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호박볶음,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무서워요

by 유이경
이거 엄마가 만든 거 아니지?


귀신같기도 하다. 채 썬 애호박에 다진 마늘과 굵은소금, 물 조금 넣고, 엄마가 하는 대로 볶아낸 건데 눈썰미 좋은 작은오빠가 수저를 들기도 전에 묻는다.

“어떻게 알았어?”

“애호박 썰은 모양이 다르잖아. 껍질 부분 잘린 모양도 다르고 두께도 다르고.”

아이고, 대단도 하다. 작은오빠는 우렁 강된장과 오빠 말대로 달라서 틀려버린 애호박볶음을 밥에 비벼 한 입 떠 넣더니 말을 덧붙인다.

“이게 엄마가 하는 것처럼 썰어야 맛이 제대로 나는데.”

얄밉긴 해도 작은오빠 말이 맞다. 엄마의 시그니처 메뉴를 제대로 완성시키려면 엄마의 애호박볶음이 필요하다.


엄마는 우렁 강된장을 만드는 날이면 꼭 애호박을 엄마 식으로 볶아서 함께 내놓았다. 그러면 가족들은 대접에 양껏 쌀밥을 담고 우렁 강된장 크게 한 수저, 애호박볶음 크게 두 수저 넣고 휘휘 비벼 말 한마디 없이 엄마표 우렁 강된장 비빔밥을 먹었다. 지금과 달리 입이 짧던 꼬꼬마 시절에도 엄마가 내 앞에 우렁 강된장과 애호박볶음만 들어간 비빔밥을 놔주면 엄마에게 “맛있다”라는 말 한마디 할 정신도 없이 순식간에 뚝딱 그릇을 비웠다.


가족들 중에서도 작은오빠와 나는 특히 이 음식을 질리지도 않고 사랑했다. 종종 우리는 식당을 가상으로 차리곤 했는데 가상이라도 항상 신중하게 콘셉트와 메뉴와 장소를 선정했다. 그 가상의 식당 대표 메뉴로 변하지 않고 선정되는 것은 항상 엄마표 우렁 강된장 비빔밥이었다. 이러니 작은오빠가 깐깐하게 나에게 잣대를 들이대는 것도 이해가 갈 일이다. 우리는 쫄깃한 우렁이와 매콤 짭짤한 강된장, 그리고 물을 붓고 오래 끓여 뭉근하게 흐물해진 그래서 더 달큼해진 애호박의 영원한 팬이었다.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엄마는 내게 애호박을 써는 방법을 알려준다. 애호박을 대각선으로 길게 통통통 얇게 썰어 옆으로 뉘이고 그대로 얇게 통통통 채를 썰어야 한다고. 물론 나도 안다. 엄마가 만드는 걸 한두 번 본 것도 아닌데 모를 리가 있나. 그런데도 나는 애호박을 일직선으로 잘닥만하게 탁-탁-탁 조금 두껍게 썰어 두세 개씩 탑으로 쌓고 조금 두껍게 탁-탁-탁 채를 썬다. 내 손을 향해 미끄러지는 칼이 무서운 까닭이었다. 벌써 십 년이 거진 다 된 이야기다.


그때도 칼질 경력이 꽤나 있었는데도 나는 칼이 무서웠다. 초등학생 때부터였다. 눈 앞에 칼이 있으면 숨 쉬는 게 ‘숨 쉬듯 편하다’라는 말이 무색해졌고 칼날에만 눈이 꽂혀 주변이 희미해졌다. 누군가 잘못 쳐서 그 칼날이 내게 날아와 꽂힐 것만 같았다. 어릴 때에는 칼을 치울 생각도 벗어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온 몸의 감각이 곤두선 채로 꼬리를 바싹 부풀려 세우고서 눈으로 싸우고 있었다. 요리를 할 때에는 오히려 조금 나았다. 꼭 쥔 내 손을 믿었으니까. 갑자기 칼이 내 손을 배신하고 내 몸으로 날아와 치명상을 입힐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무섭기는 했지만 내가 다칠까 걱정하는 몸 부위가 온몸에서 손가락으로 줄어든 만큼의 무게였다. 하지만 내 손에 쥐어지지 않은 칼들은 내 통제 바깥에 있었다. 어른에 가까운 나이가 되고 나서야 칼을 손에 쥐고 눈 앞에 칼날 방향을 바꿔놓거나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었다.


이런 증세를 첨단 공포증, 혹은 선단 공포증이라고 한다. 이런 공포증이 있다는 것을 영화를 통해 알게 되었다.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은 언제나 위안이 된다. 물론 나는 심한 경우는 아니다. 칼을 사용할 수도 있고 칼을 본다고 기절하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다만 나에게 엄마 같은 칼질의 스킬을 바라는 건 절대 무리다.



칼에 대한 박제된 기억이 있다. 나는 식탁 의자에 앉아 있었고 아버지는 내 앞에서 엄마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언제든 어떤 사태가 일어나도 어색하지 않은 익숙한 광경이었다. 그런데 평소와 다른, 하필 그때 그곳에 놓여 있던 익숙하지 않은 소품 하나가 싱크대 위, 아버지 바로 오른쪽에 놓여 있었다. 엄마가 나물을 다듬다가 올려놓은 식칼. 아버지가 팔만 뻗으면 바로 닿는 위치였다. 아버지가 말 같지도 않은 소리로 엄마를 위협하는 동안 나는 내내 식칼을 노려보고 있었다. 지치지도 않고 반복되는 매일의 시간들은 도저히 내 생 안에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시간들 속에 갇혀 그날의 광기를 마주했다. 식칼에 집중하는 동안 순간은 맥없이 나오는 마술사의 손수건처럼 늘어지게 길어졌다가 급작스럽게 끝이 났다.


그리고 나는 칼에 감정을 품게 되었다. 칼은 가장 최악의 상황을 불러일으킬 수도, 모든 상황을 끝낼 수도 있는 도구였다. 누구 손에 쥐어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불러오게 할 도구였다. 이 이야기의 결말은 무엇일까. 칼과 결말만큼 드라마틱하고 잔인하게 어울리는 말이 있을까. 머리가 굵어질수록 내 눈앞에서 아버지가 엄마에게 손을 올릴 때마다 부엌 어딘가에 있을 칼을 떠올렸다. 칼의 주인이 누가 될 것인지 상상만으로도 벌벌 떨리는 두려움과 함께 경외심을 품고서.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의 상상은 감춰야만 할 희열도 키워나갔다.


결말은 흐지부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도, 누구도, 모두 칼의 주인이 되기에는 스스로를 끔찍이 생각했다. 모두 행복하게 살았다더라는 엔딩 또한 물론 없다.


결말은 없지만 칼 앞에서 굳어버리는 마음은 언제인가부터 조금은 옅어졌다. 그 언제라는 것은 항상 기억나지 않는다. 아버지의 폭력이 점차 줄어들고 멈춰지면서 습관처럼 지니고 있던 긴장과 불안이 옅어진 것처럼 시나브로 스며들 듯이 조금씩 변했던 모양이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칼질에 서툴다. 여전히 조심스럽고 그래서 느리다. 칼 손잡이를 잡으면서 겁을 한 꼬집 먹고 시작한다. 이미 나는 칼에게 졌다. 요리 경력이 한참 딸리는 남편에게도 칼질에서 진다. 써는 모양은 별로지만 속도만은 티브이에 나오는 셰프 못지않은 남편은 우리 집 식칼 상태가 영 못마땅하다. 너무 잘 드는 식칼이 무서워 내가 칼을 아주 살짝만 갈기 때문이다. 나의 칼로는 칼질하다 삐끗 미끄러져도 손을 베이지 않는다. 나는 그 정도가 좋다.


louis-hansel-shotsoflouis-TslZATW-2gw-unsplash.jpg (실은 이 사진들을 보는 것도 조금 힘들다. 하지만 너무 딱인 사진이어서 참아본다.)


요즘도 가끔 애호박볶음과 우렁 강된장을 만든다. 작은오빠의 지적질을 받던 십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애호박은 일직선으로 탁-탁-탁 조금은 두껍게 썬다. 그래도 이제 이 음식을 시식하는 사람은 작은오빠가 아닌 남편과 아이다.


처음 이 음식을 해주었을 때 애호박볶음과 우렁 강된장을 따로 먹고 있는 남편과 아이에게 이건 내 엄마의 시그니처 메뉴라고, 대접에 흰쌀밥 넣고 우렁 강된장 크게 한 수저, 애호박볶음 두 수저 넣고 쉐킷 쉐킷 비벼서 먹는 엄마표 우렁 강된장 비빔밥이라고 알려주었다. 두 사람이 먹는 걸 보면서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작은오빠랑 식당 차리면 이거 대표 메뉴로 하자고 정해놨잖아. 집밥 콘셉트 식당에서 이걸 빡! 내놓으면 빡! 대박이겠지? 응?”

나만 신이 났다. 남편은 “글쎄.”로 대꾸가 끝이다. 젠장, 어떻게 된 거지. 내가 엄마표 애호박볶음을 잘 못해서인 건가. 그래서 그 맛이 안나는 건가. 이런 반응이라니, 이럴 리가 없는데. 아이의 반응도 그다지 내 기대만 하지 못하다.


엄마의 시그니처 메뉴를 제대로 따라 하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그들에게는 나에게 있는 추억이라는 감미료가 없어서일까. 그러거나 말거나. 여전히 반응 최고인 나를 위해 우렁 강된장 비빔밥을 만들기로 했다.


추억이라는 감질감질한 맛에 괜한 쓴 맛이 붙어 버렸다. 냅다 차 버려도 따라붙는 기억이다. 기억을 선별해서 지울 수 있는 기계가 나오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겠다. 말하고 나면 조금은 나아지는 상처들이 있다. 나는 그것을 선택했고 이건 그 기록의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