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드디어 천개의 글을 완성하였습니다. 섣불리 책을 출간하려고 하기보다는 글을 천개쯤 우선 써보자는 것은 나 자신과의 약속이었지요. 그 약속에 구독자의 숫자는 솔직히 고려 대상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철저히 '나와의 밀약'이었고, 그래서 눈치 안 보고, 내 마음껏, 내 위주의 글을 써보고 싶었지요. 그래서 이것을 개인적으로는 '천 개의 쌉소리'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제목으로는 그래도 '천 개의 빗방울'이라고 좀 더 시적 미화를 시도해 보지요.
연습
천 개의 글을 써보자는 밀약에는 '연습'이라는 의미를 강하게 담고 있었습니다. 과연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좋아서 계속해서 쓸 수 있을까? 어떤 종류의 글을 쓰는 것이 맞을까? 어떤 장르의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가?...
나를 시험하고 연습해 보고 싶었습니다. 여기에는 구독자도 포함됩니다. 내 이야기를 과연 누가 들어줄까? 그것이 나뿐만 아니라 독자에게도 의미 있고 혹 재미도 있을까?...
그런데 보니 '내가 좋아하는 글이꼭 독자가 좋아하는 글은 아닐 수있겠구나'라는 생각과, '내가 독자의 글을 읽고 누르지 않으면 독자도 잘 읽고 누르지 않는구나'라는 현실적인 제약도 깨닫게 되었지요.
글뽕과 글태기
천 개의 글을 쓰면 뭔가 큰 변화가 있을까요? 정말 흔하게 뭐 세상이 달라진 듯한 자랑을 늘어놓곤 하지만 사실 큰 변화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유명 작가가 갑자기 되지도 않고 글로 먹고살게 되지도 않지요. 다만 글의 유전자를 지닌 사람인지라 글쓰기의 '글뽕'에 차오르는 중독 현상을 경험하기도 하고, 엄청난 시간과 두뇌 소모에 쓰는 거 다 귀찮아지는 '글태기'를 맞기도 한다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솔직할 것입니다. 그래서 '나'가 아니라 처음부터구독자 수를 염두에 두고 시작했다면 인스타처럼 상대적 우월감 또는 빈곤감에 글쓰기라는 본래의 '나'에는 집중하지 못할 공산이 크지요. 글쓰기에 많이 도전하는 만큼 수 없이 그만둔 모습을 볼 수 있는 이유입니다.
내밀한 교감
그래도 글을 쓰다 보면 전혀 만날 일 없었던 것 같은 독자님들을 만나게 되는 소소한 기쁨도 있습니다. 그들은 독자일 뿐만 아니라 곧 작가이기도 하지요. 나와는 다른 종류의 글을 쓰기도 하고 다른 배경과 지식을 가지고 있어 놀라기도 하고 부럽기도 합니다. 한편으로 평범하고 한편으로는 특별하기에 그 둘 다가 글쓰기의 소재가 될 수 있지요. 너무 평범하면 재미없고 너무 특별하면 공감이 어렵습니다. 그들과는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아니하고 오직 글을 통해 내밀한 교감과 내공을 가늠하지요. 그것은 좋아요의 개수가 아닙니다. 댓글을 굳이 달지 않는다 해도 쓴 글의 행간을 통해 전해지는 목소리가 가까이 느껴집니다. 심지어는 따뜻할 것 같은 체온까지 말이지요. 저는 댓글을 즐겨하진 않는 편이지만 그래도 그 소소하고 많지 않아 오히려 다행이라고여기며 이 비밀스러운 공모를 즐기지요.
천 개의 빗방울
천 개의 글이라고 해 봤자. 겨우 빗방울 천 개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컵에 받으면 둘이 나누어 먹을 두 잔의 물이나 겨우 나올 수 있으려나요? 그만큼 글은 수도 없이 폭풍처럼 쏟아지고 우리의 글들은 한 줌 빗방울에 불과하지요. 그것은 금방 증발해 버리기도 하고, 땅 속에 스며들어 곧 사라져 버리기도 하는 것이 다반사 일 것입니다. 하지만 큰 강과 바다도 결국 그 빗방울이 모여 이룬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글의 빗방울을 하나하나 모아가지요. 빗방울로 목걸이도 만들고 반지도 만들고 , 빗방울이 마치 진주 구슬이 될 듯 말이지요. 단 몇 방울의 빗방울이라 해도 누군가에게는 단비가 되고, 단 한 모금의 물이라고 해도 목마른 이에게는 생명수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글의 살아있는 생명의 힘을 말이에요.
마중물
마중물을 천 방울쯤 뿌렸으니 이제 좀 더 글을 본격적으로 써 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쌉소리를 이제 그만두고 이만 진지해지겠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계속 재미있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꾸준히 담고 싶지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남몰래 소리치는 스트레스 해소용으로도 좋습니다. 다만 '핸드폰'으로 짬짬이 쓰는 글은 한계가 있더라구요. '노트북'으로 좀 더 길게도 써 볼 생각입니다. 폼만 잡고 더 안 써지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네요. 기대는 안 하지만 막아놨던 '응원'도 풀어놓고 받아 봐야겠고요. 채찍을 굳이 맞아야 할까요? 아니면 당근이 될까요? 이번에는 '밀약'이라 보다는 '공약'에 가깝겠네요. 부담인데요. 잘할 수 있을까요? 안되면 술래 가위바위보!
강으로 바다에
빗방울이 모여서 작은 물줄기라도 이루려면 적어도 십 년은 지나지 않아야 할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작업은 적어도 십 년, 길게는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긴 여정의 일부분입니다. 물론 즐겁게 '나'라는 정체성을 찾아가는 길이지요. 그러므로 이것은 계속 즐거운 일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이제 우리가 함께 재미있게, 그리고 때때로 의미를 담아 갈 수 있는 여정이어야 하지요. 작은 빗방울들 속에 그것들을 함께 찾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모두 오랫동안 포기하지 않고 빗방울 하나하나의 작가로 남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같이 큰 물줄기 이루어 강을 지나 바다에 도착해 보자구요.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