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사랑과 자비
최근 어느 정치인이 낸 책이 몇몇 서점 실시간 판매 1위에 올랐다는 기사를 접하며 실소를 터뜨립니다. 분명 중2병에 걸린 편의점 진상손님의 문체였을텐데 어떻게 그런게 가능한가 싶어서지요. 그러고 보면 책은 참 마음이 넓고 따뜻한 것이어서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어떤 이야기든 들어주지요. 심지어 범죄자의 이야기라도, 감옥에서 하는 말이라도, 망상과 거짓말조차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조건 없이 들어주고 이야기해 준다는 점에서 책이야 말로 사랑과 자비의 결정체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해탈의 절정에 오른 따뜻한 책과 달리 까다롭고 시니컬한 독자는 그런 책은 절대 볼일이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책은 오히려 진상손님의 말투라서 더 재미있을 수도 있고 거의 그럴리 없겠지만 저자는 숨은 글쟁이였을 수도 있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사보긴커녕 공짜로 줘도 절대 시간낭비 하는 일은 없을거라 다짐하지요. 예전에는 버릴 책은 냄비 받침으로라도 썼었다지만, 요즘에는 예쁘고 단단한 냄비 받침도 많아 그러한 요망한 책에 신성한 라면 국물조차 흘리지 않겠다고 국물을 후르르 마셔 버립니다. 특히 개인적 취향으로는 표지에 자기 사진을 대문 만하게 실은 나르시즘적 책을 특히 싫어(경멸)하는 편이지요.
더군다나 책은 정말 "자신이 직접 썼을까?"라고 의심부터 들기 시작합니다. 책은 자비롭긴 하지만 불완전하여 꼭 자신이 쓰지 않더라도, 혹은 대략의 방향과 줄거리만 불러줘도 쉽게 이름표를 바꿔 끼고 경기에 참가할 수 있는 불공정성이 존재하지요. 정치인이나 재벌의 책이 대필이 아니라 직접 썼을것이라는게 오히려 의심받을 짓이니까요. 게다가 실시간 판매 1위 조차도 전혀 신뢰가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든지 사재기가 가능한 순진한 책은 너무 쉽게 돈에도 곁을 내어준단 말이에요. 지면을 통하여 여기저기 "OOO에게 X같은 일이?"라고 대놓고 밀어주면 O와 X에 낚여 찌라시 라도 쉽게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수준이니까요.
그래서 하루아침에 실시간 1위 출간작가가 된 그런 중2병 어투 작자를 마주하고 있으려니 글쓰기의 의욕이 꺾이기는커녕 글쓰기 전투력이 급상승하는 것 같지요. 글쎄요 오르는 것이 의욕인지, 혈압인지는 분명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작자에게 그렇게 책만 내지 말고 '브런치(스토리)'에 와서 직접 글을 써서 올리고, 평소에 좋아하는 듯 보이는 브런치 먹는 사진도 올리라고 권하고 싶어지지요. "들어와 들어와" 그러면 정말로 그럴만한 작가인지 글도 읽어보겠다고요.
"앗! 아닙니다, 제안 전면 취소입니다!" 갑자기 댓글팀을 운영했다라고 하는 이력이 떠오르며 허위 구독자와 댓글만 양산하겠다는 걱정이 앞서지요. 그리고 그런 댓글의 수준으로 봤을 땐 이미 어떤 글을 쓸지 짐작이 가기에 브런치에 절대 오면 안되겠습니다! "잘하였습니다" 볼사람만 보는 책으로 그냥 내주어서요. 물론 그 책을 전혀 볼 일은 없겠지만, 브런치에는 절대 때(똥) 묻히지 말고, 빨리 책 내고, 빨리 사라져 줄 것이기에 오히려 감사하지요.
책의 불완전성 정리는 이렇습니다. 그래서 책을 내고, 출간 작가, 하물며 실시간 판매 1위 작가가 되는 것도 역시 불완전하다 할 수 있지요. 그런 책은 오래 지나도 거의 펴보지 않아서 여전히 새책일 것입니다. 그것도 책의 자비함으로 볼 때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위로받겠지만, 빨리 왔다 빨리 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어 보이지요. 그보다는 내용이 단단하여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고, 자꾸 펴봐 겉이 넉넉히 해진 책이 진정한 책이라 할 수 있겠지요.
나이가 들수록 넉넉히 겉은 해졌지만 내용은 단단한 그러한 책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한 책 한권 남길 수 있기를 책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에 기대어 오늘도 말 같지 않은 라면 국물 받침 글을 끄적여 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