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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는 보트에, 동우는 상자에

90매

by 이한얼






“안녕하세요. 부부가 같이 오셨나 봐요.”


산부인과 로비에 앉아있을 때 불쑥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커다란 덩치가 천장의 조명을 가리고 있었다. 여자는 반사적으로 상체를 뒤로 물렸다. 경계하는 빛이 역력해서인지 커다란 덩치는 손을 내저으며 한 걸음 빠르게 물러섰다. 사람 좋은 미소에 두툼한 볼 살이 둥그렇게 올라갔다.


“갑자기 말을 걸어서 놀라셨나 봅니다.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내민 명함을 남편이 받았다. 여자도 궁금증에 고개를 길게 빼고 명함을 들여다봤다. 하얗고 매끈한 명함에 글자는 많이 없었다. 동물가족 펜션. 사장 박경수. 예약 전화번호. 홈페이지 주소. 글자 배경으로 분홍과 파랑으로 된 나무집 그림이 프린트되어 있었다. 펜션 사장? 그런 사람이 왜 우리한테. 남편과 여자가 같은 눈으로 바라보자 사장은 볼을 긁으며 허허 웃었다. 건조한 피부 탓에 손톱이 닿은 자리에서 버석버석한 소리가 났다.


사장의 설명은 간단했다. 얼마 전 완공한 펜션은 이제 오픈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뒤에 산이 있고 앞에 내천이 있는 펜션은 이름답게 가족여행을 콘셉트로 삼았다고 했다. 물이 깊지 않아 아이들과 함께 놀기 좋고 산에는 가족이 다 같이 오를 수 있는 트레킹 코스도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그 일대는 온천용수가 많이 샘솟는 곳이라 물이 봄가을에도 차갑지 않았고 임산부에게 좋은 성분이 많아서 온천수를 끌어다놓은 가족탕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피로회복에 좋다고 했다.


“온천수가 임산부 빈혈에 특히 좋다네요. 변비와 입덧에도 효과가 있고.”


천천히 이어지는 사장의 설명은 이런 식이었다. 지금 절실한 것들만 골라 묶어놓은 것 같았다. 처음 의심하며 듣던 여자는 사람 좋은 인상과 느긋한 말투에 점점 경계가 풀어졌다. 빈혈도 문제지만 심한 입덧 탓에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였으니까. 은근히 쌓여가는 변비도 그랬다. 나날이 늘어나는 히스테리에 남편은 그렇다 쳐도 아이까지 눈치를 보며 다 같이 스트레스를 쌓는 중이었다. 그에 가족여행이라니 귀가 혹하는 이야기였다. 아이와 함께 물장구도 칠 수 있고, 다른 사람 눈치 볼 필요 없이 따듯한 물에 몸을 담글 수도 있고. 마침 9월이었다. 물놀이하기엔 조금 시기가 지났지만 온천수라 차갑지 않다면 앞에 있다는 내천도 아직 괜찮을 터였다. 여자는 관심을 가졌지만 남편은 다른 의미로 망설이는 듯했다. 온천수가 나오는 가족탕이 딸린 신축펜션이라니. 못 해도 풀빌라 가격과 비슷할 것이다. 거기에 기름 값에 식비까지. 잠시 계산을 하던 남편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가족탕까지 딸린 방이면 얼마쯤 합니까?”

“그게….”


남편의 표정을 본 사장은 다시 허허 웃었다. 아직 오픈 전이라 홍보가 전혀 안 되어있다고, 그래서 산부인과를 돌면서 체험가족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체험이요?”


사장은 누군가 와서 묵어보고 블로그나 맘 카페에 리뷰를 올려주기를 기대하는 듯했다. 물론 좋은 리뷰로. 그래서 다섯 가족 정도만 무료로 초청할 생각이라고 했다. 그렇게 말한 사장이 품속에서 초대장을 꺼냈다.


“한군데서만 하면 아무래도 홍보효과가 약해서 서울 몇몇 지역의 산부인과를 돌아다니는 중입니다. 지역구마다 한 가족씩 초대하려고요. 인터넷이라는 게 참 재밌더라고요. 괜찮다는 블로그 리뷰가 연달아 세 개만 있으면 다들 정말 괜찮은 곳이라고 생각하니까요. 물론 우리 펜션은 진짜로 괜찮습니다.”


그래서 유난히 힘들어하시는 산모를 찾고 있었다고, 너무 유심히 살핀 것 같아 죄송하다며 사장이 다시 털털하게 웃었다. 너무 입맛에 맞는 조건이었다. 평소라면 의심부터 할 법 했지만 쉬고 싶었던 마음이 간절했던 여자는 결국 사장에게서 명함과 초대장을 건네받았다.


“일단 댁에 돌아가셔서 홈페이지부터 봐주세요. 요즘 세상이 뒤숭숭해서 길가다 만난 사람 말을 무턱대고 믿기 어렵지요.”


맞는 말이었다. 여자와 남편은 나란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인해보시고 방문하실 의향이 있으시면 그 번호로 전화주세요. 그럼 확정 명단에 추가할게요.”


그러며 사장은 귀엣말을 하듯 부부 쪽으로 슬쩍 상체를 숙였다.


“그리고 만약 오게 되시면 그…… 꼭 좋은 쪽으로 리뷰를 좀…….”


그러고 다시 허허 웃는 모습에 여자는 대부분의 의심을 지웠다. 누가 봐도 펜션 홍보가 절실한 털보 아저씨였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확인해본 홈페이지는 정말이었다. 프로모션이 진행 중이었고 다섯 중 이미 세 가족이 다녀간 후였다. 세 번째 가족이 올린 리뷰 날짜는 엊그제였다. 인터넷에서 찾은 이런 정보는 최신일수록 신뢰성을 높았다. 바로 며칠 전에도 누군가가 다녀갔다는 말이니까. 당연히 좋은 말만 적혔겠지만 휙휙 넘겨본 사진 역시 괜찮아보였다. 의심을 거의 지운 여자는 그때부터 조급해졌다. 총 다섯 가족이라 했다. 벌써 세 가족이 다녀갔다면 어쩌면 네 번째 가족까지 이미 확정되었을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준 초대장이 다섯 번째일지도 몰랐다. 사장이 우리에게만 권하진 않았을 테니 이 초대장이 보증서가 아닐 수도 있었다. 뒤늦게 전화했다가 이미 끝났다는 소리를 들으면 좋은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에 히스테리가 심해질 것 같아 남편을 닦달했다. 어지간하면 여자 뜻에 맞춰주고 싶었던 남편도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하며 받은 상대는 아까 들었던 익숙한 목소리였다.


“아까 희망 산부인과에서 만났던 부부인데요.”


일찍 전화 주셨다며 사장이 허허 웃었다. 혹시 결정하셨나요? 사장의 질문에 남편이 여자를 돌아봤다. 여자는 마지막 고민을 하는 중이었다. 마음은 이미 기울었지만 혹시라도 놓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먼저 전화를 걸어놓고 말이 없자 수화기 너머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실례지만 지금 다른 전화가 들어오는 중이라 그런데….”


난처한 기색을 띈 사장의 말에 고민 중이던 여자의 고개가 화들짝 들렸다. 직감적으로 우리 같은 누군가에게 걸려온 전화 같았다.


“혹시 제가 다시 전화 드려도 될까요?”


전화를 끊으려는 듯한 사장의 말에 여자가 다급하게 외쳤다.


“저희 갈게요!”


뒤늦은 여자의 시선에 남편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은 그럼 확정명단에 올리겠다며 도장을 찍어주었다. 기회를 낚아챈 이상 다급할 일도 없었다. 날짜가 정해져있냐는 남편의 말에 사장은 오픈 예정일까지 얼마 남지 않은지라 되도록 빨랐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남편은 수화기에서 귀를 떼고 여자를 돌아봤다. 여자는 이미 몸이 달아있었다. 그래서 이번 주말로 날짜를 잡았다. 이미 참석하기로 한 결혼식은 문자와 함께 축의금만 이체할 생각이었다.






부부와 아이, 그리고 개 한 마리를 태운 차가 고속도로에서 국도로, 다시 꼬불꼬불한 시골길로 접어드는 동안 점점 민가가 사라졌다. 너른 논밭과 평지를 지나 얼마쯤 갔을까, 저 멀리 금빛 물결이 눈에 들어왔다. 강이라 하기엔 좁고, 천이라 하기엔 넓은 물길이었다. 그 너머로 사진에서 본 펜션이 있었다. 물길을 건너는 유일한 다리는 차량저지용 바리케이드가 절반을 막고 있었으나 지나가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물가에 목조로 지어진 2층짜리 본채건물 하나와 1층짜리 별채건물 하나는 새로 지은 것이 맞는지 깨끗하고 튼튼해보였다. 오는 모습을 봤는지 사장은 마당에 나와 있었다. 남편이 주차를 하는 동안 사장 곁에 있던 강아지가 먼저 달려왔다. 강아지를 발견한 여자의 눈이 반가움으로 물들었다. 여자가 키우는 반려견과 같은 종이었다. 이제 몇 살 되지 않은 듯 건강한 녀석이 내리는 여자 주변을 맴돌았다. 여자가 뒷문을 열자 여자의 반려견도 성큼 뛰어내렸다. 종이 같고 덩치도 비슷한 두 마리가 서로 냄새를 맡으며 돌다가 이내 나란히 마당으로 달려갔다. 그 사이 사장이 다가왔다.


“같은 종이네요.”


여자의 말에 사장이 허허 웃었다.


“그러게요. 설마 차 안에서 저 아이가 나올 줄 몰랐습니다.”

“몇 살이에요?”

“세 살이에요. 이름은 뭉치고요.”

“한창일 때네요. 저희 애는 미미예요. 열한 살이고요.”


상견례 중인 부모처럼 여자와 사장은 정보를 교환했다. 누군가 반려견을 키운다고 하면 그 사실만으로 왠지 반갑게 느껴졌다. 더군다나 같은 종이라니.


“일단 들어가지요.”


아이까지 껴서 셋이 뛰어다니는 모습을 지켜보던 부부는 사장의 말에 안으로 향했다. 본채의 응접실은 적당히 시원했다. 부부가 소파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는 동안 어디론가 사라진 사장이 쟁반을 들고 나타났다.


“이쪽 것은 산모님 거. 이쪽은 남편 분 거.”


사장이 여자에게 내민 건 붉은 빛이 나는 차였다. 코를 가까이 대어보니 향긋한 향이 올라왔다. 반면 사장과 남편은 평범한 믹스 커피였다.


“루이보스예요. 펜션 준비하면서 알아봤더니 이게 임산부에게 좋다고 하더라고요. 하루에 두 잔 이상 마시면 변비에 특히 효과가 있대요.”


사장의 말에 여자는 잔을 들이켰다. 맛은 그저 그랬으나 화장실에만 갈 수 있다면 무언들 마실 수 있었다. 여자는 사장이 따라준 두 번째 잔도 기꺼이 받았다. 벌컥벌컥 잘도 마시는 모습 때문이었을까, 믹스 커피를 든 남편도 궁금한지 여자의 잔을 들여다보다가 사장과 눈이 마주쳤다. 그 의미를 파악한 사장이 왠지 조금 은근한 목소리로 남편에게 귀엣말을 하듯 속삭였다.


“더 있긴 한데, 이 허브가 남자한테는 좀…….”


그러며 남편의 허리춤 쪽을 내려다봤다. 남편은 그것만으로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 사장을 보며 다급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들고만 있던 믹스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려놓은 듯한 풍경 앞에서 가만히만 있어도 편안했다. 흘러가는 물줄기를 보며 부부와 사장은 여유롭게 차를 마셨다. 잠시 후 배고프다며 뛰어 들어온 아이는 핫케이크가 있다는 사장의 말에 주방 쪽으로 따라갔다. 미미와 뭉치는 여전히 마당에 있었다. 차를 다 마신 부부는 짐부터 풀기로 했다. 아이에게 핫케이크 한 장을 얼른 구워준 사장이 부부를 안내했다.


부부가 묶을 곳은 별채였다. 뒷문으로 나가면 하늘 빼고 나무 벽으로 가려놓은 작은 노천탕이 있었다. 생각했던 그림에 여자는 만족스러웠다. 배는 안 고프냐는 남편의 질문에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허기보다 졸음이 먼저 왔다. 오랜만에 오래 차를 타서인지 피곤했다.


“그럼 무리하지 말고 좀 쉬어.”


남편은 깨지기 쉬운 유리처럼 여자를 침대에 눕혔다. 새시로 된 전면창 너머로 멀지 않은 곳에서 흐르는 강과 펜션 마당이 보였다. 미미와 덩치는 여전히 마당에서 뛰는 중이었고, 본채 주방에는 아이와 사장이 보였다. 사장은 두 번째 핫케이크를 아이의 접시에 내려놓고 있었다. 많이 먹으면 저녁 안 먹을 텐데. 여자는 풍경화 같은 창밖을 보며 중얼거렸다. 내가 가서 조금만 먹으라고 할게. 남편이 웃으며 말했다. 햇살이 침대 근처까지 들어왔지만 덥지도 춥지도 않은 딱 좋은 온도였다. 독특한 방향제 향과 함께 쏟아지듯 수마가 몰려왔다.


“장 보러 가야하는데.”

“나 혼자 다녀올게. 그동안 쉬고 있어.”


이마에 닿는 입술 감촉을 마지막으로 여자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엄마!”


귓가에서 터진 비명소리에 여자는 경기하듯 잠에서 깼다. 동우야! 반사적으로 아들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목소리를 분명 들었는데 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몸이 이상하게 무거웠지만 임신 중에는 이렇게 젖은 신문지 같을 때가 잦았다. 여자는 비명의 진원지부터 찾았다. 방은 잠들기 전과 그대로였다. 통유리 너머로 스며드는 따스한 햇볕도, 건조하지 않은 적당한 습도의 공기도, 새로 빨아 볕에 바짝 말린 이불의 감촉과 독특한 방향제 향마저 그대로였다. 다만 베개만 여자가 흘린 땀으로 눅눅하게 젖어있었다. 그럼 아들의 비명소리는 어디서 들린 걸까. 꿈결에 들은 소리라기에는 너무 생생했는데.


습관적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보이지 않는 건 아들뿐이 아니었다. 침대 아래에서 턱을 괴고 누워있어야 할 미미마저 없었다. 늘 지니고 다니는 휴대폰도 보이지 않았다. 뒤에서 잡아끄는 것처럼 몸이 여전히 무거웠다. 뒤늦게 청각과 후각 등이 살아났다. 그제야 여자는 어디선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들었다. 텔레비전 음량을 키우듯 물소리와 바람소리도 점점 크게 들려왔다. 그리고 아이의 우는 소리와 엄마를 찾는 비명소리까지. 소리가 나오는 곳은 침대 머리맡이었다. 여자의 눈에 잠들기 전까지 없던 것들이 보였다. 바닥에 둔 커다란 종이박스와 협탁 위의 작은 무전기 두 개. 그 중 하나에서 생생한 현장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엄마!”


여자는 황급히 소리가 나오는 무전기를 잡아들었다. 자세한 작동법은 모르지만 옆에 달린 버튼을 누르면 음성이 전달된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동우야! 동우야! 여자는 버튼을 누른 채로 아이의 이름을 연달아 외쳤다. 여자의 목소리가 들었으면 어떤 대꾸가 있어야 하건만 아이는 귀를 막고 소리치는 것처럼 일관적이었다. 여자는 버튼을 거듭 눌렀다 떼며 아이의 이름을 불렀지만 무전기 너머는 여전했다. 여자의 목소리가 점점 절규에 가까워졌다. 상대가 누르고 있을 때는 이쪽 목소리가 안 들려. 그때 문득 그 말이 떠올랐다. 예전에 어느 회사 동료가 해준 말이었다.


“버튼에서 손 떼! 엄마 말 들려?”


여자는 무전기를 든 채 침대에서 내려왔다. 바닥에 발을 딛는 순간 무릎이 풀리며 주저앉았다. 여자는 반사적으로 아랫배부터 감쌌다. 몸이 이상했다. 특별히 아픈 곳은 없지만 팔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정확히는 몸이 깨어나는 속도가 현저히 늦어진 것 같았다. 여자는 한 손은 배를 받치고 무전기를 쥔 손으로 바닥으로 기며 방문으로 향했다.


“도와주세요! 누가 좀 도와줘요!”


누군지 모를 상대에게 외쳐보지만 대답이 없었다. 무전기 속 아이는 계속 울고 있었다. 그 뒤로 바람 소리와 물소리, 그리고 스산한 휘파람 같은 소리도 여전했다.


여자가 문고리를 움켜쥐었을 때 철컥 소리가 났다. 걸쇠가 걸려있어서 돌아가지 않았다. 도대체 왜? 혼란스러웠지만 이어지는 아이의 비명소리가 여자를 일깨웠다. 이제 걸을 수 있을 만큼 힘이 돌아왔다. 여자는 발코니 쪽으로 다가갔다. 여기도 잠겨있었다. 잠금장치는 보이지 않는데 붙여놓기라도 한 것처럼 전면창은 움직이지 않았다. 여자가 양손으로 유리창을 두드렸다. 누구 없어요! 엄마! 사장님! 엄마! 여보! 여자의 소리와 아이의 소리가 뒤섞였다.


그때, 유리창 너머로 기다란 그림자가 나타났다. 마당을 가로지르며 머리부터 내보인 그림자는 점점 어깨와 허리와 다리 순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털모자를 쓴 사장이 유리창 너머로 나타났다. 아는 얼굴을 발견하자 여자는 울음을 터트렸다.


“사장님! 문이 안 열려요! 우리 아들 어디 있어요?”


다급한 여자에 비해 사장의 표정은 담담했다. 그제야 여자는 이상함을 느꼈다. 유리창을 두드리던 손이 서서히 멎었다. 사장이 유리 가까이로 걸어왔다. 유리창을 두고 무표정한 얼굴이 잠시 여자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내내 뒷짐이던 손을 풀었다. 여자의 눈이 사장의 손에 들린 무전기에 닿았다.


“잠은 잘 주무셨어요?”


사장의 입이 움직이자 여자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협탁에 놓인 나머지 무전기에서 나오고 있었다. 여자가 다시 사장을 봤다. 사장은 턱으로 협탁의 무전기를 가리켰다. 여자가 무전기를 쥐었다. 그제야 사장은 버튼을 누르고 다시 입을 열었다.


“잠은 잘 주무셨어요?”

“왜 이러세요. 이거 열어주세요. 우리 아들이 위험한 것 같아요.”

“아직은 괜찮아요. 계속 시간 끌면 위험해지겠지만. 대답부터 해요.”


급박한 목소리와 차분한 어조가 연달아 이어졌다. 다른 무전기에서는 부르다 지쳤는지 엄마를 외치는 말 대신 흐느끼는 울음소리만 들렸다. 여자는 무전기를 들고 잠시 사장을 바라보다가 버튼을 눌렀다.


“잘 못 잤어요. 우리 아들 어디 있어요?”

“잘 못 잤다니 아쉽네요. 푹 자라고 약도 많이 탔는데.”


사장은 진심이라는 듯 한껏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나 누군지 알겠어요?”

“여기 사장님이잖아요. 저한테 왜 이러세요.”


여자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장은 털모자를 벗고 유리창으로 고개를 바싹 들이밀었다.


“다시 봐요. 나 누군지 알겠어요?”


여자는 그렁그렁한 눈으로 사장의 얼굴을 살폈다. 분명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왠지 익숙한 느낌도 들었다. 특히 저 눈매와 눈빛. 손질 없이 꼬불거리는 머릿결 아래로 칼날처럼 빛나는 눈을 예전에 언젠가 본 것도 같았다. 그때 사장에 내내 띄웠던 미소를 거두고 여자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 말 잊지 마라.”


불쑥 튀어나온 반말에 여자는 순간 미끄러지듯 주저앉았다. 여자의 표정을 확인한 사장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기억했냐는 듯이. 다시 털모자를 눌러쓴 사장이 버튼을 눌렀다.


“기억났나 보네요. 이제야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있겠어요.”


사장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멀지 않은 강에 검은 고무보트가 닻을 내린 배처럼 흘러가지 않고 멈춰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올라탄 사람은 여자의 아이였다. 구명조끼를 입은 아이는 흔들리는 보트를 부여잡고 있었다. 그 곁으로 수면에 떠있는 작은 머리도 보였다. 귀 모양으로 종 특유의 생김새는 확인했지만 너무 작아서 미미인지 뭉치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지금 무전기에서 들리는 소리 있죠. 보트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예요. 아마 십 분도 안 걸릴 거예요. 그럼 아이가 물에 닿겠죠. 아이가 입고 있는 건 구명조끼 같이 생겼지만 안에 든 건 폼플라스틱이 아니라 압축솜이에요. 물을 한껏 빨아들이면 순식간에 무거워져서 아이 하나 강바닥으로 끌고 들어가는 건 일도 아니에요. 물에 닿으면 스물도 세기 전에 정수리까지 잠길 거예요.”


사장의 말이 길어질수록 여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그리고 아이 곁에는 당신의 미미가 아닌 내 뭉치가 있어요. 공교롭게도 그때와 반대인 상황이 됐네요.”

“사장님. 저한테 왜 이러세요.”


여자의 울음소리에 사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때 당신은 당당했잖아요. 지금처럼 이러지 않았어요.”


또렷하게 울리는 목소리가 점차 뭉글뭉글 무너져 내렸다. 남편은 지금 어디 있을까. 저게 뭉치라면 우리 미미는 어디 있지. 갑자기 어쩌다 이런 상황이 되었을까. 나는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지. 나는 그저 가족들과 함께 쉬러 왔을 뿐인데.






그건 기억에서 묻힐 만큼 오래된, 미미가 두 살일 때 예전 남자친구와 놀러간 한적한 바닷가에서의 일이었다. 작은 어촌의 해변은 남녀와 미미까지 셋이 전부였다.


“온 김에 발이라도 담그고 싶은데.”

“그럼 수건 가져올게.”


남자가 차로 간 사이 여자는 기다리지 못하고 모래 위에 자리를 잡았다. 신난 미미만 여자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그때 저 멀리에서 아이 셋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책가방을 멘 것이 여기 사는 아이들인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모래 위로 책가방을 벗어던진 아이들은 그대로 바다로 뛰어들었다. 자연스러운 모습이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조금 무료했던 풍경에 작은 이채가 끼어들었다. 아이들을 흥미롭게 바라보는 동안 미미는 활기찬 아이들에게 끌리듯이 달려갔다. 여자는 말리지 않았다. 저 나이치고 강아지를 싫어하는 아이는 없었으니까.


한동안 해변 언저리에서 놀던 사람 셋과 미미는 이내 둘씩 쪼개졌다. 두 아이가 책가방을 내려둔 쪽으로 갔고, 한 아이는 헤엄이라도 치는지 바다 쪽으로 향했다. 미미는 물에 들어가지 않고 파도의 경계에서만 오갔다. 젖으면 주인이 싫어하는 것을 알 만큼 똑똑했으니까. 이만 데려와야겠다. 여자는 엉덩이를 털며 일어났다. 그리고 사건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여자가 파도가 치는 쪽으로 걸어갈수록 미미는 가까워지는데 아이는 이상하게 계속 멀어졌다. 어어 하는 사이에 아이가 팔을 번쩍 들었고, 아아 하는 동안 아이의 고개가 수면 위아래를 오갔다. 문제가 생겼음은 바로 알 수 있었다. 여자가 급히 파도 앞까지 달려갔다. 이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안전요원이나 구급대원이 아니라 남자친구였다. 올 때가 되었는데 왜 아직 안 와. 여자의 눈에 남자 대신 다른 아이들이 보였다. 아까 책가방 쪽으로 향했던 둘은 다투고 있었다. 하나는 빠진 아이 쪽으로 들어가려고 했고, 다른 하나가 말리는 중이었다. 결국 말리던 아이는 다른 아이를 마을 쪽으로 보내고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여자도 들어가지는 못하고 남자친구가 사라진 방향만 계속 살폈다. 어떡해야 하지. 이런 경험이 처음이었던 여자는 놀란 마음에 굳어버렸다.


그때 여자 곁에 있던 미미가 예고도 없이 달려 나갔다. 컹컹 하고 두 번 짖고 물속으로 들어간 미미는 아이 쪽으로 빠르게 헤엄쳤다. 개라는 종은 모두 수영을 잘했다. 그럼 혹시 아이도 끌고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영화에서 볼 법한 멋진 모습으로 아이를 구해낼 수도 있겠다는 기대가 불쑥 들었다. 하지만 희망과 다르게 아이 근처까지 다가간 미미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주변만 맴돌았다. 그때, 불쑥 튀어나온 작은 손이 미미의 목줄을 잡았다. 미미는 그대로 끌려 내려갔다. 그리고 곧 다시 튀어나왔다. 아이의 몸부림을 버티지 못한 미미는 아이가 끌어당기는 대로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올라오기를 반복했다. 거품을 부글거리는 모습을 보며 여자의 입에서 처음으로 비명이 터졌다.


“누가 좀 도와주세요!”


사태를 모르고 천천히 걸어오던 남자친구가 비명소리를 듣고 수건을 휘날리며 달려왔다. 상활을 파악한 남자가 허겁지겁 옷을 벗을 때 여자는 남자의 팔을 붙잡고 바다를 가리켰다.


“우리 미미가 빠졌어. 오빠, 우리 미미 구해줘.”

“무슨 소리야. 옆에 애가 있잖아. 애부터 구해야지.”

“모르는 애잖아. 일단 미미부터 구해줘.”


여자의 말에 신발을 벗던 남자는 당황한 듯 말을 잇지 못했다.


“우리 미미가 구하러 들어간 거란 말이야. 근데 저 아이가 당겨서 우리 미미 죽겠어. 빨리 가서 미미부터 먼저 데려와.”


여자는 쪼그려앉아 엉엉 울었다. 여자의 재촉에도 남자가 대답이 없자 곧 눈물이 흐르는 눈으로 노려봤다.


“미미 잘못되면 오빠랑도 끝이야.”


고민할 거리도 아니었던 것이 고민할 거리가 된 얼굴로 남자는 여자와 바다를 번갈아 봤다. 그때 수면에서 내내 허우적거리던 아이의 손이 아래로 천천히 내려갔다. 그리고 곧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 모습을 본 여자가 남자에게 소리쳤다.


“애는 이미 늦었어. 빨리 우리 미미라도 구해줘.”


갈팡질팡 몸을 들썩이던 남자는 이내 욕을 내뱉으며 바지까지 벗어던졌다. 그대로 달려 들어간 남자는 금세 둘이 빠졌던 장소까지 헤엄쳤다. 미미는 아직 수면 위에 있었다. 붙들고 있던 손은 사라졌지만 물을 많이 먹어서인지 제대로 헤엄치지 못했다. 그 장소에서 잠시 물밑으로 손을 휘젓던 남자는 잡히는 것이 없자 이내 미미만 끌어안고 밖으로 나왔다.


미미를 던지다시피 뭍으로 올려놓고 남자는 다시 들어갔다. 물보라가 일던 수면은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하기만 했다. 고개를 박은 바다 속은 탁한 녹색뿐이었다. 근처를 몇 번씩 잠수했다가 올라오기를 반복하던 남자는 결국 물에서 빠져나왔다. 지쳐 주저앉은 남자는 손가락 사이를 파고드는 모래의 감촉에 눈을 질끈 감았다. 조금만 빨랐어도 잡을 수 있는 손이었는데, 왜 고민을 했을까. 속옷 차림으로 자책 중인 남자에게 미미를 안은 여자가 다가왔다. 고마우면서 뒤늦게 미안한 얼굴이었다.


“아이는 못 구했어?”


뻔히 홀몸인데도 여자가 물었다. 남자는 여자를 한 번 올려다보고 다시 시선을 떨어트렸다. 여자도 숙연한 표정을 지었다.


“오빠 잘못이 아니야. 너무 자책하지 마.”


남자는 어깨에 올라온 손을 팩하니 쳐냈다. 그리고 놀란 여자를 돌아보지도 않고 어디론가 걸어갔다. 벗어놓은 옷과 수건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자리였다. 남자는 젖은 손으로 바지를 집으며 생각했다. 미미는 품고 왔어도 그걸 구한 날 위해 수건 하나 주워오지 않았네. 물기도 닦지 않고 옷을 입은 남자는 돌담에 앉아 무릎에 고개를 묻었다. 저 멀리 사이렌이 번쩍이는 하얀 차에서 구급대원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한 사내가 차문을 부술 듯이 열어 올렸다. 산발인 머리와 들썩이는 가슴이 멀리서부터 달려온 듯했다. 놀란 대원들의 시선을 지나친 사내는 충혈 된 눈으로 굴곡진 하얀 천을 내려다봤다. 누군가 다가와 사내에게 말을 걸었다. 박씨 아저씨. 구급대원과 안면이 있는 모양이었다. 사내는 떨리는 손으로 천을 들었다. 크흑 하고 숨과 울음이 함께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감고 있는 아이는 조용했다. 몸이 불지도 않았고 살이 트지도 않았다. 다만 하얀 목 부근에 기다란 손톱자국들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얼굴을 쥐어짜던 사내는 들어 올린 천을 내렸다. 그때 남자와 여자는 구급차 근처에 각자 앉아있었다. 여자가 원해서는 아니었다. 동물병원부터 가자는 여자의 재촉을 남자는 거절했다. 택시도 없는 촌에서 걸어갈 도리도 없었다. 구급대원은 이 근처에 동물병원이 없다고, 구급차로 병원에 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고 설득시킨 후 아이를 수습할 때까지 잠시 기다리게 했다. 남자는 아까부터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여자만 오직 앓는 소리를 내는 미미를 안고 젖은 털을 쓰다듬고 있었다.


그때 사내가 다가왔다. 눈앞으로 나타난 발에 남자의 고개가 위를 향했다. 사내가 남자의 멱살을 잡아 올리자 남자는 순순히 들려 올라왔다.


“개부터 구했다고?”


사내의 애끓는 목소리에 남자의 시선이 다시 아래로 떨어졌다.


“개부터…, 이 사람아. 사람부터, 사람부터 구해야지….”


사내는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끝내 말을 놓쳤다. 죄송합니다. 멱살 잡힌 남자의 입에서 작은 소리가 새어나왔다. 사내는 남자에게 매달려 오열하기 시작했다. 묵묵히 선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쓰러지지 않게 버티는 것뿐이었다. 순간 사내의 눈이 곁에 있던 여자에게, 정확히는 젖은 털로 여자 품에 안겨있는 미미에게 닿았다. 여자는 반사적으로 미미를 품으로 숨겼다.


“왜 개부터 구했어? 사람부터 구해야지.”


사내의 귀신같은 목소리에 여자는 더럭 겁이 났다. 지금 사내의 눈은 정상이 아니었다. 미미를 내어주면 그 자리에서 목이라도 비틀 것처럼 보였다. 여자는 지지 않으려는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미미는 개가 아니라 내 가족이에요. 사람하고 똑같다고요.”

“개는 개지, 어떻게 사람이랑 똑같아.”


사내는 어이가 없었는지 우는 와중에 헛웃음을 흘렸다.


“개가 아니라 반려견이에요. 태어날 때부터 키워온 내 가족이라고요.”

“그래서 사람 버리고 개부터 구한 게 잘했다고?”


사내가 여자 쪽으로 다가서자 구급대원들이 몰려 사내를 붙잡았다. 여자는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면서도 말을 멈추지 않았다.


“나도 미안하지 않은 건 아니에요. 근데 반려견 키우는 사람 붙잡고 물어봐요. 내 반려견이랑 모르는 사람이 같이 빠졌으면 누구 먼저 구할지. 아마 다 같을 걸요.”


나만 그러는 게 아니에요. 여자는 말을 하며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남들도 그래. 내가 이상한 게 아니야. 길을 막고 물어봐. 진짜 동물을 가족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다 똑같지. 여자의 말에 사내는 걸음을 멈췄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여자를 바라보던 사내가 말했다.


“가족이라고?”

“사람만 가족이 아니에요. 동물도 가족이에요.”

“그래서 사람하고 같다고?”

“같아요. 나한테는.”


잠시 입을 다물었던 사내가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냈다.


“그래, 그 말 잊지 마라.”


사내는 그대로 돌아섰다. 사내가 응급차 안으로 사라질 때까지 남자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구급대원 한 명이 와서 이리 됐으니 따로 가는 편이 좋겠다고 말했다. 하얀 천을 내려다보는 사내의 등을 한동안 응시하던 남자는 우리는 괜찮다고, 먼저 가라며 대원을 보냈다. 남자는 여자를 돌아봤다. 여자는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사실 그렇게까지 말할 생각은 아니었다. 자식을 잃은 사람에게 할 말은 더더욱 아니었다. 하지만 사내의 눈빛이 너무 무서웠다.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스스로의 마음이었다. 잘못을 인정한 순간 평생 잊지 못할 죄책감을 가져야할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악을 썼다. 평소부터 막연히 생각만 하던 것이 순식간에 하나의 형태가 되어 입 밖으로 튀어나갔다. 스스로 납득하고 나니 이상하게 아까만큼 마음이 무겁지 않았다. 미안하긴 했다. 하지만 그것뿐. 해수욕 시즌에 물에 빠지는 사고는 종종 있어왔으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며, 둘 중 하나라도 살려야했다며, 여자는 마음속에서 마침표를 찍었다. 그리고 곧 잊어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시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로는 이 바닷가에 왔던 이 일을 떠올리지도 못했다.






“아이 살려드릴까요?”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사장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왜요? 모르는 사람인데. 그 옆에 내 개가 먼저잖아요.”


당신이 꾸민 일이잖아! 칼자루를 사장이 쥐고 있었으니 그렇게 소리치지 못했다. ‘그래도’라는 말만 여자의 입에서 반복되었다. 사장은 여자를 내려다보다가 말했다.


“저기 상자 있죠? 열어보세요.”


여자의 얼굴이 가리키는 곳으로 향했다. 종이박스는 거기 있는 것만으로도 불길해보였다. 떨리는 손으로 뚜껑을 열었다. 안을 들여다본 순간 여자는 눈을 질끈 감았다. 상자 안에는 미미가 눈을 감고 누워있었다. 여자의 눈에 맺혀있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직 안 죽었어요. 웬 유난은.”


사장의 말에 여자의 눈이 번쩍 떠졌다. 자세히 보니 미미의 가슴이 약하게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냥 재워놓은 거예요. 그 옆에 주사기 있죠?”


여자는 박스 바닥에서 주사기를 발견했다. 알 수 없는 불안한 빛깔의 액체가 고인 바늘이 천장의 조명을 서늘하게 받아내고 있었다.


“안락사 약이에요.”


여자의 고개가 사장에게로 돌아갔다.


“찌르고, 눌러요. 그럼 십 분도 안 돼서 편해질 거예요. 개를 죽이면 아이 구해줄게요.”


여자는 주사바늘과 누워있는 미미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질끈 감은 눈꼬리가 파르르 떨리는 모습에 사장이 웃었다.


“그렇죠? 그럴 수 없죠? 동물도 사람도 전부 가족이잖아요. 한 명을 살리겠다고 다른 하나를 죽이면 안 되죠.”


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내 개를 구해야겠네요. 사장이 떠나려고 하자 여자가 무릎으로 기어와 유리창에 붙었다.


“사장님. 제가 잘못했어요. 우리 동우 좀 살려주세요.”


여자의 애원에도 사장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개를 죽여요. 그럼 아이 살려줄게요.”


여자를 내려다보는 사장의 눈빛은 단호했다. 저 사람은 정말로 아이가 죽어도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았다. 눈빛에서 광기를 읽은 여자는 뒤를 돌아봤다. 박스에 가려 미미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마치 아직 살아있다고 주장하듯 박스 자체가 숨을 쉬는 것처럼 느껴졌다. 여자는 굴러간 주사기를 손에 쥐었다. 사장은 돌아서려던 걸음을 멈춰 여자의 행동을 지켜봤다. 박스 앞에 앉은 여자는 잠시 미미를 내려다봤다. 지난 십 년간 아침에 눈을 떠서 가장 먼저, 그리고 자기 전에 가장 마지막으로 보던 모습에 수많은 기억들이 떠올라 머릿속을 헤집었다. 떨리는 손가락이 부드러운 하얀 털과 윤기 나는 검은 털에 차례대로 닿았다. 여자는 마지막으로 사장을 봤다. 여전히 타협이 없는 얼굴이었다. 내가 뿌린 행동이, 아니 말이 턱에 수염을 두르고 돌아와 있었다.


“개를 죽이면… 내 아들 분명 살려주는 거죠?”


여자는 손가락에 주사기를 걸며 말했다. 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없이 단단한 표정과 마주하던 여자가 다시 시선을 내렸다. 주사기를 다시 한 번 그러쥐고, 조용히 숨을 쉬고 있는 하얗고 검은 개에게 손바닥을 올렸다.


“어깨든 허벅지든 아무데나 찌르면 돼요.”


여자는 앞다리 윗부분에 바늘을 꽂았다. 곁에 있을 때 늘 손을 뻗어 쓰다듬던 그 자리였다. 살을 밀어내고 바늘이 들어가는 느낌에 날갯죽지부터 소름이 돋았다. 눈을 질끈 감고 주사 손잡이를 눌렀다. 저항감 있게 내려가던 손잡이는 생각보다 금방 끝났다. 눈을 뜨니 주사기는 이미 비어있었다. 개는 내내 반응이 없었다. 마치 자는 듯이 눈을 감고 조용한 숨을 쉬고 있을 뿐이었다. 여자가 주사기를 내던지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마를 새 없는 눈물이 다시 흘러내렸다.


사장은 오열하는 여자를 잠시 지켜봤다. 그리고 삑. 들고 있던 작은 기계의 버튼을 누르자 방문 쪽에서 걸쇠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의 고개가 퍼뜩 올라왔다.


“무전기 챙겨서 나와요.”


창밖에 이미 사장은 없었다. 여자가 아랫배와 무전기를 움켜쥐고 헐레벌떡 밖으로 달려 나왔다.


“동우야!”


보트 위에 엎드려있던 아이가 여자의 목소리에 상체를 일으켰다. 엄마! 하는 소리와 함께 여자가 있는 방향을 향해 몸을 내밀었다. 여자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안 돼! 보트 밖으로 나오지 마!”


아이는 다시 보트 위로 움츠려들었다. 여자는 우는 얼굴로 웃었다. 큰 목소리가 아이의 달래는 듯 차분하게 울려 퍼졌다.


“거기 잠깐만 있어. 아저씨가 금방 구해주러 갈 거야. 그러니까 움직이지 말고 잠깐만 기다려.”


아이를 그 자리에 붙인 여자는 절박한 눈길로 사장을 바라봤다. 윗옷을 벗은 사장은 바지까지 벗고 있었다. 드러난 것은 맨살이 아닌 다이빙슈트였다. 물을 가르며 얼마간 걸어가던 사장은 이내 머리를 박고 헤엄치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였지만 다급한 심정 탓에 느리기만 느껴졌다. 넓지 않은 강 중간까지 금세 도착했다. 먼저 보트에 묶인 채로 헤엄치고 있는 뭉치에게 다가간 사장은 잘 했다는 듯이 머리와 귀를 어루만졌다. 어린 나이여서 그런지 지치지도 않고 쌩쌩해보였다.


“개 말고 우리 아들 먼저….”


두 손을 그러쥔 여자가 사장에게 들리지도 않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사장은 뭉치의 목줄과 보트를 연결해놓은 고리를 풀어냈다. 그리고 그대로 강 반대편으로 헤엄치기 시작했다. 내내 사장을 바라보고 있던 아이와는 눈 한 번 마주치지 않았다. 헤엄치는 사장 뒤로 구명조끼를 입은 뭉치가 유유히 따라갔다.


“안 돼. 안 돼요. 우리 아들 구해줘요.”


사장이 강 반대편에 닿을 때까지 여자는 계속 소리를 질렀다. 이내 여자의 목에선 탁하게 갈라진 쇳소리만 흘러나왔다. 보트 위의 아이는 어찌 해야 할지 모르는 얼굴이었다. 주저앉은 여자와 멀어지는 사장만 번갈아보고 있었다.


땅으로 올라온 사장은 손바닥으로 머리와 얼굴의 물기를 털어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멀지 않아서 육안으로도 무엇인지 보였다. 사장이 꺼낸 것은 비닐로 쌓인 무전기였다. 순간 여자는 자신이 아직도 무전기를 쥐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자는 버튼을 눌렀다.


“우리 아들 구해준다고 했잖아요!”


여자의 말에 비닐을 벗기던 사장이 여자 쪽을 돌아봤다. 그리고 어딘가를 가리켰다. 손가락이 향한 것은 여자가 나온 별채였다. 열린 문에서 웬 개가 비틀거리며 걸어 나오고 있었다. 방금 여자의 손에 주사를 맞은 개였다. 사장이 무전기로 입가를 가리자 여자 손에서 전자음과 함께 목소리가 들렸다.


“미미가 보트에, 동우가 상자에 있었으면 지금 나오는 건 개가 아니라 사람이었겠네요.”


여자를 발견한 개가 물가 쪽으로 걸어왔다. 개로부터 멀어지듯 물러나던 여자는 퍼뜩 사장을 봤다.


“일단 동우 좀 구해주세요.”

“왜요? 모르는 사람이잖아요.”

“구해준다면서요. 구해준다고 했잖아요.”


전자음과 울음소리가 쉰 쇳소리와 어우러졌다. 사장은 다시 버튼을 눌렀다.


“안 죽였잖아요.”

“십 분쯤 걸린다면서요.”

“진짜 안락사 약이면 그렇겠지. 각성제예요.”


그때 풍덩 하고 물이 튀는 소리가 들렸다. 놀란 여자가 돌아보니 기다리지 못한 아이가 물에 빠져있었다. 동우야! 여자는 비명을 지르며 물로 뛰어들었다. 순식간에 가라앉을 거라던 사장의 말과 달리, 여자가 발 닿는 곳까지 첨벙거리는 동안에도 아이는 여전히 둥둥 떠 있었다. 조명조끼 특유의 부유감이었다. 그제야 여자는 아이가 있던 보트를 살폈다. 하얀 공기보트는 바람 빠진 기색 없이 빵빵하게 부풀어있었다. 보트 어디쯤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만 반복해서 울렸다.


여자와 아이는 중간쯤에서 만났다. 울며 매달리는 아이를 안고 온 힘을 짜내 땅으로 올라왔다. 다급히 살펴본 아이는 옷이 젖었을 뿐 다친 곳은 없었다. 구명조끼도 정상이었다. 아이가 무사한 것부터 확인한 여자는 그제야 주저앉았다. 우는 아이를 품에 안고 멍하니 하늘에 시선을 뒀다. 그때 신발이 벗겨진 발등에 뭔가가 닿았다. 돌아보니 아직 몸을 가누지 못해 비틀거리는 개였다. 여자가 걱정되는지 힘 빠진 혀로 발등을 핥고 있었다. 차게 식은 피부에 따듯한 혀가 닿는 순간, 개를 내려다보던 여자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때 주변에 떨어져있던 무전기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미미는 당신 손에 죽었는데 그럼 그건 이제 뭐예요? 하긴, 뭐가 됐든 앞으로도 가족이죠?”


병원부터 다녀와요. 경찰서에서 봅시다. 그 말을 끝으로 사장은 자갈 위에 무전기를 던졌다. 그리고 뭉치와 함께 그대로 강둑 너머로 사라졌다.






2017.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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