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삼 월

by 유이경


나도 그중 하나였다. 고풍스러움을 가장한 낡은 건물 앞에서 말없이 서성이고 있는, 이제 갓 스물 즈음 된 오십여 명 중에 말이다. 간혹 침묵을 깨고 서로 말을 꺼내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이 초점 잃은 눈과 갈 곳 잃은 몸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이마의 위태로운 여드름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걸 상대를 물색했다. 나와 비슷한 키에 비슷한 체구인 여자애를 발견하고 슬금슬금 옆으로 다가가 말을 떼었다. “안녕.”



학교 다니는 내내 학기 초가 되면 나는 섬이 되었다. 짝꿍이 된 아이에게 얼굴 한 번 돌리는 게 어려워 짝꿍 얼굴도 잘 기억하지 못했다. 얼굴 하나 돌리지 않고 굳어 있는 내게 지쳐 옆에서 앞에서 뒤에서 한 마디 걸어주면 속으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나면 누가 언제 그랬냐 싶게 누구보다 큰 소리로 웃고 누구 보다 까불며 그런 시간은 없었던 것 같이 굴었다.



하지만 해마다 삼 월은 다시 찾아오고 내 고질병도 다시 나타났다. 삼 월만 지나면 없어지는 병이지만 그래도 꾸준히 매해 삼 월만 되면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리고 스무 살, 대학에 들어갔다.



신입생 수련회 안내 전화를 받고 가겠다고 바로 대답한 날, 이마 한가운데에 여드름이 뾰록, 나타났다. “수련회 가야지 대학 생활 편해진다.”라고 오빠들이 하도 이야기해대서 냉큼 가겠다고 대답은 했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과 이박 삼일을 보내는 게 내게는 대학 시험보다 더 두려웠다. 점점 커져가는 걱정을 따라가는지 이마의 여드름은 나날이 오동통해졌다. 노려보면 없어지기라도 하듯 거울 속 여드름을 노려보면서 이제 이전과는 다른 삼 월을 보내겠다고 다짐했다.


처음으로 입을 떼었다.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그렇게 한 아이에게 말을 걸었고 그 아이는 반색하며 화답해 주었다. 아무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조금이나마 해소되었지만 버스에서 내려 수련회가 시작되면서 그 친구와는 다른 조가 되었고 나는 또다시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껴 있었다.



서로 눈치 보던 시간은 언제 있었나 싶게 금세 적응하고 활달하게 이야기하는 동기들을 보면서 나는 또 나를 탓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의견을 내고 장기자랑이며 연극이며 해내는 동기들 사이에서 내 입은 얼어붙었다.




저녁이 되고 방에 소주와 안주가 깔렸다. 소주를 마시면 내 몸과 입이 좀 풀릴까, 주는 술을 넙죽넙죽, 아니 주지도 않는 술도 쭉쭉 마셨다. 옆에 앉은 동기가 걱정했지만 술이라면 나름 경력이 있다고 자신하며 마셔댔다. 이 두근거림은 내 치부인 낯가림 때문이 아니라 따뜻한 방에서 소주를 마셔대서일 거라고 그렇게 믿으면서. 하지만 술도 가려주지 못하는 고질병 때문에 여전히 동기들이 말을 걸어도 겨우 대답이나 하며 얼굴이 벌게져 있었다.



시간이 늦어지고 어느새 삼삼오오 모여 앉았다. 다수보다는 소수가 편한 내가 동기들 앞에서 입을 떼려는 찰나.


“어! 너 여드름 터졌다!!”


이마 한가운데에 있던, 얇은 피부막 안에 노란 고름을 잔뜩 감춰두었던 그놈의 여드름이. 터졌다. 내가 처음으로 제대로 입을 떼려는 찰나. 오래 참은 만큼 쏟아내는 피도 남달랐다. 고름 아래에 있던 빨간 피가 마음껏 이마에서 코를 거쳐 주르륵 내려오고 있었다. 동기의 놀란 목소리에 방에 있던 사람들이 다 나를 쳐다봤다. 소리 지른 동기가 급히 뜯어준 휴지를 들고 이마를 닦으며 황급히 화장실로 도망쳤다. 화장실 거울로 피만큼 빨개진 내 얼굴을, 이마에 생긴 구멍을 노려보았다.



그 이후 동기들은 나를 여드름으로 기억했다. 그리고 누가 먹이지도 않았는데 소주를 많이 마시고, 다음날 화장실 변기를 붙잡고 있던 아이로 기억했다. 하지만 그것도 삼 월 동안일 뿐. 사 월부터 그런 나는 없어졌다.





작년에 심리 검사를 했다. 생각보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단점들이 기질적인 부분이 많았다. ‘나는 왜 이럴까’, 이렇게 스스로 자책했던 일들에서 해방되는 기분이었다. 나의 조상들도 나처럼 그들의 삼 월에 힘들었을까.


대학교를 졸업하고 회사 생활을 하면서 삼 월병이 많이 수월해졌다. 회사를 옮길수록 점점 더 뻔뻔해졌고, 사람들과 점점 더 빨리 친해졌다. 그러다 임신했고 일을 그만뒀고 아이를 낳았고 남편은 야근과 출장이 잦았고 나는 아이와 집에 갇혔다.



아이가 커나가면서 나의 사회생활이 다시 시작되었다. 아이가 다니는 기관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사람들과 마주친다. 나는 무관심과 무표정으로 슬금슬금 다시 기어 나오는 병을 숨기고 무장하고 있다.




이제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게 되면 아이의 삼 월과 함께 나의 삼 월도 시작할 것이다. 아이가 삼 월이 힘들다고 하면 나는 무슨 말을 할까. 네 조상들도 그랬단다. 새로운 게, 낯선 게 힘든 건 네 탓이 아니란다. 두 눈 질끈 감고 힘든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려보자. 어느새 사 월이 와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