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숫자가 1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선이 느껴졌다. 아니, 그전에 냄새가 느껴졌다. 마스크를 뚫고 도착한 냄새가 익숙했다. 스멀스멀한 다가오는 기운에 고개를 돌려보니 옆에 사람이 서 있었다. 늙은 남자는 나를 똑바로 노려보고 있었다. 한시도 시선을 떼지 않고 말이다.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눈은 위로 치켜떴고, 잃은 초점을 잡기 위해 눈에 힘을 잔뜩 주었다. 얼굴만큼 눈도 벌겋게 충혈되었다. 익숙한 눈길, 익숙한 얼굴. 언제라도 나를 위협하고 공격할 수 있는 상태.
엘리베이터 앞 1층에는 나와 늙은 남자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이 또한 익숙한 반응이다. 누군가 제발 오기를.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갈 생각도 못하고 바뀌는 엘리베이터 숫자에만 눈을 박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안에 제발 누군가 함께 타기를.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젊은 남자가 무심히 툭 서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반가워 냉큼 그 사람 옆에 섰다. 늙은 남자는 여전히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서 있는 것도 힘든지 비척거리더니 엘리베이터 층수를 누른다. 다행이다. 나보다, 젊은 남자보다 먼저 내린다.
늙은 남자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도, 나도 내리고도, 그리고 집에 들어오고도 한참을 심장이 두근거린다. 가정 폭력을 경험한 아이들의 후유증, 심장의 미친 듯한 두근거림. 남자의 큰 목소리에도, 노려보는 눈초리에도 아버지의 예전 모습과 비슷한 모습을 발견하면 시작되는 증상. 그렇게 갑자기 기억 속의 아버지가 불려 나왔다. 아까 늙은 남자의 모습은 술에 불콰해진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아버지는 항상 요란하게 집 앞 골목에 등장했다. 골목으로 난 내 방 창문 덕에 나는 아버지의 등장을 제일 먼저 알아차리는 사람이 되었다. 방문을 벌컥 열고 가족들에게 소식을 급히 알린다. 아버지가 벨을 누르기 전에 엄마는 빛의 속도로 계단을 뛰어 내려가 아버지를 맞이하고 오빠들과 나는 현관 앞에 군인들처럼 정렬하고 서 있다. 그때부터가 시작이다. 끝이 날 것 같지 않은 밤의 일과가.
이미 늙은 남자와 같은 눈과 얼굴을 하고 등장한 아버지는 언제나 술이 부족해 엄마에게 술시중을 시킨다. 엄마는 그만 먹으라는 말 한마디를 못하고 부엌으로 간다. 냉동고와 냉장고를 부지런히 열고 닫으며 뚝딱뚝딱 음식을 한다. 나는 바쁜 엄마를 돕는 척하며 서 있고 오빠들은 그 사이를 못 참고 거실 상에 소주와 나물 두어 개를 올려놓고 술판을 시작한 아버지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우리는 잘못한 일 없이도 술 취한 아버지 앞에서는 항상 죄인이 된다.
엄마는 순식간에 꽃게무침을 만들었다. 나는 눈치 없게도 그 순간에 꽃게무침이 너무나 먹고 싶다. 엄마의 빠른 손은 아버지가 분노하지 않게 만들지만 나의 자유시간도 짧게 만든다. 나도 오빠들 옆에 무릎을 꿇고 앉는다. 오늘은 몇 시간 짜리일까.
밤의 시간을 그나마 덜 끔찍하게 하려면 오로지 참는 수밖에 없다. 자꾸 외마디를 지르고 싶은 마음을 누르려고 허벅지를 찌르고 꼬집는다. 말 한마디라도 얽히면 안 된다. 아버지가 원하는 대답만 짧고 빠르게 하면 된다. 그러면 되는 아주 단순한 일이다. 그동안 연마한 기술-대답을 필요로 하는 이야기만 쏙 걸러 듣는 것- 덕에 참을 만하다. 오장육부를 뒤집는 아버지 이야기를 괜히 마음으로 듣고 욱해서 아버지 앞에 속을 꺼내놓으면 안 된다. 괜한 몇 마디에 엄마가 만든 꽃게무침만 거실 곳곳으로 날아간다. 그러면서 누군가는 때리며 소리 지를 테고 누군가는 맞으며 소리 지를 테고 누군가는 말리며 소리 지를 테고 누군가는 아무것도 못하고 울기만 하면서 소리 지를 테고 어디선가 무엇이 깨질 테고, 어디선가 무엇이 날아다닐 테고, 어디선가 나와선 안될 물건이 등장하려 할 테니. 참아야 한다. 거기에 그것들을 치울 사람은 결국 엄마와 나니까 꾹 연마한 기술에 정진해야 한다.
했던 말을 태어나서 처음 하듯이 반복하면서 허천나게 꽃게무침 양념을 입가에 잔뜩 묻히며 먹고 있는 아버지 모습이 추하다. 먹는 모습이 꼴 보기 싫으면 정말 싫어하는 거라는데 나는 어릴 때부터 꾸준히 아버지가 정말 싫었던 게 틀림없다. 정신없이 먹어대며 떠들어대는 모습이 그렇게 싫었다. 나도 정말 좋아하는 꽃게무침을 저렇게 더럽게 먹고 있으니 더 싫었다. 꽃게무침까지 덩달아 미워졌다. 뭐가 이쁘다고 술안주로 저렇게 맛있는 음식을 해줄까 꽃게무침을 만든 엄마까지 미워졌다.
정해진 패턴처럼 일주일에 두세 번, 두세 시간의 무릎 꿇기가 끝나면 아버지는 온갖 먹은 티를 다 내고 방으로 들어가 바로 잠에 곯아떨어졌다. 아버지의 침이 묻은 그릇들은 만지기도 싫지만 나는 금방 미움이 없어진 엄마를 돕기 위해 상을 치운다.
사라졌던 기억이었다. 그렇게 긴 시간, 긴 세월 동안 반복되었던 일들이었는데, 신기하게 묻혔던 기억들이 단박에 떠올랐다. 늙은 남자의 그 눈초리, 그 얼굴 때문이다. 늙은 남자를 이후로도 보았다. 마주칠 때마다 나는 늙은 남자의 술에 취하지 않은 모습에도 긴장했지만 늙은 남자는 나를 모르는 눈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