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더 지니어스 3>에서 권주리-신아영 두 사람의 데스매치를 보았다.
상대방이 쓴 숫자를 예측하여 상대방보다 높은 숫자를 제시하면 이기는 게임이었는데, 상대방이 어떤 숫자를 낼지를 데스매치라는 긴장 속에서 정확하게 예측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두 사람 모두 멘붕 상태인 것 같았다.
그런데 게임에서 보이는 두 사람의 태도는 확연히 달랐다.
한 사람은 '어차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으니 우리 둘 다 길게 시간 끌지 말고 빨리 말하고 빨리 끝냈으면 좋겠다'는 태도였고,
다른 한 사람은 옆에 노트를 놓고 마치 수학 문제를 풀 듯 최대값과 최소값을 계산하며,
정확히 알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알아내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애쓴다고 해서 반드시 승리가 보장되는 건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하늘은
나의 기량이나 조건이 완벽하지 못해 어쩌면 질 게 뻔한 상황에 놓였더라도,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해 보려는 그 태도를 예뻐해 주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사람에게 미소를 보내준다.
링 위에 선 이상,
절대 쉽게 백기를 들지 않겠다!
질 때 지더라도 마지막까지 주먹을 뻗으며 쓰러지겠다!
이런 마음으로 임해야 스스로에게 덜 미안하지 않을까?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의 그림자일 뿐이다.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이런 마음, 이런 태도로 임하는 사람의 투지는
그 스스로를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승리라는 고지에 더 가까이 데려간다.
길을 걷다 보면 반대편으로 건너가야 하는데 신호등이 빨간불일 때가 있다.
이때 목적지에 조금이라도 더 빨리 도착하는 방법이 있다.
그건 바로
그 자리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녹색불이 켜지기만을 기다리기는 대신,
일단 현재의 라인에서라도 목적지 방향으로 계속 조금씩 걸어가 보는 것이다.
지금은 내게 녹색불이라는 기회가 오지 않았지만, 작은 걸음이라도 걷다 보면 녹색불이 켜진 건널목을 만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때 그 건널목은 나를 목적지에 연결해 주는 고마운 징검다리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아무 관련이 없어 보이던 길 건너편에서의 나의 모든 걸음도, 헛된 삽질이 아니라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하나의 생생한 의미였다는 것을 드러내 줄 것이다.
"녹색불이 켜졌습니다. 건너가도 좋습니다"
건널목에서 이런 고마운 환영인사를 듣는 일은 생각보다 흔하다.
건널목은 단 하나가 아니라 도처에 있고 녹색불의 기회도 무수히 많기 때문이다.
"여러분보다 정말 살짝 먼저 사회에 나와서 느낀 걸 하나 얘기하자면은, 정말 기회는 많아요. 그 기회를 잡기란 참 어렵고... 그러니까 준비된 자한테만 기회가 오는 게 아니라, 준비된 사람이 기회를 잡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기회는 많아요. 어느 한 분야로든 열심히만 하고 있으면 되는 것 같아요."
- ITZY 멤버 '신류진' -
인생에 기회는 세 번 온다는 말이 있지만 누군가는
실제로 기회는 도처에 널려있으며
세 번이 아니라 그 이상, 횟수가 정해져 있지 않은 백지수표 같은 것일 수 있다고 말한다. 도처에 널려있는 녹색 신호등처럼 말이다. 나도 이 생각에 동의한다.
기회는 많은데 그 기회를 잡지 못하는 건 내가 그것이 기회임을 알아보지 못하거나 또는 알아봤다 해도 그 기회를 담을 그릇이 내게 준비되어 있지 않아서인 경우가 많다.
성경에는 열 명의 신부들러리 처녀 이야기가 나온다.
이들은 당시의 결혼풍습에 따라, 등을 들고 신랑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가 신랑을 맞이하여 함께 혼인 잔치에 참여해야 했다.
그런데 이 중에 지혜로운 처녀들은 등과 등에 채울 기름까지 준비했으나 나머지 처녀들은 등 밖에 없었다.
신랑의 도착은 생각보다 늦어져서 처녀들에겐
"신랑은 왜 아직도 안 오는 거야? 출발은 했을까? 정말 오기는 하는 건가?"
하는 지루한 시간이 찾아왔다. 그래서 그들은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하지만 마침내 신랑이 도착했을 때,
등과 기름까지 준비했던 지혜로운 처녀들은 등에 바로 기름을 채워 신랑을 맞이하러 갈 수 있었지만,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처녀들은 허둥대다가 결국 혼인잔치에 참여하지 못했다.
신랑이 왔을 때 바로 맞이할 수 있게 등과 기름을 잘 준비하라는 저 비유는, 꼭 종말론뿐 아니라, 기회가 왔을 때 잘 담을 수 있도록 나만의 그릇을 평소에 잘 준비하고 있으라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니 지금 해야 할 일은 작은 걸음이라도 걸으며 내면의 그릇을 준비하는 일이다.
남 탓, 세상 탓, '어차피 안될 거야'라는 자포자기 자세는 본인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된다.
다시 데스매치 게임으로 돌아가서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뭐라도 해보려고 애쓰던 사람은 게임을 불리한 상태에서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겼다.
이건 비단 게임뿐 아니라 삶의 대부분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영화 <암살>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하와이 피스톨:
"솔직히 조선군 사령관하고 강인국을 죽인다고 독립이 되나?"
안옥윤:
"둘을 죽인다고 독립이 되냐고? 모르지.
그치만 알려줘야지. 우린 계속 싸우고 있다고.
돈 때문에 뭐든지 하는 당신처럼 살 순 없잖아."
안옥윤의 저 대사는 "설령 이길 수 없다 해도 최선을 다해 보지도 않고 미리 포기하며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 수는 없지 않느냐"는 말처럼 들린다.
흔히 우리나라를 위기에 강한 민족이라고 한다.
어쩌면 승리가 보장되지 않고 질 것 같더라도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은 다 해봐야 하지 않느냐는 이 작은 생각이, 우리나라를
언제 벗어날 수 있을지 기약도 없던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게 만들고, 6.25 폐허에서 산비탈이나 무덤가에라도 집을 지어 생존을 이어가게 하고, IMF 외환위기 때 각 가정에서 작은 금붙이라도 자발적으로 내놓아 다시 힘을 모으게,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