적인 안목 보다 체면이나 친분, 배갯머리 송사 같은 미시적인 것에 더 쉽게 흔들리는 아버지!


아들인 나의 사지를 뱀처럼 결박해 오는 정도전 같은 자의 말은 철석같이 따르면서, 핵심 정적 정몽주를 제거해 건국의 기틀을 닦은 나의 크나큰 공로는, 인정해주기는 커녕, "왜 그분(정몽주)을 죽인 것이냐?"며 오히려 나를 질책하고 미워하며 견제까지 하는...!


크고 강한 무인 기질에 걸맞지 않게 의외로 소심하고, 냉철한 상황 판단력도 부족한 아버지!"


이런 아버지를 보며 이방원은

'아, 내가 아버지께 정당한 절차로 인정받기는 어렵겠구나...'

하며 점차 기대를 잃어갔을 것이다.




이방원의 처지는 회사로부터 팽당하고 극한의 부당대우를 받고 있는 노동자비슷하다.

노동자는 온갖 위험을 감수하고 뼈 빠지게 일해서 창업에 크게 기여했지만, 회사는 설립 후 돌변하여 합당한 보상은커녕 퇴직금도, 명예도 없이 맨몸으로 나가라며 압박하고, 심지어 칼까지 들이밀고 있는 것이다.


온 맘 다해 충성했던 조직에서 내쳐지고 사지로까지 내몰렸을 때,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배신감에 너무 억울하고 절박하여

할 수만 있다면 나를 가로막는 것들을 다 깨부수고 사장실로 쳐들어가 따지고 싶지 않을까?

영화 <달콤한 인생>의 선우처럼 말이다.

선우 : "저한테 왜 그랬어요? 말해봐요. 저 진짜 생각 많이 해봤는데 정말 모르겠거든요. 저 진짜로 죽이려고 그랬습니까? 7년 동안 당신 밑에서 개처럼 일해온 날!!!"


피비린내 나는 왕자의 난을 일으켜 아버지를 압박하고 감금했던 이방원의 감정의 화력과 겹치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4. "다시는 배신당하지 않겠다!"

: 잔혹한 예방책의 서막


새어머니, 정도전, 아버지에 대해 이방원이 느꼈을 감정의 공통분모는 바로 배신감이다.


배신감에 치를 떨어본 사람은 상대의 친절이나 호의를 있는 그대로 믿지 못한다. 이들의 편도체는 상대의 호의를 오히려 위험 신호로 감지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며, 나중에 더 큰 것을 뺏어가려고 저러는 것이라는 편집증적 의심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심이 깊어지면 그들은 상대가 자신을 배신하기 전에 먼저 배신을 선택한다. 이는 상대를 공격하려는 목적이라기보다, 스스로 상처받지 않기 위해 관계를 먼저 끊어 버리는 일종의 선제적 방어이자 생존 본능이다.

​애착 유형에 따라서도 호의는 오해를 낳는다. 특히 회피형 애착을 가진 사람들에게 지속적인 친절은 통제간섭으로 느껴질 뿐이다.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이들은 상대가 다가올수록 뒷걸음질 치며 거리를 둔다.


이방원이 자기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던 처가와 나아가 며느리집안까지 망가뜨린 이유도 이런 심리와 맥락을 같이 한다.


그는 새어머니의 베갯머리송사와 여인의 정치력, 처가의 파워가 어떻게 판을 뒤엎는지를 뼈저리게 체감했기 때문에,

그에게 있어 여인들(아내와 며느리)은 그가 어렵게 일군 조선이라는 시스템에 언제든 치명적인 에러를 일으킬 수 있는 잠재적인 위험요소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그는 아마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대를 이어야 하니 집안에 여자를 들이지 않을 순 없겠지만, 저들의 역할은 반드시 거기에만 머물러야 한다. 저 여인들 주위에 판을 뒤집는 데 사용할만한 전력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된다. 그러니 전원을 미리부터 철저히 차단시키고, 전력 자체, 전신주 자체를 아예 뿌리째 뽑아놔야 한다. 그래야 내 아들, 내 손주들은 나와 같은 어이없는 일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아내와 며느리의 집안을 초토화시킨 것이 아닐까?


이방원은 자신의 등에 칼을 꽂은 자들에 대해서는 반드시 복수했는데, 그 대상이 이미 죽은 경우에도 예외가 없었다.


그는 태종으로 즉위한 후 신하들에게 이렇게 명령했다.

"(강씨의) 봉분을 완전히 깎아 무덤의 흔적을 남기지 말라."


그리하여 이성계의 사랑을 듬뿍 받아 죽어서도 도성 내에 화려하게 조성되었던 그녀의 무덤은 훼손되었고, 유골은 도성 밖 외딴 산기슭으로 이장되었다. 그렇게 이장된 무덤이 바로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정릉이다.

이미지 출처 : tvN 벌거벗은 한국사

뿐만 아니라 그녀의 지위는

왕후에서 후궁으로 강등되었고

(신덕왕후→후궁강씨),

그녀의 무덤도 '능'이 아닌 '묘'로 격하되었으며, 제사마저도 더 이상 왕실에서 모시지 않았다.

그리고 화려했던 무덤에 설치되었던 정자는 헐어서 건물을 짓는 데 사용하게 했다.


그런데 이렇게 했음에도 분이 다 풀리지 않았던 것일까?


그는 청계천 광통교 복구공사에 굳이 새어머니의 무덤에 있던 묘지석을 자재로 사용하도록 허락하여, 그 다리를 수많은 백성들이 밟고 지나가게 만들어 버렸다.


청계천 다리밑에 박혀있는 묘지석을 볼 때마다, 여전히 살기 어린 눈빛으로 이를 갈고 있는 그의 분노가, 6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매섭게 전해지는 듯하다.

이미지 출처 : tvN 벌거벗은 한국사

이방원은 결국 승리했고 원하는 권력을 가졌지만, 평생 누군가를 믿지 못하는 고독한 왕으로 살아야 했다. 그가 밟고 지나가게 만든 그 묘지석은, 어쩌면 타인에게 준 상처만큼이나 본인의 가슴에도 깊게 박힌 배신의 흉터는 아니었을까?



※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방원이 저지른 잘못을 미화할 의도는 전혀 없으며, 단지 이방원을 통해 그와 같은 입장과 심리를 탐구하고 싶어서 쓰게 되었습니다.

이 글에는 추측이나 추정이 가미되어 있고, 내용상의 오류가 있을 수도 있음에, 양해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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