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mile Sep 11. 2023

어떻게 아파트는 삶의 목적이 되는가

feat 원베일리

문득 어제는 이렇게 한가하게 책이나 읽고 글이나 쓰고 있을 것이 아니라 아파트를 보러 가아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드디어 갑분 현실을 직시하고 물욕이 오른 것일까요? 그것은 최근 입주가 진행되고 있는 한 아파트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였습니다. "그렇게 비싸고 좋다는데 내 한번 직접 보러가야겠똬!"

차없는 잠수교

새로운 목표를 향해서 가는 길, 차 없는 잠수교에서는 축제를 알리는 간판이며, 줄지어 늘어선 상점, 쿠션에 누워있는 사람들과 인파, 각종 푸드트럭에서 불어오는 음식 내음이 여기는 낭만의 장소라고 손짓하고 있었지만 오늘의 목적은 분명히 그러한 낭만이 아니라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 대신 견고한 에메랄드 성처럼 우뚝 은 저 현실의 고가 아파트를 항해 한낮 더위에도 불구하고 전진하는 중이었지요. "시시한 축제는 너네나 실컷 즐기려무낫!"


한때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대신 아파트를 좀 보러 다니던 때가 있었습니다. 미술품을 보는 것에 안목이 필요한 것처럼 아파트를 보는 것에도 안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었지요. 그러나 미술품을 보는 안목이 생겼지만 미술품은 사지 못한 것처럼 아파트를 보는 안목은 생겼지만 아파트도 쉽게 살 수가 없었습니다. 첫번째로 돈이 없어서 그랬고, 두번째로 너무 높아진 안목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첫번째 이유보다 두번째 이유가 훨씬 컸었지요. 눈이 높다는 것은 항상 문제이긴 합니다. 미술품, 아파트도, 연애.


그러다가 오랜만에 안목에 맞는 핫소스도 안 뿌렸는데 핫해서 불맛이 나는 아파트가 나왔다고 하니 직접 보러가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지요. 미술품과 마찬가지로 아파트도 직접 봐야 가치를 제대로 알아볼 수 있거든요. 그것을 아파트계에서는 임장이라고 하더군요. 아파트 맛집 순례 같은 것입니다. 이왕 간 김에 맛있는지 먹어보고 맛있으면 아예 몇 채  시켜서 와야겠습니다.


그런데 아파트가 무엇이간데 이렇게 삶의 목적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짜증이 밀려옵니다. 삶의 성공의 척도는 역시 아파트였요.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가를 보려면 쓴 글이 아니라 사는 아파트를 보면 됩니다. 대게 훌륭한 사람으로 한 자리씩 하는 사람치고 아파트 투기를 위해 불법 한번 저지르지 아니한 사람이 없고  그래서 근사한 아파트에 살고 있지 아니한 자가 없지요. 무슨 과오가 있던 어떤 깽판을 쳤단 아파트로 다 만회할 수 있습니다. 아파트를 위해서 그랬다는데 무슨 죄가 있겠어요. 아파트가 살아온 삶이고 삶이 아파트지요.


어릴적 꿈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쓸데없이 이것저것 한다고 할것이 아니라 아파트라고 할걸 그랬습니다. 콕 찝어 강남 아파트요라고 했으면 "고놈 참 꿈이 야무지구나!"하고 칭찬을 받았겠지요. 공부는 해서 뭐하겠어요? 아파트가 없으면 헛산 인생인걸요. 친구 이제 보니 "내가 제일 잘나가" 친구는 좋은 대학? 노우! 좋은 직장? 노우! 좋은 아파트를 가진 친구? 예스!이지요. 반대로 아파트를 갖지 못했으면 뭘 했던 인생 꽝인 것이지요. 그런데 가끔 아파트를 물려주신 정말 훌륭하신 부모님을 둔 친구도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아파트 하나 물려줄 훌륭한 부모가 되는 것이 삶의 목표이지요. 이렇게 아파트를 받으면 그동안 어떠한 삶을 살았던 다 만회가 됩니다.

이 짜증은 그래서 아파트가 삶의 목표가 됐어야 했는데 목표를 잘못 정한 것에 대한 푸념인가 봅니다. 절대 더워서 그런 것이 아니었지요.

브릿지가 뚜왁

드디어 목표했던 아파트에 도착했습니다. 예인을 만난 것처럼 오! 눈이 휘둥글해 집니다. 역시 낭만은 잠수교 축제에서가 아니라  아파트 단지에서 찾아야 했던 것이었지요. 이렇게 완벽한 인공식 정원과 연못이 있는 천국이 펼쳐져있는데 잠시 잠수교에 한눈을 판 자신이 한심하게 여겨지지요.


가슴이 웅장해지는 외관에 '래미안' 브랜드가 뚜왁!, 아파트를 가로지르는 '브릿지'가 뚜왁!, 여기가 천국이지요. 이번생은 가기 힘든 천국입니다.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런 천국에 살지 못한단 말입니까? 아파트를 믿지 않은 죄로 지옥에 떨어진 것일까요? 아파트를 삶의 목표로 삼지 않은 죄이지요.


다시 태어난다면 아파트를 가훈으로 걸어놓고 인생의 목표를 아파트로 정하고 아파트에 의한 아파트를 위한 아파트의 삶을 살겠습니다. 애창곡은 "아무리 불러봐도 대답 없는 너의 아파트", 이력서에 전공도 아파트, 취미도 아파트라고 쓰고, 사랑도 아파트 하고 하겠습니다. 왜 그때 아파트만이 세상에서 구원해 줄 유일한 신이라고 알려주지 않고 아파트 보다 못한 거짓신만 잔뜩 알려주었는지 원망스럽습니다. 제 회개해도 갈 수 없는 저 천국 아파트. 돌아오는 길, 아파트 없는 한강변이 그렇게 휑하게 껴집니다. 저기를 싹 밀어버리고 아파트를 좀 더 지으면 천국이 확장될 수 있을텐데 안타깝습니다. 그렇게 아파트가  삶의 목적이 됩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아파트로 구원을 받지 못했으나 이번 생 지옥에 갈 것이 뻔히 보이지요. 그런데 지옥에서는 글이 아파트처럼 그렇게 비싸고 잘 팔린다고 하지요. 지옥에서는 아파트가 없어서 그렇답니다. 아파트가 삶의 목적인데 아파트가 없으니 그것이 곧 지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글을 열심히 쓰는 형벌을 지옥에서 다 하고 나면 다음에는 아파트 천국에 보내주기도 한다더군요. 그날까지 글이 아파트가 되도록 빌며 반성문을 열심히 쓰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글쓰기의 기쁨과 슬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