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성대군의 독백
기록은 나를 실패한 거사의 주인공으로 남겼으나, 나는 나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오백 년의 긴 침묵을 깨고 다시 그대들 앞에 섰다. 내 이름은 이유(李瑜). 세종의 6번째 아들이자, 단종의 숙부이며, 세상은 나를 금성대군(錦城大君)이라 부른다.
요즘 영화 <왕과 사는 남자> 덕분에 잊혔던 나의 이야기에 다시 관심을 두는 이들이 많아졌다고 들었다. 고맙다.
그대들 중에는 나의 선택을 아쉬워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당시의 대부분의 왕족들처럼 나도 수양대군의 편에 서서 어린 단종이 겪는 부당한 폭력을 침묵하거나 외면했더라면 왕족으로서의 안락과 부귀영화를 계속 누릴 수 있었을 텐데, 왜 그 안락을 거부한 채 스스로 죽음의 길로 들어섰는지 묻고 싶을 것이다.
나는 단종을 구해내고 빼앗긴 자리를 되찾아주려다 끝내 사사되었고,
그 후 왕족의 지위마저 박탈, 급기야 내 후손들은 노비로까지 전락했으니, 그리고 내 명예는 수백 년이 지나서야 복원되었으니... 그대들이 아쉬워하고 의아해하는 심정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내 후손들을 생각하면 나도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나는 내가 가려는 길이 어떤 길인지 알고 있었다.
권력이 얼마나 비정한지는 이미 나의 할아버지를 통해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
나의 할아버지 태종 이방원은 정적들을 살육하고 형제까지 죽이며 왕이 되신 분이다. 왕좌에 오른 후에도 피바람을 멈추지 않아서 아내의 가문은 물론, 며느리의 친정까지 초토화시켰다. 여기서 말하는 며느리가 바로 나의 어머니 소헌왕후다.
내 어머니는 시아버지의 칼에 아버지를 잃고, 친정 가족들이 노비로 전락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살아야 했다. 나는 그 곁에서 자랐다.
그래서 나는 권력 앞에서 가족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무의미할 수 있는지, 내가 누리고 있는 이 안락함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의 원망과 고통이 서려 있는지를 은연중에 체감하며 살았다.
할아버지가 피를 뿌리며 쟁취하신 일화를 들을 때마다, ‘승리’라는 영광보다 그 아래 깔린 고통과 원망에 더 오래 시선이 머물렀다.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내 마음속엔 점차 이런 다짐이 생겨났다.
“나는 저렇게 살지 않겠다. 내게 힘이 있다면 나는 빼앗는 데 쓰지 않고 지키는 데 쓰겠다.”
이건 단순한 생각이 아니라 어느새 나를 이루는 방식, 나의 정체성이 되었다.
아버지(세종)께서 건강이 않좋으실 때 내 집에서 요양하시고, 형님(문종)과 함께 궁을 비우실 때 어린 단종을 내게 맡기신 것도 '누군가를 지키려는' 나의 이 마음을 신뢰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둘째 형 수양대군은 달랐다.
형은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를 닮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서인지, 할아버지께서 이루신 결과로써의 승리와 강함 그 자체에 매료된 사람이었다.
같은 피를 나눴지만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왜 힘으로 짓밟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형은 왜 힘을 가지고도 휘둘러 군림하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형이 계유정난을 일으켰을 때, 나는 그 칼날에서 할아버지의 그림자를 보았다.
그리고 그 칼끝에는 내가 품에 안고 키우던 조카 단종이 있었다.
형님(문종)을 대신해 종종 내 집에서 돌보았던 아이. 내 품에 안겨 방긋방긋 웃던, 내겐 아들과도 같은 그 아이가 맹수 앞에 내던져진 새끼사슴처럼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이걸 보고 내가 어떻게 돌아설 수 있었겠는가.
게다가 나는 형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었다.
형은 한 번 칼을 들면 끝까지 놓지 않는 사람이다.
내가 죽은 후에 일어난 일들, 그대들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들을 떠올려 보라.
보통 사람이라면 아무리 정적이라도 장례는 치르게 할 텐데, 형은 죽은 단종의 시신조차 거두지 못하게 하고 강물에 던져버리며, 마지막까지도 대중들에게 권력의 경고로 삼았다지.
순흥에서는 거사에 연루된 이들뿐 아니라 아무 상관없는 백성들까지 학살하며, 그 마을 자체를 지도에서 없애버렸다지.
집요하게 파고들어 뿌리까지 뽑아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그게 바로 내 둘째 형이다.
형은 셋째 형(안평대군)을 죽인 후 나도 감시하고 있었다. 내 집에 누가 드나드는지, 내가 뭘 하는지 작은 움직임 하나까지도 철저히 감시했다.
그리고는 고작 집에서 사람들과 활을 쏘았다는 이유로 나를 유배형에 처했다. 활쏘기는 둘째 형 본인도 대군 시절에 자주 했을 정도로 아주 흔한 놀이였는데 말이다. 그 정도로 형은 어떻게든 나를 옭아매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때 나는 확신했다.
셋째 형을 삼킨 칼날이 이제 나를 향해 번뜩이고 있음을. 나를 표적으로 삼은 형은 이미 결심이 섰고, 설령 내가 침묵하거나 방관하더라도 멈추지 않고, 반드시 끝장을 볼 것임을!
형은 내가 단종을 얼마나 아끼는지 알았으니, 형에게 나는 단종이 살아도 죽어도 위험한 존재였을 것이다.
단종이 살아있으면 내가 복위를 꾀할까 두렵고, 단종이 죽으면 그를 그토록 아꼈던 내 안에서 어떤 분노가 치밀어 오를지 불 보듯 뻔하니, 왕의 피를 이은 내가
깊은 원한을 품은 채 형의 등 뒤에서 서늘하게 살아있는 것 자체가 형에게는 두고두고 불안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형은 그런 불안요소를 남겨둘 사람이 절대 아니다.
그렇다면 내게 남은 선택지는 둘 중 하나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죽을 것인가, 아니면 뭐라도 해보고 죽을 것인가.
그때 증조할아버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이 떠올랐다.
앞으로 가도 죽고 물러나도 죽는 그 순간에 그분은 부딪쳐서 길을 만들어냈다.
나라고 못할 이유가 있는가.
나에게도 그런 기적이 오지 말란 법은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가만히 무너지기보다 부딪치는 쪽을 택했다.
영월의 가시울타리에 갇혀있는 사랑하는 조카를 구하고 빼앗긴 것을 되찾아주기 위해,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순흥에서 군사작전을 모의했다. 설령 그것이 실패로 끝나 다시 못 올 곳으로 나를 이끌지라도, 그것이 나다운 삶의 마지막 기개였기 때문이다.
물론 나 역시 인간이기에, 육신을 짓누르는 공포는 매 순간 나를 찾아왔다. 할 수만 있다면 이 지옥 같은 긴장을 피하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렇게 도망쳐서 살아남으면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라는 것을.
나에게 단종을 지키는 일은 나라는 사람의 본질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사랑하는 조카 단종을 지키고 싶었고, 그 행동을 통해 내가 되고 싶었던 나다운 내 모습도 지키고 싶었다.
소중한 사람과 소중한 나를 지키며 나답게 사는 것, 이것이 내가 진짜 바란 것이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배신하고는 결코 제대로 살아갈 수 없다. 그리하면 마치 스스로를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처럼, 내면의 심판자가 스스로에게 피할 수 없는 화살을 날리며 내면을 서서히 붕괴시킬 것이기에, 그런 자는 살아도 사는 게 아닌 지옥 같은 시간을 반드시 맛보게 될 것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지만 저 '어떻게든'이라는 짧은 표현 속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비정한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반면, 또 다른 누군가는 설령 자신의 생명이 꺼질지언정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되는 무언가가 있음을 떠올리고는 기꺼이 죽음의 길을 택한다.
나에게 이 싸움은 맹목적인 생존의 문제가 아니었다.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차가운 칼날 아래 죽어가는데, 너 혼자 따뜻한 밥을 삼킬 수 있는가!
비겁한 침묵의 대가로 얻은 그 밥을 삼키며 과연 온전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
배 부른 안락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무언가가 내 안에 있었고, 끝까지 내 안의 빛을 배신하지 않을 수 있는가에 대한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나는 나를 이기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 아이 곁에 서는 쪽을 택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관노의 밀고로 시작도 전에 발각되고 말았다.
그동안 나는 서슬퍼런 감시 아래 유배지를 여러 번 옮겨야 했음에도, 어디서든 매번 거사를 준비했고 단종의 복위를 꾀했다. 그 정도로 나는 거사에 진심이었다.
하지만 순흥에서의 마지막 거사마저 실패로 돌아갔을 때...
이상하게도, 아쉬움 너머로 '이것이 하늘의 뜻이라면 이젠 받아들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 과정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분투를 다했기에 여한이 없었고, 내 안의 참된 빛 만큼은 훼손하지 않았기에 비참하지 않았으며, '어쩌면 이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는 나의 욕망과는 별개로, 내가 알 수 없는 더 큰 의미와 여정을 향해 굴러가야 할 수도 있음'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때때로 삶은 결과만으로 재단하기엔 너무나도 오묘하고 다채롭다.
'하늘의 그물은 얼핏 보기엔 성글어 보여도 결국에는 놓치는 것도 없고, 빠뜨리는 것도 없다(天網恢恢 疏而不失)'는 말이 있다.
악행은 언젠가 반드시 대가를 치르며, 모든 일은 반드시 바른 데로 돌아갈 것이다.(事必歸正)
나는 이제 인간적인 분투를 넘어, 하늘의 뜻에 온전히 내맡길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토록 지켜주고 싶었던 그 아이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그 고운 얼굴 한번 못 보고 가는 것이 아쉬웠다. 그러나 우리는 이승의 강 너머 안식의 땅에서 곧 다시 만날 것이었다.
"나의 임금님, 안식의 땅에 이 숙부가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나는 소중한 나의 임금님이 있는 영월 땅을 향해 단정한 마음으로 절을 올렸다. 그리고 아무런 원망도 없는 담담한 태도로 사약을 마셨다.
내가 느낀 이 평화에 가까운 담담함은,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온 힘을 다해 분투하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잃지 않은 자에게 하늘이 내리는 은혜로운 면류관인지도 모른다.
500 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사람들이 나를 잊지 않고 내 선택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내가 이기고 싶었던 그 싸움이 지금도 많은 이의 가슴속에서 계속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대는 무엇을 지키고 싶은가?
그대에게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맹목적인 생존 너머, 그대가 바라는 '나다운 삶'은 어떤 모습인가?
온 맘으로 사랑하고 분투했던 당시의 내 심정을 담은 노래 한 자락을 남기며 글을 맺는다.
https://youtu.be/-e0EEOXlF4A?si=kzHKWWUvaZCWJqSr
힘겨워 돌아보면 늘 거기 있는 너
금세 터질 듯한 폭탄 같은 내 눈빛을 걱정하며
그런 널 지키지 못한 무력한 나에게
조그만 원망조차 왜 넌 하지 못하니
어차피 고독은 내가 선택한 거야
그건 네가 없는 외로움관 조금은 다른 싸움
내 속에 있는 나와의 어려운 승부지
적어도 내 자신은 이기고 싶어
이 끝이 절망이라도 다시 못 올 곳이라도
나를 잡아끄는 이 길에 모든 걸 걸었어
난 결코 쓰러지거나 힘없이 꺾이지 않아
전과 넌 다름없이 내 안에 있을 테니
— 손성훈, <내가 선택한 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