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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집밖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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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룬 Jul 03. 2024

집순이가 맞아?

intro

  월요일부터 금요일, 평일 중 반드시 집밖으로 나가야 하는 돈 버는 스케줄은 이틀뿐이다.

작정을 한 건 아니지만 평일이라면 약속이 잡히지 않는 한 집에 머물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집밖으로 나갈 일을 만들지 않으려했다.

먹고사는데 필요한 쇼핑과 장보기는 미리 짜 놓은 식단을 바탕으로 온라인으로 해결한다. 동네 반찬가게와 실물 확인이 즐거운 제철 과일을 살 때면 잠시 나가야 하니, 나간 길에 필요한 현금을 찾거나, 꽈배기 집이나 왕만두 한 팩을 사거나 하는 일들까지 한 번에 처리하고, 그 모든 일을 15분 이내로 끝낸다.


물론 그이와 둘이 공원으로 밤 산책도 가고, 입이 심심한 날이면 아이랑 슬렁슬렁 나가 마트를 털어오기도 한다.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인 게 더 좋아, 나 혼자 남기보다는 문을 열고 나선다. 아니 그 일의 경계를 의식하지도 않는 것 같다. 그럼 집이 좋아 죽겠는 진짜 집순이는 아닌가? 어떻게든 집에서 버티려는 것도, 집이 좋아 죽겠는 것도 아니라면 나는 왜 이렇게나 길게 집에 머무는 걸까.


  내가 머무는 집을 내 마음에 드는 상태로 유지하려면 실은 꽤 바쁘다. 실내 슬리퍼가 두 달이면 너덜너덜해지는 일상을 꾸리느라. 혼자 작업하는 일을 하다보니 소소한 짐들을  꾸려 이고 지고 나가는 것보다 책상에 펼치고 앉는 편이 수월하고. 세 식구 중 둘이 나가고 나면 혼자 차지한 집의 고요는 대단하다. 벽마다 묻어있는 일상의 고난에 압도되는 날도 있지만, 오전 정리를 마치고 책상에 앉았을 때 등 뒤를 감싸는 안온함에 길들여진 것도 사실이다. 외출을 하려면 선크림부터 시작해 하나하나 얹어가야 하는 일이, 무엇을 입고 들고 신을지 고민하는 과정이, 귀가했을 때 어지러운 집에 들어오기 싫어 외출 전이면 강도 높은 정돈을 해야하는 것이 귀찮기도 했다.  

  밖에 나가 재미있게 놀아도 돌아오는 길이면 팔이 바닥에 끌릴 정도로 기가 빠졌다. 실내의 경계를 넘어가면 눈부신 자외선 때문에 정신이 다 몽롱해졌고. 사람 많은 곳으로 가면 안 봐도 상관없는 무례한 사람 한 둘을 마주치게 되는 데, 그럴 때마다 나의 인내심의 한계를 자꾸 시험하게 되니 괴로웠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외출만 하면 결제하고 받아 든 영수증을 제대로 안 볼 정도로 지출이 쉬워지는 바람에……  


  사소하지만 익숙해져 버린 이유들과 대단할 것 없지만 내려놓을 수 없는 사정들로 어지간해서는 집에 머물렀다. ‘집이 세상에서 최고’까지는 아니고, 손해를 최소화하고 에너지를 보존을 최대로 하고 싶은 타협형 집순이가 아니었을까, 나는?!


  물음표가 생긴 건, 일단 집밖으로 나가기면 하면 스물스물 신이 났기 때문이다.

낯선 장소에선 평소에 않던 생각들이 가볍게 반짝 떠오르고, 새로운 공간의 환대가 착각인가 싶을만큼 온몸 구석구석으로 스며들었다.

흔한 일이 아니니 한정적 경험을 누리려 세포들이 다 깨어난지도 모르겠으나, 외출의 단점이 사라진 것도 분위기를 바꾸겠다고 애를 쓰는 는 것도 아닌데 일단나가면 나쁘지 않았다. 점점 강해지는 자외선에 (기후 위기 걱정입니다) 눈이 부셔 이마에 주름이 짙어지는 중에도, 선글라스 뒤에서 진상들을 째려보는 중에도, 현관을 나서며 작동시킨 로봇 청소기의 작업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중에도, 집 밖으로 나선 나는 들뜬 사람이 되곤 했다. 묻어두었던, 묵혀두었던 내가 튀어나오고, 오히려 나 자신을 낯설게 느끼면서.

  물론 즐겁고 유쾌한 곳으로만 가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내 발이 멈춘 곳에 걱정과 불안, 불쾌가 차고 넘치기도 했으니까. 반복될까 봐 두렵기도 하다. 두려움은 원인을 찾을 틈도 주지 않고 달려들어 꼼짝 못 하게 만드니 만만치가 않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낯선 나를 포착하게 되는 순간이 반가웠으므로, 찰나에 느껴진 새로운 기분을 그대로 떼어다 익숙한 나의 모습 위로 포개두자니 꽤 흐뭇했으므로, 이 순간들을 흘러가는 시간 속에 풀어두었다가는 둔감해져버릴 것 같아서.


안전하게 나를 지켜주던 집, 밖으로 나가본다.

보고 듣고 느끼기를 고스란히 있는 그대로 하기로.  

안으로만 머물던 시선이 밖을 향하길 기대하며, 무언가를 버리고 피하지 않고도 있는 그대로를 경험하기를 소망한다.

지금까지와는 좀 달라도 괜찮을 순간들이 두려움을 달래줄 거라 믿으며, 용감하게.


일단 시원한 주스 한 잔 마시고,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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