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골 우거짓국, 아버지 사실 제가 안 끓였어요

by 유이경

설거지하는 내 뒷모습에 대고 감탄이 쏟아진다. 나는 그런 일에 익숙했다. 나는 보란 듯이 손님 앞에서 집안일을 하고 준비된 쇼인 줄 모르는 손님은 감탄을 하고 아버지는 별 거 아니라는 듯 은근히 자랑하는 일 말이다. 자신의 딸이 얼마나 조신하고 얌전하고 효녀인지, 얼마나 여성으로서의 가치가 뛰어난지에 대한 증거가 오로지 설거지와 요리와 청소, 이런 집안일에 달려 있는 것처럼 매달렸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내가 마치 세상 최고의 자발적 효녀쯤으로 여겨진다.


쇼라고 해서 평소에 안 하던 일을 하는 건 아니었다. 손님이 오는 날이면 아버지는 내가 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거나 말거나 신경도 안 쓰던 평소와 달리 나를 계속 쳐다보며 무언의 압박을 주었고 나는 곧 오고 갈 대화를 예상하며 소름 끼쳐했다.


불을 다룰 수 있는 나이가 되면서 요리를 했다. 그때쯤 자주 많이 아팠던 엄마는 한 번 드러누우면 며칠을 일어나지 못했다. 그러면 누군가는 밥을 해야 했고 그 누군가는 아버지도, 오빠들도 아니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할 줄 아는 게 늘어났다. 아버지의 자랑은 더 높아져 갔다. 아버지 자랑이 되고 싶어서 한 적은 결단코 없는데.


실상 나는 아버지가 바라는 딸과는 거리가 먼 아이였다. 가족들 몰래 작은오빠 옷을 가지고 나가 치마를 벗어버리고 갈아입었다. 긴 청바지로 바닥을 쓸고 다니면서 욕을 찍찍 내뱉었고 나를 쳐다보고 있으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시비를 붙였다. 매일 거리를 쏘다녔고 오락실과 만화방을 전전했고 십 대의 마지막 즈음에는 노래방과 술집을 추가했다. 반에서 가장 욕을 잘하는 아이였지만 가족은 물론 선생님도 그런 사실을 몰랐다. 그건 이웃들도 마찬가지여서 아버지가 말하는 것처럼 나를 조신하고 얌전하고 착실한 모범생으로 보았다. 한 번은 앞집 아주머니가 내 앞에서 자신의 딸에게 이렇게 말했다.

“언니만큼만 해라. 저 언니처럼 되어야지.”

하. 하. 하. 나의 이중생활이 완벽하다는 증명을 들으며 쓴웃음이 났다.


여전히 엄마는 자주 아팠다. 엄마의 병명은 내게도 있었던 울화병이었다. 물론 나보다 더 깊고 심하게 와서 주사 놔주시는 분이 꽂아주는 링거를 며칠 맞아야 겨우 일어날 수 있었다. 엄마의 병명을 알면서도 아버지는 마치 그 병과 자신은 상관없다는 듯 행동했다. 엄마가 아픈 나날들에 나는 엄마 대신 장을 보았고 앞치마를 두르고 밥을 했고 설거지를 했고 청소를 했다. 그동안 아버지는 조금 불편하지만(상급 요리는 못하는 딸 때문에 먹고 싶은 요리를 못 먹는다거나 못 먹는다거나 그런) 큰 변화는 없는 생활을 했고 그건 오빠들도 마찬가지였다. 그게 이상하다는 생각은 오로지 나만의 것이었다.


아버지가 나에게 말하는 여성스러움이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숙녀가 되자”라는 교훈을 가졌던 학교에서 줄기차게 듣던 이야기와 일맥상통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들어보면 남자에게는 가능하지만 내게는 가능하지 않은 것들이 많고 남자는 하지 않아도 되지만 나는 해야 하는 것들이 많았다. 반대로 여자에게는 가능하지만 남자에게는 가능하지 않은 것들도 있고 여자는 하지 않아도 되지만 남자는 해야 하는 것들도 있다. 오빠들과 엇갈리는 명령들을 들으며 컸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불리한 것들 천지였다. 여성이 무엇인지, 내가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나는 여성이 싫어졌다.


하지만 집안의 평화를 위해 아버지가 바라는 여성을 연기했다. 어릴 때부터 나만이 엄마에게 전수받은 일을 하면서 가족들의 생명유지를 위한 활동을 이어나갔다.



장을 보러 나갔다. 그 날 아버지는 엄마가 아프거나 말거나 손님을 데려올 예정이었다. 많은 걸 바라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먹을 게 필요했다. 나의 불만은 어차피 하찮은 투덜거림으로 변질되어 흩어지기 마련이라 아버지에게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시장과 마트를 돌아다니면서 그날 저녁 메뉴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 날 왜 마트에서 평소에는 지나치던 코너에 꽂혀 움직이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선반에는 3분 카레, 즉석국, 통조림 같은 즉석식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한 번도 사본 적 없는 품목들이었다. 상품을 훑어보다가 “사골 우거짓국”이라고 써져 있는 작은 상자를 발견했다. 나도, 오빠들도, 엄마도, 아버지도 좋아하는 국이었다. 오호라. 머릿속에 새겨진 익숙한 명령을 튀어나온 호기심이 이겼다. 호기심이 결정을 내린 후 나는 지체하지 않았다. 집었고 계산했고 집으로 가져왔다.


사골 우거짓국은 여러 면에서 내 상상을 뛰어넘었다. 조리 과정부터 신세계였다. 물을 끓이고 봉지를 뜯어 내용물을 넣기만 하면 됐다. 라면보다 쉬웠다. 호기심 반 두려움 반을 안고 맛을 보니 오호라. 사골 맛과 우거지 맛이 났다. 구수하면서 감칠맛이 났다. 이건 완벽한 사골 우거짓국이었다. 사골 맛이 나다니, 마르고 딱딱했던 우거지가 이렇게 살아나다니. 감탄은 짧게, 완전 범죄를 위해 포장지를 감췄다. 이렇게 순식간에 끝나는 걸 나는 왜 여태 종종거리며 부엌에 서 있었던 걸까. 누굴 위해.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고 아버지도 아버지의 손님도 식탁에 앉았다. 나는 아버지가 바라는 대로 얌전한 숙녀이자 효녀가 되어 아버지와 아버지의 손님에게 밥과 국을 엄마에게 배운 대로 예쁘고 깔끔하게 담아 주었다. 아버지가 알아차리면 어쩌지, 뒤늦은 걱정을 하면서 아버지를 지켜보았다.


딸내미가 이런 것도 끓일 줄 알아?

사골 우거짓국을 보고 아버지가 1차로 놀랐다. ‘내가 설마, 이런 걸 끓일 줄 알겠어요?’ 속으로 대꾸하면서 아버지가 숟가락으로 국을 떠서 입에 넣는 걸 초조하게 바라보았다.


“맛있는데! 이야, 딸내미가 잘 끓였네!”

2차 감탄. 아버지의 손님도 함께 감탄한다. ‘아니, 이걸 모르네. 설마 내가 이걸 끓였겠냐고. 난 아직 고등학생이라고.’ 맛있게 먹는 걸 보면서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화가 나고 어이가 없었다.


즉석국이라는 상품 자체를 모르는 아버지는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반찬이나 국을 파는 곳이 없던 때라 그래서 집안의 음식이란 집안 누군가의 손에서만 나오던 때라 의심도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아버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감탄밖에 있을 수밖에.


그 날 즉석국을 산 건 아마도 내 딴에는 소심한 반항이었을 것이다. 반항의 결과가 나름 괜찮았다. 그 날 이후로도 종종 퍽퍽한 상차림 노동을 단순하게 만들어 주었으니까. 아버지는 지금도 그 맛있던 국들이 나의 작품인 줄 안다. 그것만으로도 조금은 고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