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맥, 집에서 노는 여자의 유흥

by 유이경

방금 도착한 뜨끈뜨끈한 페퍼로니 피자 라지 사이즈가 들어 있는 상자를 식탁 위에 올려놓는다. 식탁에는 이미 매운 걸로 유명한 떡볶이도 올려져 있다. 나까지 다섯 명, 멤버들이 척척 익숙한 손길로 세팅을 마친다. 모두 착석. 모두 같은 책을 앞에 두고 건배를 위해 옆에 놓인 맥주캔을 하나씩 들어 소리도 경쾌하게 딴다.


2주에 한 번, 아이들을 학교와 유치원에 보내 놓고 카페에서 오전 10시에 만나 함께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임. 어느새 3년이 되었다. 벌써 3주년인데 뭐라도 할까요, 라는 이야기가 나왔고 자연스레 술이라도 한 잔 해야죠, 3주년인데, 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아직 어린아이들 때문에 저녁 시간 맞추기가 어려워 자연스레 낮술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왜 이것까지 자연스러운 건지는 모르겠지만 자연스레 애엄마들이 낮술 하면 안 좋게 쳐다봐요, 시비 거는 사람도 있대요, 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래서 아이들이 학교와 유치원에서 돌아오기 전에 우리 집으로 모였다.


그 시선에 대해 안다. 카페나 레스토랑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주부들로 보이는 여자들이 가득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때 받는 시선. 나도 그 시선을 보냈었다.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은근한 시선으로. 내가 아직 결혼하기 전일 때, 주부지만 주부라는 자각이 없고 아직 돈벌이를 하고 있었고 아이가 생기기 전일 때.


피맥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전부터 나는 피자와 맥주 조합을 좋아했다. 치맥에 이어 피맥이라는 단어가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아예 피맥집을 표방한 호프집들이 생겨나는 걸 반겼다. 올레! 하지만 나는 그 피맥집이라는 곳에 두 번 가보았다. 친구가 청첩장 주겠다고 불러서, 친구가 모유수유 끝났다고 꼭꼭 나와야 한다고 불러서 두 번 다 남편과 온갖 작전으로 아이를 힘들고 힘들게 떼어놓고 말이다.


피맥집에서 피자를 조각으로 파는 것도 좋았고 그 조각이 꽤나 커서 더 좋았고 피자 메뉴에 꼭 내가 좋아하는 페퍼로니 피자가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피맥집에서 파는 수제 맥주도 맛있었다. 나는 피맥집에 두 번 가봤을 뿐인데도 피맥집이 그리웠다.


그전에는 내가 피맥집에 가지 못하는 이유의 9할은 아이였다. 엄마에게서 절대 떨어지지 않는 아이, 밤에는 꼭 깨는 아이, 특히 밤에 깨서 옆에 엄마가 아닌 다른 이가 있으면 발차기를 날리는 아이. 꽤나 클 때까지 그래서 나는 아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시간부터는 아무것도 나갈 수 없는 신데렐라가 되었다. 당연히 피맥집은 안녕.


그러던 아이가 이제 좀 컸다고 엄마 저녁에 약속 있다고 아빠랑 치킨 시켜먹고 씻고 자라고 하면 주먹을 불끈 끌어당겨 쥐며 “예스~!!”를 외치며 반긴다. 하지만 나는 이제 더 이상 신데렐라가 아닌데 나가지를 않는다. (물론 이 이야기는 코로나 이전의 이야기다.) 나의 시선도 남편의 시선도 누군가의 시선도 나는 끊어내지 못하고 스스로 성에 갇힌 라푼젤처럼 살고 있다.


아이를 낳고 일을 정리하고 ‘집에서 노는’ 전업주부가 되고부터 나는 나에게 그 시선을 돌렸다. 돈 한 푼 벌지 못하는 내가 나에게 돈을 써도 되나. 내게 돈을 써야 하는 상황이 오면 고심하고 또 고심하다가 결제받는 사람처럼 (돈을 쓰거나 말거나 신경 안 쓰는) 남편에게 동의, 아니 허락을 구했다. 배달 음식을 시킬 때면 내가 밥을 안 한다는 죄책감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 메뉴가 비싼 것 같으면 다시 (다시 말하지만 비싸거나 말거나 신경 안 쓰는) 남편에게 물어보았다. 아이가 어릴 때 커피를 싸들고 나가고 싶은데 텀블러가 없어 갖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인터넷으로 어떤 상품을 살지 고민만 1년을 하고 사지를 못했다. 그즈음에 무료 심리상담을 받았는데 그 이야기를 들은 상담사가 골똘한 표정으로 그 텀블러가 얼마나 하길래 그러냐고 물었다. 2만 원이요.


그 정도는 그냥 사도 되지 않아요?


내가 하는 이야기에 가타부타 말을 얹지 않던 사람이었다. 그랬던 사람이 답답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하는 걸 보고 명치를 얻어맞은 것 같기도 하고 어딘가 갇혀 있다가 풀려난 것 같기도 한 기분이 들었다. “그냥 사도 되지 않아요?” 이렇게 단순한 일을 왜 그리 오래 끌고 있었을까. 내 어리석음에 자조하면서도 속은 시원했다. 아무도 내게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내게 말하는 것 같았던 내 안에 갇혀 있던 명제, “나는 돈을 벌지 않는 사람이니 나를 위해 돈을 쓰면 안 된다.”에서 벗어난 듯했다. 그 단순한 말 한마디에, 그것도 남의 허락 같은 말을 듣고서야 겨우.


‘집에서 노는’ 주부들은 대부분 아닌 척하면서 항상 돈에 신경을 쓴다. 옆에 있는 다른 주부에게는 아닌 척, 돈에 대범한 척하면서도 자신을 위해 돈을 쓰는 것을 주저한다. 음식을 사 먹게 되면 남편에게 맛난 음식을 공유하고 싶어 이야기하면서도 가격을 낮춰 말하고 옷을 사게 되면 괜히 오천 원이라도 낮춰 이야기한다. 이런 게 정아은 작가의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에서 나오는 “주부들의 생활 깊숙이 도사린 ‘자본주의 사회에서 제 손으로 돈을 벌지 못하는 이가 느끼게 되는 설움’”이겠지.


거창하게 낮술이라고 술판을 벌였지만 뭐 그래 봤자 금방 돌아올 아이들을 돌봐야 하기 때문에 다들 한 캔에서 멈췄다. 주량이 좀 더 되는 사람은 두 번째 캔을 땄지만 그나마도 다른 사람과 나눠 마셨다. 그러고도 우리 만나고 첫 술이라고 흥이 올랐다. 내가 아는 낮술은 이런 게 아닌데. 라떼에 낮술은 소주 각 일 병은 되어야 낮술이라 부르는 거였는데. 엄마라는 역할이 사람을 정갈하게 만드나 보다. 오른 흥은 내려오라 붙잡으며 멤버들과 더치페이 돈 계산을 마친다. 주부들 사이에서 계산은 항상 백 원 단위까지 정확하다.


멤버들과 헤어지고 나는 평소의 일을 한다. 눈에 띄지 않는 일을 하루 종일 하는 사람, 그게 주부이자 엄마인 나다. 식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고 바닥을 청소기로 민다. 창문을 방마다 활짝 열어 혹시나 남았을 피자 냄새, 떡볶이 냄새, 맥주 냄새, 낮술의 흔적을 지운다. 이빨을 닦고 세수를 한다. 밖에서 들어오는 바람 냄새로 내 안을 헹군다. 그리고 곧 올 아이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