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푸른 주차등

80매

by 이한얼






“슷.”


이 나이가 되고 가장 도드라진 점은 오래 깊게 잠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신이라기에는 뭐하지만 이마에 닿는 방 안의 온도나, 눈꺼풀 너머 번지는 광량, 목의 결림과 손발의 저림 등으로 눈을 뜨지 않고도 대략 언제쯤인지 알 수 있다. 지금은 아마 잠든 지 다섯 시간쯤이 지난, 아직 여섯 시가 되기 전일 것이다. 천장의 벽지가 창에서 스며든 하늘빛으로 푸르게 번지고 제법 쌀쌀해진 공기가 코를 칼칼하게 간질이는 초가을 새벽녘의 시간.


아니나 다를까, 머리맡에서 알람 진동이 울린다. 여섯 시로 맞춰놓기는 했으나 늘 그보다 먼저 깨고는 했으니 오늘 역시 같은 시간이다. 다만 어제와 다른 점은 눈이 떠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손도 목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 자는 동안 꺼둔 운동신경 세포가 아직 켜지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생각으로만 버둥거리는 사이 진동은 곧 꺼졌다. 별다른 조작이 없었으니 아마 1분 후 다시 울릴 것이다. 고요해진 주변을 따라 의식이 수면에 스며드는 햇살처럼 일렁거린다. 그쯤 막연히 그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이대로 깨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아니, 아마 그럴 것이라고.


“슷.”


어제는 별다른 것 없는 평범한 날이었다. 언제나처럼 여섯 시쯤 일어났고 눈을 뜨자마자 화장실부터 찾았다. 오래 써 충분히 부드러워진 칫솔로 살살 양치를 해도 잇몸에서는 피가 나온다. 분홍색 거품으로 거울을 문지르고 샤워기로 씻어내니 누렇고 푸석한 얼굴과 눈이 마주친다. 요즘 눈이 침침하고 목이 자주 쉰다. 그래도 소화불량과 체기를 달고 사는 것만 빼면 나이에 비해 건강하다. 찬찬히 씹을 새 없는 시간을 목구멍으로 꾸역꾸역 밀어 넣는 사이에 세월 속에 하릴 없이 나동그라진 평범한 사람. 주름진 손이 누런 얼굴 대신 거울의 물기를 쓸어내린다.


눅눅한 수건으로 얼굴을 문지르다가 문득 아이들을 봐야겠다고 결심했다. 그건 충동이라기보다 어떤 사명에 가까웠다. 아이들을 떠올릴 때면 항상 그랬듯이 거실의 달력부터 살핀다. 14일 목요일. 공휴일이 드문 10월답게 새까맣다. 바쁠 시간이겠다. 언제나 토요일 같은 나와 다르게 모두 회사에 학교에 한창 정신없을 시간일 텐데 오늘 애들이 어찌 오겠어. 전화나 한 번 하고 주말에나 보던가. 나는 한껏 불쑥 도드라진 의지를 애써 밀어 넣는다.


그러고 보니 안방 불이 밝다. 나보다 한 시간쯤 더 자는 당신이 웬일로 일어나있다. 혈색 없이 허옇게 뜬 얼굴로 창밖 하늘을 응시하다가 이쪽을 본다.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이라서 뒤늦게 말을 붙인다. 왜 벌써 일어났냐는 말에 당신은 말을 할 듯 말 듯 입술을 몇 차례 들썩인다.


“뭐 애먼 꿈이라도 꿨어?”

“기억은 안 나는데 그런갑네. 아침부터 이래 쿵쾅거리는 걸 보니.”


심장은 원래 쿵쾅거려야 정상이라고 웃으며 당신의 등을 부드럽게 두드린다. 내 신소리에 당신도 풀썩 웃어버린다. 그래, 이 나이 대 꿈은 그렇게 털어내야지. 놔두면 온종일 틈틈이 튀어나와 사람을 껄끄럽게 만들 테니. 나는 아침이나 먹자며 부엌으로 들어선다. 전등 스위치를 올리고 냉장고를 여는데 당신은 불쑥 ‘오늘 애들 좀 오라 해봐’ 한다. 바람에 실어 보내듯 담담한 어조였지만 순간 등골이 서늘해진다. 살다 보면 가끔씩 마주치는 모종의 예감이 있다. 마치 예전 첫째 아이가 차 사고를 당했던 날, 거실 탁자 위에서 울린 휴대전화 벨 소리에 이유 없이 섬뜩했던 것처럼. 밀어두었던 의지가 어느새 고장 난 스프링처럼 솟아있다. ‘아침 먹고 전화나 한 번 해볼까’ 하는 말에 지금 해보라며 성화다. 아직 일곱 시도 안 됐는데 전화 걸면 애들 놀라니 밥부터 먹고 하자며 애써 당신을 말린다.


숟가락을 놓자마자 건네받은 전화로 첫째부터 걸어본다. 두어 번 울리기 무섭게 ‘무슨 일이세요’ 하는 목소리가 다급하다. 아무 일 없으니 놀랄 것 없다. 그제야 긴장이 풀어지는 기운이 수화기를 넘어온다. 어디냐는 말에 애 등교시키는 중이란다.


“오늘 시간 되면 잠깐 와라.”

“별일 없으시면 주말에 갈게요. 오늘 애들 엄마가 늦게 끝나서요.”


그럼 그래라. 평소라면 이렇게 끝났어야 할, 내내 이렇게 끝나왔던 전화였다. 하지만 오늘은 당신과 잠시 시선을 맞추다가 ‘그러지 말고 일없으면 오늘 와라’라고 한다. 첫째는 잠시 말이 없더니 그럼 조금 늦게라도 가겠다며 전화를 끊는다. 둘째는 받지 않고, 막내는 통화 중이다. 아마 제들끼리 통화하고 있겠지. 갑자기 왜 저러시냐고, 뭐 아는 거 없냐고.


잠시 후 둘째와도 같은 통화를 마쳤다. 그리고 나서 당신과… 뭘 했더라. 같이 마트에 갔고, 오는 길에 어딜 들렸던 것 같은데. 그리고 저녁에 애들이 왔었나. 막내가 가장 먼저 왔고, 첫째와 둘째는… 이상하다, 왜 기억이 안 나지.






“슷.”


살아간다는 것은 수많은 사건과 경험, 감정과 가치관을 관통하는 일이지만 모든 것은 결국 두 단어로 수렴할 수 있다. 사랑과 후회. 인생은 누군가를 향한 사랑과 그를 위한 선택 중에 발생한 후회로 이루어져 있다. 내 삶 역시 마찬가지였다. 되는대로 쫓기듯 살아왔다 생각했지만 되돌아보면 당신과 아이들과 나 자신을 사랑했고, 사랑하는 그들을 위해 목적을 선택했고, 그중 어떤 선택에 대해 후회하는 과정이었다.






“슷.”


당신을 향한 사랑은 다른 어떤 사랑하고도 같지 않았다. 사랑하는 법도 몰랐고 달리 사랑할 대상도 없어서 모든 사랑을 나 자신에게만 쏟아 붓던 무렵에 당신을 만났다. 딱딱한 척만 할 뿐 공허한 대나무 같던 나와 달리 당신은 푸른 연꽃 같았다. 유한 인상이지만 단단한 속을 가지고 있었고, 말처럼 언어적 표현보다 표정이나 행동 같은 비언어적 표현이 훨씬 풍부했던 사람이었다. 그것은 유심히 보지 않을 때는 잘 모르나 유심히 살피면 내두름에 속지 않고 부끄럼에 가림 없이 당신을 더 잘 알 수 있다는 뜻이었다. 모르는 만큼 궁금하고, 속속들이 알고 싶고, 안 보면 보고 싶고, 보면 헤어지기 싫은 사람. 다른 이성과 나란히 있으면 마음이 불편하고, 화를 내면 뜨끔하니 눈치가 보이고, 간혹 그 별 같던 눈에서 서운함이라도 흐를 때면 마음이 철렁하던 당신. 그때는 그것이 사랑이라 여겼다. 하지만 실상 그것은 당신이 아닌 나를 사랑한 일이었음을 아주 나중에야 알게 됐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당신과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아 키우던 어느 날부터 당신을 봐도 가슴이 뛰지 않기에 더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여겼다. 사랑은 열병처럼 왔다가 화농처럼 흔적만 남겼고, 우리의 열기는 마른 장작처럼 불타다 어스름한 재만 남기고 사라졌다고. 이제는 가정에 대한 의무감, 서로에 대한 의리, 부모님에 대한 눈치와 주변 시선, 아이를 향한 책임감 등이 남아서 정으로만 살고 있다 여겼다. 그래서였겠지. 마땅히 시드는 연꽃을 대하듯 어느 날부터 나는 당신이 못나 보였고, 그 후 참 오래도록 못마땅해 했다. 한때는 귀엽던 버릇도, 이해할 거라 넘겼던 생각 차이도, 나와 많이 다른 일상의 태도와 말의 방식까지 뒤늦게 눈에 밟히고 목에 걸렸다. 나는 생각만 품어도 행동으로 티가 나는 사람인지라 그것을 마음속에만 두지 않고 당신을 참 많이도 괄시했더랬다. 아무리 돌부처 같던 당신도 태어난 아이가 다 자랄 동안 이어진 내 태도에 당연히 신물이 났겠지.


하지만 지나고 보니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불을 붙이자마자 폭죽처럼 타오르지도 않았고, 기름 먹인 장작처럼 거센 불꽃을 날름거리다 홀연히 사라지지도 않았다. 머물 자리를 마련해주면 오랫동안 씨앗으로 웅크리고 있다가 모든 것이 무르익은 어느 날 갑자기 싹을 틔우며 꽃으로 자라는 것이 사랑의 참모습이었다. 최소한 배우자에 대한 사랑만은 그랬다. 함께 산 시간이 따로 자랐던 시간보다 길어졌을 무렵에야 비로소 본 모습을 보이는 것. 이윽고 사랑이 꽃으로 피어서 온전히 누릴 수 있게 됐어도 나는 알아채지 못했다. 그간의 허상에 갇혀 눈앞에 멀쩡히 핀 꽃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당신을 잡지 않았다.


하늘과 땅이 푸르게 차오르던 어느 여름날, 나와 함께 아침을 먹던 당신은 수저를 내려놓으며 따로 살고 싶다고 말했다. 별거니, 이혼이니, 심지어 요즘 심심찮게 들려오는 졸혼이라는 말도 친구들 사이에서나 들었을 뿐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아니, 그러리라 생각했다. 막내 아이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한 해였으니 애들 다 키워놓고 이제 와 시위라도 하는 건지. 이혼하자는 뜻이냐니 그것은 아니라고, 생일이나 결혼 같은 집안의 큰 행사는 함께 치러도 같이 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길길이 날뛰지 않았다. 오래 가지고 있던 불만이 터진 거라고, 그게 이번에는 시기와 상황-아이들이 자라 전부 앞가림을 시작했다던가, 마침 한창 갱년기를 겪는 중이라던가-을 타고 좀 크게 번졌다고만 생각했다. 내가 뭐라 대꾸하지 않으니 당신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뒤 스스로 뱉은 말대로 착실하게 움직였다. 집을 알아보고, 집안에 오래 쌓아두고 안 쓰던 물건들을 처분하고, 자신의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그제야 본격적인 실랑이가 벌어졌다. 낮에는 고성과 침묵이 오가고, 저녁에는 퇴근하고 돌아온 첫째와 막내가 우리 눈치를 보며 안방과 거실에서 각각의 심중을 살피거나 다독이고는 했다. 우리의 대치는 그리 일주일쯤, 당신은 조개처럼 입을 닫고 나는 대답 없는 당신에게 답답한 화를 내며 이어졌다. 결국 나가면 완전히 끝이라고, 가끔 보니 마니 그런 어설픈 짓 안 할 거라고 통보했던 다음 날, 아침에 나가 점심에 돌아온 당신은 정말 그 길로 나가버렸다. 마지막 짐을 챙기는 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잡지 않았다. 대신 말한 대로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어 현관 앞에 둔 옷 가방 한편에 쑤셔 넣었을 뿐이었다. 몇 주가 지나도록 서류가 돌아오지 않았아도 전화하지 않았고, 아이들의 설득에도 찾아가 보지 않았다.


지금도 그 순간을 후회한다. 낯선 집에서 새된 심정으로 짐을 풀던 당신은 옷가지 틈에서 서류 봉투를 발견한 순간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당신과 나는 나이도, 태어난 동네도, 자라온 환경도 모두 달랐다. 성향과 성격도, 서로에게 잘못하는 과정도, 잘못을 사과하는 방법도,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대화를 하는 방식까지도 전부 달랐다. 젊었을 무렵부터 그랬으나 함께 살며 점점 더 달라졌다. 그러며 다름은 어느 시점부터 틀림이 되었다. 서로 너무나 동떨어진 단어지만 유심한 관심으로 살피지 않으면 알 수 없거나 알면서도 와 닿지 않을 차이였다. 아무리 같은 공간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하더라도.






“슷.”


아이에 대한 사랑 역시 다른 어떤 사랑과도 달랐다. 비유하자면 안에서 계속 물이 솟아나는 마법 주전자 같았다. 나갈 수는 있어도 들어오기는 어렵다. 그저 끊임없이 물을 부어낼 뿐 쏟아낸 물을 다시 담을 요령이 없다. 논리나 이성과 별리된, 그냥 그런 것이다. 분명 세상에 없었는데 별안간 우리 사이에 나타났다고 했다. 어색한 실감과 앞선 걱정, 그리고 묘한 책임감 사이에서 씨름하는 동안 생명이 실제로 나타났다. 오전까지는 저 멀리 어딘가에 있다는 소식만 들려오는 감각이었는데, 오후에 갑자기 코앞에 등장했다. 평생을 통틀어도 가장 경이로웠던 일은, 실체 없던 것이 실재하게 된 그 순간이었다. 없어졌다가 다시 나타난 것이 아니고, 어딘가에서 흘러들어오거나 누군가 넘겨주는 것도 아닌, 애당초 있지 않았기에 부재 자체를 느끼지 않다가 갑자기 생겨난 존재감이었다. 작디작은 생명이 내 영혼을 후려치는 듯한 그 느낌은 세상 어떤 언어를 끌어와도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네가 태어나는 것을 봤지만 어디서 온지 알지 못하고, 내가 죽기 전에 네가 먼저 어딘가로 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너는 부재로부터 오지 않고 끝내 부재로 사라지지 않을, 지금껏 만난 다른 어떤 이와도 다르게 오직 존재만으로 의미를 가진 대상이었다. 아… 그랬구나. 이런 네가 태어나기 위해 이 세상이 있었던 것이로구나. 너를 온전히 키우는 일이 내가 가진 가장 큰 목적이었구나. 낳아준 부모가 사랑 너머의 존재고, 배우자가 사랑 그 자체라면, 아이는 그 사랑 내부에 있는 본질이었다. 그런 아이가 심지어 자라난다. 날이 갈수록 내 곁에서 자신의 부피를 촘촘히 늘려간다. 아이를 키우며 발생하는 모든 단점과 힘듦을 그러모은다 해도 그 불가항력적인 자라남이 사방으로 발산하는 벅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아무리 배우자를 사랑해도, 심지어 나 자신을 사랑해도 그것과는 본질부터 달랐다.


그럼에도 아이가 하나일 때와 둘일 때, 또 셋일 때는 어째서 다를까. 아이가 어릴 때와 컸을 때, 육아에 낯설 때와 익숙해졌을 때는 왜 또 다르게 받아드릴까. 경험상 이 아이에게 더 눈이 가고, 상황상 저 아이에게 더 마음이 쓰이는 것을 부모도 인간인지라 어쩔 수 없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부모가 그리 갈음하면 아이는 어쩌나. 물론 처음 키우는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더 세세히 살펴보는 일은 어쩔 수 없다. 5살인 아이보다 2살인 아이에게 더 눈이 가고 신경을 쓰는 것 역시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결코 타당한 일이 아니다. 내가 별수 없이 그렇게 하는 일이고 그래서 미안한 일이지, 아이가 당연하게 받아드려야 하고 그만큼 내가 당당한 일이 아니다. 서로 너무 다른 단어고 의미인데 젊었던 나는 그 점을 구분하지 못했다.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닌 타당한 것이라고 여겼다. 살다 보면 그런 말들이 있다. 특히 부모 자식 간에, 또 부부 사이에. 상대에게는 멀리 떨어진 말인데 나는 상황과 입장에 따라 같다고 여기고 그래서 쉽게 혼용하는 말들. 예를 들어 ‘너를 위한 거야’와 ‘나를 위한 거야’라든지, ‘나도 힘들어’와 ‘너만 힘들어?’라든지, ‘이해해줘’와 ‘이해해라’ 같은 말들. 사실 날 위한 건데 너를 위하는 줄 알고, 너와 나의 버거움은 색도 무늬도 다른데 따로 풀어낼 시도 없이 싸잡아 무마하고, 이해해주면 고마운 일을 당연히 이해해야 하는 일처럼 여기는 말들. 그렇게 뒤섞인 생각은 반드시 행동으로 드러난다. 받는 상대도 그 미묘한 차이를 절대 놓치지 않는다. 특히 자신의 우주를 급속도로 키우고 있는, 그래서 상상할 수 없이 섬세한 감각으로 외부 정보를 수용하는 아이는 더욱 그렇다.


그렇게 치면 나는 더 정제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은 생각과 행동으로 아이들에게, 특히 둘째 아이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줬을까. 스스로 인지하는 것만 해도 이런데, 내가 미처 알아채지 못한 부분까지 더하면 아이들은 내가 강요했던 수많은 부조리를 어떻게 견뎌냈을까.






“슷.”


‘끝내 네 마음대로 할 거면 내 집에서 나가.’ 자식에게 이렇게 말하는 부모가 어디 나뿐이랴. 이렇게 말하는 부모는 많겠지만 저 말이 진심인 부모는 누구도 없을 것이다. 진정 부모라면 말이다. 세상 어느 부모가 자식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연을 끊으려고 할까. 그러니 저 말을 굳이 풀이하자면, 반대 의사의 최상급 표현인 셈이다. 어떤 주제에 대한 선택이 서로 다를 때, 그 선택이 인생 전반에 영향을 주는 중대한 문제여서 우리의 갈등이 심해졌을 때, 그때 부모는 자식에게 이른바 '이렇게 말할 만큼 아주 확고한 반대를 한다'라는 뜻으로 저 말을 사용한다. 나도 예전에 들었던 말이었고 나는 부모의 저 말에 상처를 받지 않았다. 내가 어릴 적엔 그런 시대, 그런 사회 분위기였으니까. 그래서 나도 썼다. 나와는 다른 시대, (그것도 지금껏 급변한, 그리고 계속 급변하고 있는) 다른 사회에 살고 있음을 간과하고는 내가 그랬듯 아이들도 당연히 내 마음을 알아줄 것이라 여겼다. 다행히 첫째는 괜찮았다. 당시에는 충격이었으나 상처가 되지는 않았다고, 시간이 지나 결국 나를 이해할 수 있었다고 했다. 막내와는 저 말을 할 상황 자체가 없었다. 문제는 둘째였다. 첫째가 그랬듯 둘째도 이해해주겠지. 하지만 저 말을 들은 둘째는, 그 순간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고 했다. 말을 한 나도, 곁에 있던 당신도, 심지어 둘째 본인조차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 당시 나는 얼마나 멍청했는지 그러는 둘째가 연약하다 느꼈다. 충격을 넘어 배신감으로 오들오들 떠는 모습을 보며 뭘 그렇게까지 반응하는지 의아했다. 같은 세대인 첫째는 괜찮은데 너만 그런다며 그 반응을 단순히 둘의 차이로, 나아가 둘째의 탓으로 생각했다. 이 얼마나, 어찌나 일방적인 시각이었는지. 둘째가 첫째와 다른 것은 사실이지만 (또 그래야 하고) 그 원인은 본인이 아닌 내게 있었는데. 그렇게 키우고 그런 아이가 되게끔 만든 내 잘못이었는데. 둘째에게 그 말을 한 것도 후회였지만 더 큰 후회는 그런 생각을 했고 또 그것을 아이에게 드러냈다는 점이다.


나는 둘째를 지극히 두 번째 아이처럼 대했다. 첫째를 키울 때만큼 안달복달하지 않고, 한 번 키워본 것이 뭐 벼슬인 양 쉬이 키웠다. 또 뒤이어 태어난 막내처럼 급하게 키우지도 않았다. 더 울고 보채는 어린애가 있으니까 좀 뒷전으로, 갓난애보다는 더 컸으니 마치 훌쩍 자라있는 첫째만큼 알아서 할 것처럼 키웠다. 애를 여러 번 키워본 것은 나인데 마치 얘가 여러 번 자라나본 것처럼 대했다. 그때는 그것을 이상하다 여기지 않았다. 내 마음은 똑같으니까. 셋 모두 동일하게 사랑하니까. 그러니 괜찮으리라 생각했다. 사랑의 표현방식이, 전하는 말이, 대하는 행동이 조금 달라도 똑같이 느낄 거라 여겼다. 여덟 살과 두 살 사이에 끼어있는 그 다섯 살의 어린애에게. 나와 둘째의 관계 밀도가 다른 아이보다 덜 촘촘한 것도, 내 말을 듣고도 그 속뜻을 이해할 때까지 버틸 내구성이 없던 것도 모두 내가 만든 것이었다. 자라는 동안 받았던 내 의도치 않는 차별이 둘째를 가정 속 외딴섬으로 밀어놓았다. 그러고도 본인이 약해서 그런다니. 뭘 그렇게까지 과민반응 하냐고 혀를 차다니. 그것도 상처를 준 당사자인 내가. 이 얼마나 내 시선에만 갇힌 관념이었나.


그날부터 우리 관계는 매끄럽지 못했다. 둘째는 대학 1학년이 끝날 무렵부터 나가 살았다. 결혼 전까지 함께 산 첫째나 막내와 달리 마치 외인처럼 때마다 집과 집을 오갔다. 그렇게 관계 근원에 깊은 갈라짐이 있었지만 시간의 힘으로 겉 부분만 간신히 봉합하고는 데면데면한 채로 10년이 그대로 흘러갔다.






“슷.”


직접 수놓은 푸른 식탁보. 내 앞에 놓인 절반가량 마신 생강차. 당신은 그쯤 처음 입을 열었다.


“당신이 내 말을 안 들어준다고 생각했어. 내가 무시당한다고 생각했어. 근데 정작 말을 안 한 건 나더라. 대화를 원하면서도, 그저 기다리기만 하고 내가 먼저 시작하지는 않았어. 나는, 당신과 참 다르지. 나는 잘못을 하면 빨리 깨닫는 편이야. 근데 금세 또 같은 잘못을 반복해. 그런 모습이 지난 몇 십 년 동안 당신과 아이들을 힘들게 했을 거야. 당신은 나와 다르게 잘못을 해도 금세 깨닫지 못하지. 오히려 적반하장처럼 굴고. 하지만 뒤늦게라도 깨달으면 반복하지는 않았어. 우리는 누가 더 잘하고 잘못하지 않았어. 우리는 상대에게, 그리고 아이들에게 얼추 비슷하게 잘했고 비슷하게 잘못했어. 그래서 당신에게는 좀 덜 미안해. 그만큼 많이 주고받았으니. 그러니 이제 와서 뭐가 미안하니, 그런 말 안 할게. 평생을 이리 살아왔는데 내가 바뀔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 그러니까, 지금껏 그랬듯 나는 또 기다릴 거야. 당신이 내 잘못을 용서할 때까지, 그리고 당신 잘못을 사과할 때까지. 당신이 그럴 마음이 들면 나를 용서하고, 사과해줘. 지금처럼, 앞으로도. 그럼 부족한 우리도 같이 늙을 수 있지 않을까.”


울음을 참고 있는 내게 당신은 인생 처음으로, 저리도 긴 말을 담담하게 꺼내놓았다. 그날은 우리가 가꿔온 오랜 씨앗에서 마침내 싹이 튼 날이고, 반면 우리의 연이 가장 얇았던 날이고, 지금껏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당신을 내내 사랑했음을 깨달았던 날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드디어 근원에서부터 부부가 된 날이었다.






“슷.”


처음 집을 나간 당신은 가족의 생일, 첫째의 상견례 자리, 명절, 그리고 아버지 생신에 찾아왔다. 이래저래 다 따지면 달에 한 번은 본 셈이다. 다른 날은 몰라도 아버지 생신에는 왜 왔냐고 타박해도 당신은 묵묵히 신발을 정리했다. 애먼 짓 하지 말고 돌아가라고 언성을 높이자 그제야 당신 아버지 말고 내 시아버지 뵈러 왔다는 대꾸가 돌아왔다. 모임을 마치자마자 당신은 돌아갔다. 방금까지 번잡하다가 휑하니 비어버린 거실에 홀로 앉아 남은 잡채에 소주를 마시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 만큼 덜 살아오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참으로 오랜만에 당신 뒷모습을 지켜봐서인지. 당신은 입보다는 등으로 말하는 사람이었고 나는 그 등을 오래 지켜보며 살았다. 풋내가 슴슴한 신혼도 아니고 이 나이에 당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어찌 모를까. 정말 내 아버지에게 의리를 지키러만 오지는 않았을 터.


당신이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음을, 그리고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은 그날 밤이었다. 왜 나갈 사람이 안 나가고 엄한 사람이 나가냐고 소리 지르며 식탁 위 물건들을 내던지던 둘째의 모습에도, 안쓰러움과 분노 사이 어디쯤에서 내쉬던 첫째의 한숨에도, 만류와 설득 끝에 아이처럼 터트린 막내의 울음에도 깨닫지 못한 것을 아까 막내의 방을 한참이고 바라보던 묵묵한 등에서 깨닫게 됐다. 불현듯 잡채가 짜고 소주는 썼다.


그 다음 달 첫 주에 나는 당신을 만나러 갔다. 막내에게 받은 주소는 전철로 10분쯤 떨어진 바로 옆 동네, 작년까지 당신의 사촌이 살았던 집이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신혼 때 내 사촌이 집에 자주도 놀러왔었다. 당시 사촌도 나도 참 눈치가 없었지. 그럼에도 당신은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았고. 분명 없는 살림이었기에 더 먹는 입 하나가 부담이었을 텐데. 그에 반해 나는 당신의 친척에게 얼마나 베풀었나. 아니 당장 당신의 가족에게라도 넉넉한 사위였나. 내 집에 갈 때는 당신이 만든 음식을 바리바리 싸들고 갔지만 당신 집에 갈 때는 과일 말고 뭐라도 들고 갔던가. 당신은 언제부터 당신 집도 잘 안 가게 되었을까. 골목에서 어정거리고 있을 때 파란 대문 너머로 눈이 마주쳤다. 연락도 없이 대뜸 등장했음에도 당신은 준비하고 있던 것처럼 나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갔다. 모르는 집에서 당신 냄새가 나는 일은 생경하고 쓰린 경험이었다. 말없이 마주 앉은 사이로 알싸한 향이 끼어들었다. 내 앞에 놓인 잔을 한동안 내려다봤다. 집에서도 내가 좋아해서 자주 먹었지, 당신은 몸에 안 맞는다며 입에도 안 대던 생강차였다. 혼자 살면서 이것을 왜 두고 있나. 분명 다른 집인데, 당신 냄새와 생강차 향이 섞이니 꼭 우리 집같이 느껴졌다. 꿀에 절인 생강편은 알싸하고 달콤했다. 그 순간, 내내 너덜거리던 마음 밑바닥이 길게 찢어졌다.


“미안해. 내가 당신을 귀하게 여기지 못했어.”


한 마디를 내뱉고 숨을 들이쉬다가 갑자기, 다음 말을 준비하던 목젖이 파르르 떨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십 수 년 만에 당신 앞에서 눈물이 맺혔다. 멍청하게도 이 한 마디를 꺼내는 데 1년이나, 아니 수십 년이나 걸렸다. 고작 한마디를 했을 뿐인데, 아직 하지 못한 말은 가슴에 아흔아홉 마디는 더 있는데 당신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만큼 내 마음도 뭉그러졌다.


“당장 돌아오라는 말이 아니야. 내가 달라졌다 느껴지면 돌아와 줘.”






“슷.”


우습게도, 그날부터 나는 점점 더 당신을 사랑하게 됐다. 아니, 지난 수십 년 동안 사랑할 준비만 하다가 이제야 드디어 사랑을 시작한 것 같았다. 필요성만 따지면 이제 당신의 역할은 예전보다 줄어들었다. 아이들은 이미 다 컸다. 나는 이제 밥솥과 건조기를 다룰 줄 알고, 무슨 요일에 음식물 쓰레기를 버려야 하고, 건조기 필터 청소하는 법을 알게 됐다. 왜 당신이 나간 후에 옷을 입으면 피부가 거슬리고 건조한지, 세탁기 헹굼 2번과 3번이 무슨 차이인지도 깨달았다. 이제와 누군가의 손길 없이도 내 한 몸 건사하며 살 수 있게 됐는데 신기하게도 당신에 대한 의존도가 줄어들수록 당신을 더 사랑하게 됐다.


당신은 두 번째 주가 지나기 전에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나간 지 꼬박 1년 만이었다. 당신이 잠시 머물던 집은 사촌에게 월세를 주고 작업실로 쓰기로 했다. 몇 남지 않은 세간 사이로 그간 눈독만 들이고 미뤄오던, 당신은 계속 사고 싶어 했으나 나는 반대만 했던 물건이 들어찼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면 여기 오라고. 1박 2일도 괜찮고 늦어지면 괜히 버스 타지 말고 전화하라고. 나는 마치 당신에게 줄 선물을 고르는 심정으로 당신의 두 번째 집을 꾸렸다. 그래놓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신 못지않게 나도 자주 가게 됐다. 우리는 멀쩡한 집을 놔두고 나란히 작업실로 출근해서 나는 그림을 그리고 당신은 글을 쓰며 한나절 시간을 보내다 돌아오기도 했다. 요즘 와서는 소파에서 곰팡이 피우지 말고 작업실에 가서 그림이라도 그리라며 쫓겨날 때도 있었다.


그렇게 부부 관계가 바로 서고 나서야 나는 아이와도 제대로 마주 설 수 있었다. 부부가 헤어지지 않고 함께 사는 모습만으로도 아이에게 가족은 남이 아님을 일깨워주듯, 언성과 집기가 종이비행기처럼 집안을 헤집지 않고 대화로 관계를 이어가는 부모의 모습은 아이들에게 본인 역시 부모와의 갈등을 대화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게 한다.






“슷.”


둘째의 외국 주재원 생활이 끝나고 우리는 몇 년 만에 가족여행을 떠났다. 넓고 얕은 냇가를 앞에 낀 강원도의 펜션이었다. 첫째 네는 이미 물장구 중이고 막내도 둘째의 아이를 안고 물가를 오가는 모습이 보였다. 푸른 늦여름 하늘과 하얀 구름 아래, 그보다 더 파랗고 하얀 파라솔에 나와 당신 그리고 둘째만 있었다. 냇가를 얼마간 지켜봤을까, 화장실에 간다며 당신이 자리를 비웠다. 그때 막내에게 안겨 가동거리는 자신의 아이를 보던 둘째가 먼저 입을 열었다.


“혹시 그날 기억나요?”


언제라는 말도 없었지만 나는 바로 알아챘다. 불감청 고소원이지 잊을 리가. 내내 박힌 가시처럼 뽑고 싶었으나 내 것을 뽑으려다 네 것을 더 밀어 넣을까 봐 꺼내지 못한 말이었으니.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둘째는 내 표정만 보고도 알았는지 나지막이 말을 이어갔다.


“그 말이 상처였는데, 상처였다고 말을 못 했어. 마음속으로는 천 번도 말했는데, 얼굴 보고는 못 했어.”


안다. 내 어찌 모르겠니. 상처를 상처라고 밝히는 것이, 더구나 상처 준 이에게 말하는 것이, 무엇보다 상처라고 동의하지 않는 이에게 그리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구차하게 느껴지는 일인지. 그간의 나는 너희들에게 그만큼의 곁도 주지 않았구나. 그저 부모로서, 어른으로서 군림하기만 했지 너의 속을 자세히 헤아리지 못했다. 너를 한순간도 사랑하지 않았던 적은 없지만 내 사랑의 형태와 방식만을 너에게 강요해왔다.


“미안하다. 그때 그 말도, 너를 그대로 인정하지 않은 것도, 늘 후회했다.”


10년 만에, 길게는 평생 처음 나온 것치고 서로의 말은 단출했다. 표현할 수 없는 말과 표현하지 않은 말은 없는 말과 같다던데, 어찌 그 긴 시간 동안 나는 미안하다는 이 짧은 말조차 못 했는지.


“분명 상처였지만, 내가 상처받았단 이유로 그동안 너무 못되게 굴었어. 엄마 나갈 때 대신 나가라고, 여기서 가장 필요 없는 사람이 아빠라고 했던 건 진심이 아니었어. 죄송해요.”


당신 때와 마찬가지로 백 마디 중 고작 한마디였지만, 어쩌면 둘째는 천 마디 중 하나였을지 모르겠지만, 나도 둘째도 더는 뭐라 덧붙이지 않았다. 우리의 주고받음은 당신이 화장실을 다녀오는 짧은 시간이면 충분했다. 어느 순간부터 조용히 눈물을 흘리던 둘째는 돌아오는 당신을 발견하고는 교대하듯 화장실로 향했다. 둘째를 스쳐 보내고 온 당신은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았다. 여전히 건조한 내 눈을 잠시 들여다보더니 물기를 닦는 것처럼 내 볼을 두어 번 쓸어내리기만 했다.


긴 시간 갈라져 있던 둘째와 나 사이의 균열은 그날 이후 천천히 아로 붙기 시작했다. 다만 흉터가 남지 않으면 상처가 아니었듯이, 우리가 이전만큼 혹은 이전보다 더 가까워졌어도 모서리 일부는 영영 아물지 않았다. 그것은 어떤 식으로 극복했다 한들 상대에게 한 번 상처를 주면 상처를 주기 전과 똑같이는 되돌릴 수 없다는 뜻이었다.






“슷.”


장면이 휙휙 바뀐다. 막내가 결혼하던 날이나 마지막 손주가 태어나던 날처럼 의미 있는 장면도 있고, 이런 게 왜 떠오르지 싶은 별일 아닌 장면도 있었다. 아이스크림을 떨어트리고 울던 손주의 모습. 여행 갔을 때 냄새만 맡고 끝내 먹지 않았다가 집에 돌아와서야 먹어볼 걸 후회했던 닭 내장 요리. 여행 중에 무주산자락 어드메에서 길을 잃었던 일. 목탄차에서 뿜어내는 기름 먹은 나무와 폐타이어 타는 냄새. 추운 겨울밤 창밖에서 누군가 나무막대를 두드리는 소리. 뒷집에서 들리던 총소리와 순사들의 구둣발소리. 삼촌이 볶아주던 탄 콩 맛. 어릴 적 나를 아명으로 부르던 어머니의 목소리. 네 살 때까지 계셨던 증조할아버지의 긴 수염에서 풍기는 독특한 냄새. 서산 너머로 해가 떨어지고 들판과 개울에서 색깔을 앗아가던 검푸른 빛깔 등등.


눈꺼풀 너머로 스며드는 푸른 박명을 배경으로 여러 장면이 나타나고 사라졌다. 예전으로 돌아갈수록 화질은 점차 열화 되었고 결국 소리와 냄새로만 남았다. 그제야 깨달았다. 이게 주마등이구나. 아니, 요즘으로 치면 주차등走車燈이겠다.






“후.”


머리맡에서 두 번째 알람 진동이 울린다. 1분이 지났구나. 눈을 뜨니 새벽빛으로 푸르스름하게 물든 천장 벽지가 보인다. 곁에 누운 당신은 아직 깨지 않았다. 그 정다운 얼굴에도 푸른 하늘빛이 내려앉아있다. 진동 탓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어깨를 뒤척인다. 저 알람을 껴야 남은 한 시간이라도 편히 잘 텐데.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푸른 천장이 조용히 울렁거린다. 진동 소리가 점점 멀어진다.


“슷.”


덜컥덜컥, 네모난 바퀴가 구르듯 목울대가 들썩인다. 푸른빛 사이로 하얗고 노란빛이 아롱아롱 맺힌다. 오래된 전구처럼 정신이 껌뻑이며 점멸한다. 가랑비에 천천히 젖어가는 등짐처럼 들숨을 밀어 넣는 일이 점점 버거워진다. 코와 눈이 연결된 부근에서 작은 기포가 연달아 터진다.


“스.”


숨을 쉬고 있을 때는 숨을 못 쉬는 것이 괴로운 일이었는데, 숨을 쉬지 않게 되니 그간 숨을 쉬는 일이 이리도 힘든 일이었구나. 늙어도 꽤 건강하고 달리 아픈 곳도 없다 생각했는데, 사람이 몸을 가진 채 열량을 태우고 세포를 만드는 과정은 그 자체만으로 아주 강도 높은 괴로움이었구나. 가만히만 있어도 극심한 고난이었구나. 심장이 멈추고 감각이 옅어지니 이렇게나 자유로울 수가 없다.


보이는 것도, 느껴지는 것도 없지만 소리와 냄새는 여전히 남아있다. 오히려 더 선명한 듯하다. 얼마 후 익숙한 냄새와 함께 막내가 왔다. 첫째도 왔다. 마지막으로 문이 왈칵 열리고 마음 아린 향이 풍긴다. 둘째다.


“어제 못 와서 미안해.”


울지 마라. 나는 이렇게 편안한데 왜 우니.


“어제 왔어야 했는데, 미안해.”


아니다. 네가 미안할 게 무어냐. 그 누가 알았겠니. 그보다 다른 말이 듣고 싶다. 이제 와 잘한 일보다 잘못한 일과 못 해준 것만 생각나는구나. 내가 이제는 밉지 않니? 내가 너에게 좋은 사람이었니? 네 행복의 일부였니? 그렇다면 그동안 나와 함께 행복했다고 해다오. 마지막으로 사랑한다고 말해주렴.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 이제야 누군가를 오롯이 사랑하는 법을, 포기 없이 기대하는 법을, 소유하지 않고 영유하는 법을, 누군가의 전부가 아닌 일부가 되는 법을 깨달았는데. 이제야 사람이 산다는 일이 어떤 것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 것 같은데. 괜한 불안 없이 삶의 희락을 온전히 누릴 수 있게 됐는데. 내내 갈망하다 끝내 조금 얻게 되었지만, 비로소 얻은 것을 맘껏 누리지도 못하고 가는구나.


저 멀리서, 미약한 냄새를 느낀다. 묵은 향이 타는 냄새, 시든 꽃이 천천히 삭아가는 냄새. 내가 즐겨 마시던 커피 냄새. 그리고 막내의 울음이 느껴진다. 둘째의 서러움 소리도. 첫째가 어깨를 들썩이며 짓이기는 슬픔의 무거움도. 향과 소리는 점점 멀어진다.


여긴 어디지. 내가 무얼 하고 있었지. 이곳에 왜 있었더라. 나는 뭐지. 나는… '나'가 뭐지?






푸르게 물든다. 포근하다.






2019. 11. 24.

매거진의 이전글그가 머물던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