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아이와 헤어지며 악수하자 손을 내밀었다. 아이는 손을 내밀기는커녕 몸을 내 쪽으로 뺀다. 식구들이 그런 둘을 바라보며 이별의 절차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모두 갈 길을 가게 하려고 한 손으로는 아버지 손을, 다른 한 손으로는 아이 손을 잡아 흔들며 너스레를 떨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몇 시간이 지나고 잠들 시간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나는 오늘 아.무.렇.지. 않.게. 아버지 손을 덥석, 냉큼 잡았다.
어른이 되고부터 때가 되면 아버지에게 선물을 한다. 나는 아버지에게 선물 한 번 받아본 적 없지만 그래도 아버지가 강조하는 ‘제 할 일은 하고 살아야 한다’는 말(부모 자식 관계에서는 자식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을 벗어나지 못한 이유다. 물론 아버지 말을 잘 들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말에서 벗어나면 아버지의 삐침병, 엄마 괴롭히기 병이 발병하기 때문에 하는 선택이었다. 투덜투덜하면서도 구시렁구시렁하면서도 꼭 때에 맞춰 선물을 했다. 그러면 아버지는 티가 나게 좋아했다. 사람들에게 자랑도 했다. 딸이 사준 거라고. 아버지에게 관심 없는 경비 아저씨에게도, 역시나 관심 없는 은행 직원에게도, 두말할 필요 없이 관심 없는 옆집 아주머니에게도 했다. 나를 만나도 했다. 네가 사준 이거, 좋다고, 다들 좋다고 했다고, 어울리지 않게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그런 아버지가 항상 낯설다. 웃는다니. 이번에 어린이날이라고, 어버이날이라고 겸사겸사 만났을 때에도 아버지는 웃었다.
엄마와 아버지는 내 아이를 위한 선물을 준비하고, 나와 남편은 엄마와 아버지를 위한 선물을 준비했다. 이상한 맞교환 의식이야 또 구시렁구시렁거리면서도 준비했다. 이번에는 나름 고심도 했다.
아버지가 소변 때문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고 얼마 전 엄마에게 전해 들었다. 그러면서도 정작 병원은 안 간다고 했다. 찾아보니 전립선 문제인 듯했다. 생각보다 나보다 전립선에 대해 잘 모르는 남편의 도움 없이 인터넷 집단지성의 힘을 빌어 쏘팔메토가 좋다고, 그리고 이 영양제가 좋다고 알아냈다. 내가 산 영양제 후기에는 며칠 만에 효과를 보았다는 간증이 꽤나 있었다.
함께 살다 보면 어쩌다라도 몸이 닿을 때가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알면서도 아버지와 함께 사는 동안 나는 아버지와 살이 닿을 때마다 전기가 오른 것처럼 움찔했다. 물론 그 순간에도 그런 나를 아버지에게 들킬까 두려워하며 말이다. 양팔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닿은 곳을 수십 번 손으로 문질렀다. 내가 어린이일 때 아버지는 간혹 내게 출근용 뽀뽀를 강요하고는 했는데, 빨리 그 시간이 끝나기를 바라는 다른 식구들의 매서운 눈초리에 어쩔 수 없이 아버지 볼에 입을 1초 댔다가 떼었다. 아버지가 나가면 방에 틀어박혀 1초를 없애기 위해 가시처럼 돋아난 소름을 진정시키기 위해 두 팔을 엇갈려 안고 몸을 계속 쓸어내렸다.
내가 고른 선물에 엄마가 놀랐다. 지나가듯 한 말이었는데 기억했다고 말이다. 보통 엄마 선물에만 공들이던 딸인 걸 알기 때문이다. 아버지도 내 선물에 놀랐다. 뭐, 딸이 전립선 약을 사 오니 더 놀랐을 수도 있겠지만, 놀라며 좋아하며 웃었다. 또 웃었다.
함께 웃는 순간은 없었다. 내가 어린이로 살아오는 동안에도, 어른이 되어서도, 우리 식구가 그냥 다섯 식구였던 동안에는 다섯이 모두 함께 웃는 일은 없었다. 하나가 혼자 웃고 넷이 침묵하고 있거나, 하나가 자고 넷이 숨어 웃거나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식구가 늘어날수록 세월이 지날수록 함께 웃는 일이 생겨났다.
아버지도 쏘팔메토의 효과를 간증하고 있을까. 아버지의 일이 궁금해지고, 그것이 어색하지만 끔찍하지는 않은 것을 보니 내가 참 달라졌다 싶다. 떨어져 가고 있다. 지옥 같았던 시간들이, 인장처럼 찍혀있던 과거의 흔적들이 희미해지고 있다. 지금 내 앞에서 웃는 아버지가 그때의 아버지와 겹쳐 보이지 않는다. 그런 사실에 지속적으로 놀라면서 나는 빗장을 걸어 두었던 내 마음을 풀어주기로 한다. 더 이상 ‘나만은 평생 아버지를 용서하지 않겠다.’라고 숙명처럼 품었던 마음을 썩히지 않기로 한다. 이것은 나의 손가락으로 쏟아낸 글들이 해낸 일이고, 세월이라는 시간이 해낸 일이다. 그렇게 아버지 손을 냉큼 잡은 그날의 내가 완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