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라는 주어진 시간을 후회 없이 사는 법 (1화)
내 나이 마흔이 넘어서야 처음으로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고민했다.
머리도 나쁘지, 할 줄 아는 건 없지, 그렇다고 누구처럼 똑 부러지게 말을 잘하는 것도 아니지, 유행을 좇고 싶지만 다리가 두꺼워 스키니진도 어울리지 않는다. 다행인 건 요즘은 스키니진이 아니라 '힙'한게 유행이 아닌가. 마음 가는 대로 통바지도 입고, 중간 바지나 운동복을 입어도 되니 지금과 같은 시대에 스타일을 고민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다.
내가 굳이 나이를 언급한 이유는, 늦기 전에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며, 좋아하는 일에 얼마큼 열정을 다하며 살아갈 수 있느냐는 문제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어릴 땐 몰랐는데, 나이를 먹어보니 시간이라는 게 번개처럼 빨라서 하지 못 한 것들에 대한 후회가 목에 낀 가시처럼 따갑게 느껴졌다.
15년 전, 직장을 다니며 제빵 공부를 하기 위해 야간 학원을 등록한 적이 있었다. 막연히 빵을 좋아해서 시작했던 배움이었지만, 당시 수강생들과 쉽게 친해지지 못해 분위기가 어색하다는 이유로 중도포기 했다. 두 번의 수업에 만들어 본 거라곤 레시피조차 떠오르지 않는 식빵과 피자빵이 전부였다.
결혼 후 어렵사리 쌍둥이를 출산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직장에 복귀했다. 어쩐지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며 불현듯 찾아오는 번아웃이 자신을 괴롭혔다. 상처받은 마음을 아랑곳하지 않고 더 깊은 상처를 주는 사람들.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아 힘들어하는 걸 뻔히 알면서도 이것도 못하냐며 타박하는 상사를 앞에 두고, 참고 참았던 눈물이 급기야 빵! 터지고 말았다. 남들처럼 잘 해내고 싶은데 바람처럼 잘 되지 않는 업무들, 내색할 수 없는 인간관계가 자신을 괴롭혔다.
어떤 이유로 번아웃이 왔고, 누구의 말 한마디 때문에 직장생활이 어렵다고 해봤자 내게 돌아오는 건, '직장생활이란 게 다 그런 거잖아, 참고 다닐 줄도 알아야지, 마음이 약해서 무슨 일을 하겠어?'였다. 나는 누구보다 연약한 사람이다. 연약하게 생긴 게 아니라 마음이 모래알처럼 쉽게 부서지는 사람이었다.
과감히 휴직을 결정했다. 두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돌봐 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그럴듯한 명분이었다. 어린이집을 다닐 때도 아이들은 2살부터 시작해 7살까지, 아침 7시에 일어나 7시 30분에 늘 1등으로 등원했다. 주위에서는 아이가 더 어릴 때도 잘 견뎠는데, 이제 다 컸는데 무슨 걱정이냐고 들 한다.
육아휴직. 순전히 아이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결국 나를 위한 결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니 직장생활을 하며 가장 잘한 건, 꼼꼼한 일처리나 거대한 성과가 아니었다. 바쁜 삶 속에서도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고민하고 탐색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는 것. 누군가에게는 별 볼 일 없는 노트나, 만년필, 예쁜 펜 같은 게 대수냐고 할 때, 나는 주변사람들과 달랐다. 소소한 물건들이 주는 기쁨이나 행복을 뒤늦게 발견한 나는 좋다고 하는 필사노트나 펜을 골라 온라인 장바구니에 넣을 때 행복감을 느꼈다. 구입한 노트는 책 내용을 필사하게 했고, 투박하게 생긴 노트북은 생각을 옮기게 했으며, 예쁜 펜들은 자주 쓰고 싶게 만들었다. 이때 처음으로 내게도 근사한 책상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당시 책상이 없어서 밥을 먹는 식탁이 서재를 대신했다. 덕분에 식탁에 조잡한 물건이 올라가지 않게 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밥을 먹고 나면 제일 먼저 식탁을 반짝반짝 빛나게 닦았다. 마치 버스기사가 운행 전 승객을 위해 자신의 버스를 쓸고 닦는 것처럼 나의 식탁사랑은 유난스러웠다.
나는 지금,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삶을 살고 있다. (아니, 여전히 탐색 중이다.)
비록 이들은 단단한 물건에 불과하지만, 때로는 내 손길을 거칠 때 온기를 받아 숨을 쉬는 것 같았다. 여성들이 갖고 싶어 하는 흔한 명품가방이나 신발보다 더 부러운 것이 있다면,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그것에 대한 쓸모를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이 노트는 어떤 용도로 사용하고, 이 펜은 어떨 때 쓰면 좋고, 심지어 이사를 한 후 공간에 맞는 책상을 고르는 데도 몇 날 며칠을 고민할 때 살아있음을 느꼈다.
세상 사는 게 얼마나 힘든데 '베짱이'같은 삶을 살면서도 좋아하는 걸 운운하며, 배부른 소리 한다고 할 수 있겠다. 휴직 중이면서, 좋아하는 것을 탐구하는 삶은 결코 부지런한 개미가 될 수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탐구 끝에 15년 전에 시도하려 했던 제빵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있다. 20대 사회초년생들로 가득했던 학원에서 둔한 손놀림과 느린 이해력으로 애를 먹기도 했지만, 나는 나만의 빵을 만들기 위한 여정을 선택했다. 덕분에 2025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날에 제빵기능사 시험에 당당히 합격했다. 아이러니한 건 시험에 합격하면 길이 보일 줄 알았는데, 실력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래도 내가 좋아했던 빵에 대해 한 걸음 걸어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고, 힘이 된다.
나는 좋아하는 것들이 참 많다. 이미 언급했지만, 나는 문방구 사장님이라 할 정도로 문구나 기록에도 관심이 많다. 그런 소소한 애정템이나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어서 이렇게 긴 이야기를 했나 보다. 나처럼 마흔이 넘은 사람들, 아니면 자신보다 어린 사람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한 번쯤은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 부적처럼 떡 하고 내놓으면 쉽게 기분이 좋아지는 것들에 관심을 갖는다면, 찾아오는 번아웃에 당당히 맞설 힘이 되어줄 것이다.
나 역시 처음부터 기록에 관심이 있던 건 아니었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글쓰기 모임에 합류하게 되었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소소한 기록을 하는 고상한 취미가 생겼다. 만일 이런 일이 없었더라면 매번 찾아오는 번아웃에 휘둘려 눈물 콧물 흘리며 징징대는 어린아이 같은 삶을 살았을 것이다. 다행히 그런 순간은 오지 않았다.
내 나이 마흔이 넘는다는 건, 건강히 살아있음에 대한 감사와 회복이다. 감사할 줄 알고, 상처에 스스로 회복할 줄 아는 능력, 이것은 내 삶에 꼭 필요한 처방전이 틀림없다. 의사 선생님, 처방 약사, 약을 복용하는 사람 모두 자신이며, 회복하는 능력 이 모든 게 자신에게 달려있다.
나는 어린아이 같은 마음과 눈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탐구해 보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들이 당신에게도 좋은 거라면 더없이 좋겠다."
한 문장에 '좋다'가 세 번 들어가는 문장을 쓰고 나니 자신이 대단한 사람처럼 보인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잘 해낼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든다.
*글밥 김선영 작가, 글벗들과 함께 1월 - 주 3회 글 발행하기에 참여중입니다.
매주, 월, 수, 금요일에, 수요일은 제2화, 내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인 '필사'로 찾아옵니다.
필사에 관심 있는 분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