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누룽지차를 마시며

날마다 날씨

by Emile

날씨가 제법 쌀쌀합니다. 주머니 속으로 들어간 손은 나올 줄 모르고 바람은 옷도 몸도 통과하여 불어나가는 듯합니다. 구멍이 뚫린 걸까요? 그 구멍이 옷과 몸에 뚫린 건지 마음에 뚫린 건지는 아직 모르겠지요.


뚫린 구멍을 막기 위해 저녁을 먹어 구멍을 채우고, 그래도 틈새로 바람이 들어오는 것 같아 따뜻한 차로 마저 막아 주기로 합니다. 마감재로는 커피도 티도 아닌 누룽지 차를 골랐습니다.


누룽지는 원래 밥을 할 때 밥솥 아래가 뜨거워서 밥이 눌어붙은 것이었는데 아 이 맛이 오묘했지요. 약간 말려서 그냥 먹어도 별미고 물을 부은 누룽지로 먹어도 꿀맛이었습니다. 같은 밥에서 나온 것인데 현저히 밥과는 다르고, 아래에 눌려 있어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을 뻔한 것이었는데 오히려 위에 있는 멀쩡한 밥보다 더 귀한 대접을 받기도 했지요.


그러다가 전기와 압력 밥솥이 나오면서 더 이상 누룽지도 구경이 어려워졌습니다. 왜냐하면 밥솥이 좋아져서 밥이 더 이상 눌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죠. 분명 기술이 나아진 건데 누룽지를 만들 수 없는 것이 좋아진게 좋아진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더니 누룽지를 아예 일부러 눌려서 따로 팔더라고요. 그리고 티백으로 누룽지차 마저 따로 등장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오늘 밥을 눌리지 않고도 숭늉 비슷한 누룽지차를 마시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뻥 뚫린 구멍을 메울 수 있는 건 밥만으로 안되죠. 거기에는 틈이 많아서 누룽지 같은 것이 반드시 필요하단 말이죠. 그것이 옷과 몸에 뚫린 건지 마음에 뚫린 건지 몰라도 말이지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