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 큰 덩이 하나를 찬물에 한 시간 동안 담가 핏물을 뺀다. 한두 번 물을 갈아준다. 큰 냄비에 넉넉하게 물을 붓고 고기를 한 시간 동안 끓인다. 한 시간이 지나면 고기는 꺼내 한 김 식히고 그 사이 불려놓았던 미역을 육수에 넣고 끓인다. 고기를 손으로 잘게 찢어 양념해 두고 잠시 두었다가 다시 국물에 넣고 간을 맞춘다.
이렇게 냄비 한 가득 끓여 삼분의 이는 커다란 통에 넣는다. 남은 삼분의 일은 작은 냄비로 옮겨 식힌 후 냉장고에 넣는다. 커다란 통에 든 미역국은 차에 실려 엄마네 집으로 간다. 그날들은 엄마의 생일 전날들이다.
미역을 볶지 않고 끓이는 방식은 엄마에게 배운 것이다. 이렇게 끓이면 더 시원한 맛이 난다고 엄마가 미역국을 끓일 때 가르쳐 주었다.
작년에도 올해에도 엄마 생일날에 모이지 못했다. 자식들은 엄마의 많은 질환들 때문에 혹시나, 엄마와 아버지는 어린 손주들의 건강 때문에 혹시나, 걱정들만 모였다. 그래서 나 대신 꽃을 보냈다. 원래도 꽃을 워낙 좋아하는 엄마는 너무도 즐거워했다. 다행히 아버지도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도 아직까지도 나는 엄마에게 무언가를 해줄 때 아버지 눈치가 보인다.
아버지 생일은 항상 잔칫날이었다. 모든 명절, 행사를 다 좋아하는 아버지지만 자기 생일을 가장 좋아했다. 엄마는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아버지가 좋아하는 온갖 산해진미를 해다 바쳤다. 임금님 수라상을 본 적이 없다고? 나는 매년 그렇게 수라상이 이런 거였겠지 싶은 상을 쯧쯧거리며 바라보았다.
엄마의 생일은 초라했다. 내가 어려서 미역국을 아직 끓일 수 없는 나이일 때 엄마는 엄마의 생일 미역국을 끓였다. 아버지는 엄마의 생일을 모르고 지나치기 일쑤여서 나는 며칠을 쭈뼛거리다가 겨우 아버지에게 말 한마디를 건넸다. 아버지, 며칠 있으면 엄마 생일이에요.
엄마의 생일상은 미역국이 있을 뿐, 평소에 먹는 찬들이 올라왔다. 나는 그 찬들이 미웠고 미역국이 눈물겨웠다. 미움과 눈물은 게으름쟁이 딸을 움직여 그래도 요리라는 것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된 후에 미역국이라도 끓이게 하고 엄마가 좋아하는 잡채라도 만들게 했다.
하지만 그것도 매년 챙기지는 못했다. 돈 번다고 유세 떨며 매일 야근하던 시기에도, 나와서 살던 시기에도, 만삭이던 해에도, 아이가 아직 어려 거동을 못하던 몇 해에도 건너뛰었다. 그나마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을 함께 사 먹으러 가는 것, 엄마에게 비싼 옷을 사드리는 것으로 마음의 죄를 덜려고 했다.
아버지는 늘 자식들과 엄마의 관계를 질투했다. 자신이 아내와 자식들에게 어떻게 행동했는지는 떠올리지 못했다. 그저 왜 자식들이 엄마 앞에서만 살살 웃고, 조잘대고, 옆에서 떠나지 않는지 속상해했다. 생일이라고 좋은 선물을, 꽃 한 송이를 엄마에게 주는 꼴을 못 보고 삐져서 몇 날 며칠을 부어있었다. 부어있는 동안 화살은 엄마에게 그대로 돌아왔기 때문에 내가 엄마에게 해주는 많은 것들은 비밀이 되었다. 외도라도 하는 것처럼 엄마와 영화를 보고 외식을 하고 선물을 하는 모든 것들은 숨겨졌다. 그래서 엄마 생일에 미역국 하나 끓여드리는 것만으로도 나는 아버지 눈치를 보았다.
엄마는 아버지의 유난을 알기 때문에 내 앞에서 대놓고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다. 아유, 뭘 이렇게 해 왔어, 타박처럼 마음을 감춘 말투에는 웃음이 묻어났다. 그리고 헤어질 때까지 몇 마디 없던 엄마는 내가 떠나면 집에 도착했을 시간을 어림 잡아 전화를 걸어왔다. 전화로 엄마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다. 내가 엄마에게 끓여드린 미역국에 비해 받는 마음이 훨씬 넘쳤다.
아버지는 매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지 엄마 생일만 저렇게 챙긴다고, 애비 생일에는 생전 미역국 안 끓여준다고 미역국을 싸들고 집에 들르는 나에게 꼭 챙겨서 말을 던졌다. 그러면 나도 매년 하는 말로 받았다. 아버지는 엄마가 수라상 차려드리잖아요, 그런데 엄마 생일에는 누가 해줘요? 다행히 매년 던진 말들이 그래도 조금은 아버지에게 가 닿았는지 못된 부루퉁은 단순한 투덜거림으로, 봐줄 만한 질투로 줄어들었다.
올해에도 부모님에게 최고 선물인 손녀를 대동하고 미역국을 싸들고 들렀다. 올해에도 아버지는 투덜거렸다. 이제는 인이 박혀서 신경도 안 쓰인다. 살아지라고 힘들었던 일은 잊히기 마련인가 보다. 아니면 그동안 쌓은 행복 마일리지가 그 긴 세월을 가리려고 애쓰고 있는 건지. 옅어져 버린 미움만큼 다른 신경이 쓰였다. 다음 아버지 생일에는 미역국을 끓여볼까. 아직 거기까지는 아닌가. 좀 더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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