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날, 엄마는 그 하얀 블라우스를 입으라 했다. 양 소매가 봉긋하게 솟아있고 단추는 뒤로 되어있는 공주풍의 블라우스였다. 엄마는 내가 그 옷을 입으면 너무나 좋아했다. 나는 소풍날에 그 옷을 입기가 죽기보다 싫었지만 자기 의견이 관철될 때까지 계속 이야기해대기 신공이 백단은 되는 엄마에게 결국 지고 말았다. 그 옷을 입고 학교를 향하면서 내내 울었다. 이제 어른 패션을 따라 하는 멋쟁이들이 출현하기 시작하는 5학년 가을 소풍이었다. 내 블라우스는 나만 가지고 있는 옷이 아니었다. 그 옷은 합창단에서 맞춘 단체복이었다. 역시나 학교에 가니 아이들이 ‘쟨 왜 저 옷을 입고 왔어’ 눈빛을 쏘아댔다.
나는 새로 생긴 학교의 새로 생긴 합창단의 합창단원이었다. 전교생을 일일이 일으켜 노래를 시킨 후 뽑은 합창단원.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 보다 우쭐거림이 더 컸다. 하지만 그 기분 좋은 우쭐거림은 연습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후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합창단을 이끄는 음악 선생님은 가차 없이 휘둘러지는 기다란 자와 복식호흡으로 만들어낸 쩌렁쩌렁 목소리로 무장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었다. 선생님은 새로 생긴 합창단을 이끄는 리더답게 우리를 학교 간판스타로 만들겠다는 열정이 넘쳐났다. 곧바로 합창대회 준비를 위해 우리는 매일 남아 연습해야 했다.
합창대회용 단체복으로 하얀 블라우스에 남색 타이, 남색 체크 스커트가 선택됐다. 언뜻 보기에도 우리가 평소 입는 옷과는 달리 고급스러워 보였다. 엄마는 합창대회가 있기 전날이면 깨끗이 빨아놓은 블라우스와 타이, 스커트를 곱게 다려서 내 방에 걸어놓았다. 대회 날 아침 날달걀을 하나 깨 먹고 단체복을 입고 나서면 엄마는 감격에 젖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정작 나는 평소 입지 않는 블라우스가 너무 불편해 온몸을 비비 꼬고 긁어댔다. 블라우스 입는 날이 너무 싫었다. 그래도 엄마가 좋아해 주는 것이 좋아 그냥 참았다.
대회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뭐 한동안 계속 나갔던 걸 보면 예선이며 그런 건 다 통과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나 다른 친구들이나 대회에 나가고 성적을 내고 하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해야 하니까 하는 일, 그것뿐이었다.
6학년이 되자 우리들도 대가리가 굵어졌다. 삼삼오오 모여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왜 이걸 억지로 해야 하나 다들 그만두고 싶어 했다. 용기 있는 몇몇이 선생님에게 반기를 들었다. 하지만 선생님과의 면담을 가지고 나온 아이들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 난리도 아니었어. 어떤 이유도 안된대. 다시는, 아무도 그만둔다는 말 하지 말래.
문제는 나였다.
둘만 한 공간에 있는 걸 상상만 해도 오금이 저리는 선생님에게 “저 목이 아파서 그만둘게요.”라고 말하려고 겨우 마음을 먹은 터였다. 여자도 변성기를 겪는 것인지 아니면 그때 앓고 있던 울화병의 증상인 것인지 목이 아파왔다. 목구멍에 항상 가래가 낀 것 같았고 고음이 올라가지 않았다. 억지로 소리를 내면 갈라지는 소리가 났고, 노래를 부르면 목이 아팠다. 합창을 그만둬야 했다. 하지만 선생님이 이 상황에서 내 말을 믿어줄까.
내 해결 방법은 그냥 닥치고 있기였다. 그냥 벙긋벙긋 소리 없이 입만으로 연기하는 립싱크. 그게 내 선택이었다. 어떻게 하면 걸리지 않을까. 내가 속여야 하는 건 선생님뿐이 아니었다. 양 옆과 앞, 뒤의 친구들. 함께 노래 부르면서 내 목소리를 계속 듣는 그 아이들. 적절히 소리를 냈다가 안냈다가 하는 방법으로 평소 노래 부를 때 보다 더 집중해서 열심히 연기했다. 왜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왜 아무에게도 도와달라 하지 않았을까. 어른이 된 지금, 어린이나 청소년 관련 뉴스를 볼 때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예전의 나에게서 느낀다.
야속하게 선생님은 우리를 TV에까지 출연하게 만들었다. 프로그램 중간에 어린이 합창단이 등장해 몇 곡 부르는 거였다. 우리끼리나 합창대회면 모를까, TV라니. TV에서까지 내가 쇼를 해야 하다니. 엄마는 내 마음도 몰라주고 마냥 들떠했다. 뭔가 더 힘을 준 듯한 하얀 블라우스를 입고 나서는 나를 엄마는 쫓아나서고 싶어 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노래 부르는 내내 내 얼굴만 보고 있을 엄마가 내 립싱크를 눈치 못 챌 리 없다. 엄마들이 함께 가도 되는 자리였지만 그 사실은 엄마에게 비밀. 엄마를 물리치고 방송국으로 가는 버스로 향했다.
TV 녹화장에서 나는 정말 최고의 연기를 선보였다. 무표정한 표정으로 부르던 평소와 달리 노래에 흠뻑 빠진 척 표정 연기에 한 번씩 곁들이는 율동도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 괜히 찔려서 하는 전형적인 오버다. 겉으로 보기에 그렇게 열심히 하면 더 카메라에 잡힌다는 걸 왜 나는 몰랐을까.
우리가 나오는 프로그램이 방송되던 날, 엄마는 계속 움직이는 카메라 속에서 내 얼굴을 찾느라 정신없었다. “어, 여깄다. 잘 부르네~ 어, 여기 여기!”하며 신나하는 엄마와 달리 나는 내 사기쇼가 들킬까 전전긍긍했다. 자꾸 카메라가 내 얼굴을 클로즈업할 때마다 마음이 졸아 들었다. 엄마는 내 마음도 모르고 하얀 블라우스 입은 네 모습이 다른 친구들보다 더 태가 난다며 마냥 기뻐했다.
나날이 늘어가는 내 연기 덕에 내 비밀을 졸업할 때까지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 졸업한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다. 중학생이 된다는 설렘 보다 이제 합창단에서, 거짓 연기에서 벗어난다는 후련함이 더 컸다. 물론 엄마의 블라우스 사랑에서 벗어났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