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갑자기 아이 손을 잡고 내 눈앞에서 사라졌다. 나와 만만치 않은 살기를 눈에 담고 나를 노려본 것도, 내 앞에서 홱 가버린 것도 모두 처음이었다.
재작년 겨울 일이었다. 크게 싸웠다. 그것도 밖에서. 결혼하고 처음이었다. 소득 없는(어느 싸움에 소득이 있겠냐마는) 싸움이 오가는 사이에 아이가 서 있었다. 아이 앞에서 싸워 보기도 처음이었다. 무슨 원수라고 둘이 한참 서로를 제압하겠다는 의지를 활활 불태우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싸울 때 부부는 세상에서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이 제일 이기고 싶은 상대가 된다.
화나고 억울하고 어이없고 온갖 감정의 폭풍을 끌어안고 한구석 벤치에 앉아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한참을 울었다.
전화가 울린다. 남편이다. 십 분 후 출발할 거라며 주차장으로 오란다. 가버릴 때는 언제고. 아이는 어떠냐고 물었다. 아무렇지 않다고.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서운하다.
가지 않겠다 했다. 아이라는 핑계도 사라졌다. 이대로 쪼르륵 주차장으로 달려가 같이 차를 타고 집으로 향할 수는 없었다.
전화를 끊고도 한참을 벤치에 앉아 있었다. 이제 울음은 더 나오지 않았다. 이제 언제, 어디로 갈 것인지가 문제다. 그냥 이대로 어디인가로 훌쩍 가버리고 싶다. 집이 아닌 낯선 곳에서 낯선 밤을 보내고 싶다. 어디 나 없이 지내봐라. 아이를 낳고 하루도 아이와 떨어져 본 적이 없다. 호기롭게 이어지던 상상은 금세 사라진다. 뒷감당은 굳이 자세히 떠올리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일을 크게 만들 자신이 있는가. 그럴 정도의 일인가.
이제 일어나야 한다. 벤치에 울음을 놔두고 일어난다. 쇼핑몰 안을 걸어도 어디 하나 눈 가지 않고 어디 하나 가야 할 곳도 없다. 좋아하는 서점도, 사랑하는 카페도 눈에 안찬다.
우선 우리 동네 쪽으로 가자. 가다 보면 생각나겠지, 어디로 가야 할지. 별생각 없이 밖으로 나갔다가 깜짝 놀란다. 한파. 그래, 그날은 미치도록 추운 날이었다. 그리고 나는 쇼핑몰 안에만 있을 거라고 삼월에나 입을 얇은 패딩만 걸친 상태였다. 그런 결정을 한 그날 아침의 나를 원망해도 소용없다. 이 추위는 진짜다.
뭐 택시 금방 타면 되지. 택시 정류장 쪽으로 가니 그쪽 도로는 아비규환이다. 이곳에서 자차가 아닌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해본 적이 없었다. 아, 이곳이 이런 곳이었구나. 끝없이 주차장에서 나오는 차들과 좌회전, 우회전해서 합쳐지는 차들 때문에 별로 없는 택시는 감히 정류장에 설 생각도 못하고 지나쳤고, 바로 옆 버스 정류장에는 어마한 인파가 오들오들 거리며 서성이고 있었다. 집 가는 버스를 두 대 보내는 동안 나는 그저 따뜻한 방 안에 드러누울 생각밖에 안 났다.
돌아온 집 풍경은 여느 때와 같았다. 그것도 너무. 아이는 엄마 왔어? 슬쩍 나를 반기고는 다시 아빠랑 수다 떨며 논다. 엄마 아빠가 싸웠다는 걸 모르는 건가?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는 아닌데. 뜨끈한 방바닥에 차가워진 온몸을 지지며 거실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너무도 평온하고 너무도 즐겁다. 이대로 이 방 안에서 스르르 녹아 버리고 싶다, 사라지고 싶다.
그래도 어쩌겠어. 몸을 일으켜 옷을 갈아입는다. 아이 밥은 먹여야지. 내 몸의 시계는 아이 밥때만 되면 나를 재촉한다.
그렇게 일상은 이어진다.
어색한 저녁 시간이 지나고 다음날 나와 남편은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건넨 첫마디에 역시나 아무렇지 않은 척 받아친다. 그리고 다시 우리가 된다. 우리는 안다. 어찌 됐든 하루하루는 계속되고 그 안에서 내일도 또 그 내일도 얼굴을 맞대고 살아갈 거라는 걸.
더 이상 얼굴을 맞대지 않으려면 인연을 끊어야 한다. 우리 사이에 수없이 만들어진, 묶인 그 많은 실들을 다 끊어내야 한다. 또 그렇게까지 이 사람이 미운 것도 싫은 것도 아니다. 지나가는 화인 것을 서로가 알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점점 더 싸움이 없어진다. 화를 내봤자 조금만 지나 생각해 보면 내가 전적으로 잘한 것도, 남편이 전적으로 잘한 것도 없었다. 싸워봤자 나는 변하지 않고 남편도 변하지 않는다. 나름 우린 뚝심 있는 인간들이니까.
오랜 연애 기간 동안에도 미처 다 끝내지 못한 일들이 있었다. 포기하고 그걸 인정하고 익숙해지는 것. 부부의 일은 연애의 일과 다른가 보다. 연애한 시간까지 얼굴 본 지 이십 년이 되었는데도 부부의 일은 십 년이 되지 않았다고 이제 겨우 새싹에서 벗어난 정도인가 보다.
가끔은 나나 남편이나 혼자 사는 게 맞는 사람들인데, 혼자가 너무 편한 사람들인데, 이렇게 함께 산다고 둘 다 고생이다 싶다. 아주 사소하지만 눈에 거슬리는 것들을 발견하고 으이그 으이그 구시렁거리다가 그래, 당신도 나만큼 못마땅한 거 이렇게 넘어가는 것들 투성이겠지 싶다.
사람이 사람과 함께 산다는 것만큼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힘든 일이 없다. 나는 내 원가족과 지내는 것도 불편했다. 독립해서 살 때 엄마가 며칠 왔다 가는 것도 불편했고, 큰오빠와 둘이 살았던 일 년은 미치고 팔짝 뛰기 일 보 직전이었다. 삼십 년을 함께 산 가족들도 이런데 남편하고 몇 년이나 살았다고 아무렇지 않을까.
이렇게 다독인다. 나는 내공이 얕은 사람이라 불쑥불쑥 화가 목구멍을 돌파하는 사람이지만 그럴 때에는 당신은 나와 다름을, 그리고 나와 다르지 않음을 생각한다. 그걸 포기하고 인정하고 익숙해지자. 어찌 되었든 우리는 많이 사랑했던 사람이고, 서로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이고, 무엇이든 첫 번째로 생각나는 사람이니까. 우리는 부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