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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똥 May 16. 2021

세 번 연속 퇴짜! 이 남자 장가갈 수 있을까?

매력이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업무시간마다 하라는 일은 안 하고 휴대폰만 열심히 보는 남자가 있다. 남자는 삼십 대 후반, 작고 통통한 체격의 노총각이다. 남자 파티션 하나를 가운데 두고 앞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다. 오늘은 어쩐 일인지  출근 시간이 지났는데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늦잠이라도 자나?' 혹시 몰라 살짝 목을 뺀 채  자리를 들여다보니 파티션 아래에서 휴대폰 놀이를 하고 있었다. 때론 유튜브 영상을 보느라 분주할 때도 많았다. '그럼 그렇지!'


남자 자리에 업무용 전화가 울린다. 남자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뻔뻔한 어투로 이야기한다. "하도 전화가 와서 제가 쉬지도 못하고 일하고 있어요. 집에 가면 화장실에 앉아있는데도 전화가 오고, 회사 오면 쉴 틈도 없어요. 허허허. 왜 이리 찾는 사람이 많은지 원." 가끔 남자가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할 때마다 의문이 생긴다. '예상했던 대로 모태솔로였을까? 매력이 없어도 저렇게 없을 수가.' 거짓말을 능청스럽게 하는 걸 보며 혀를 찰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몇 년 전 출산휴가를 가기 위해, 업무를 대체할 후임을 채용했다. 대학을 갓 졸업한 이십 대 중반의 여성, 청춘이 무르익어가고 있는 얼굴이 뽀얗던 아가씨였다. 얼굴만큼이나 업무를 습득하는 능력도 다른 사람보다 빨랐기 때문에 안심하고 출산휴가를 떠날 수 있었다. 듣기론 후임은 회사를 다닌 지 몇 개월 만에 남자에게 고백을 받았다. 예쁘고 참한 아가씨를 잘 알아보는 안목은 있던 그다. 하지만 당시 사귀던 남자 친구가 있 후임이었고 설사 없더라도 이 남자는 여자의 취향 아니었을 것이다. 안목 없는 내가 봐도 '너흰 제법 안 어울려요'였다.


후임은 내가 회사로 복귀하기도 전에 사정상 퇴사를 하게 됐다. 첫 후임이 퇴사를 하고 3개월 동안 두 명의 여직원이 입사를 했다. 업무 난이도가 참을성 없는 사람에게는 자리잡기가 힘든 직종이었다. 두 번째 후임은 얼굴은 보질 못했으나 깡마르고 애교가 많다고 들었는데, 예상대로 두 번째 후임에게도 고백을 했지만 또다시 퇴짜! 마지막 후임은 조용하고 여성스러운 편이었는데, 퇴사 마지막 날 선물까지 줄 정도로 남자에게는 마지막 총알과도 같았다. 애석하게도 세 번째 여직원 역시 남자에게 노노! 를 외치며 퇴사를 했다.


결국 남자는 세 명의 여자에게 보기 좋게 퇴짜를 맞았다. 퇴짜를 맞은 건 여성들 취향 문제이니 어쩔 수 없다 치자! 적어도 많은 여성들이 나를 싫다고 한 이유가 무엇인지는 고민해 볼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노력이라고는 최소한의 고백밖에 하지 않는 이 남자! 결혼 한 내가 봐도 매력 꽝이다! 사실 내가 업무 복귀를 덕분에 여자 만날 기회를 모두 상실했다고 했을 그를 떠올리면 미안한 마음이 긴 하지만.


남자는 몇 달 전부터 업무가 늘었다고 두 명의 여직원을 채용해 달라고 본부에 요청을 했다. 사실 오전에는 전화업무가 늘긴 했다. 직장생활을 하며 업무가 늘어도 '팔자려니'생각하며 일을 했던 내가 '바보 멍청이'였다. 인원 보충으로 인해 본부에서는 담당별로 업무 분장표를 작성하여 제출하라고 했다. 예상대로 남자 업무 분장표는 과간이었다. 소변보러 갈 시간도 없이 일을 해야만 가능할 것 같던 업무들로 빼곡히 채워졌으니까! 마치 어릴 때 방학을 맞아 '시간계획표'를 짜던 때가 떠올랐다. 밥 먹는 시간도 없이 무리한 계획을 세웠던 것처럼 남자의 업무는 현실과 동떨어진 게 많았다. 본부는 두 명은 무리 수고 한 사람만 채용해 준다는 회신을 줬다. 남자는 내심 참한 아가씨가 입사하길 원했을 것이다. 어설픈 고백 생략하고, 업무를 통해 자연스러운 만남을 희망했을 테니까. 하지만 회사 채용담당자는 애가 셋이나 되는 여성을 보란 듯이 채용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사이다! 를 외쳤다!


오늘도 남자의 행동을 가끔씩 들여다본다. 역시! 아침부터 고개를 숙인 채 휴대폰 삼매경에 빠져서 여유로운 일과를 시작하고 있다. 남자의 모든 일을 신입 여직원이 대신하고 있었고, 전화가 울려도 모든 업무는 여직원 몫이다. 휴대폰을 하는 게 지겨울 때는 나가면 30분 후에 자리로 들어온다. 점심을 먹은 뒤에는 무려 2시간 이상 자리를 비우는데, 사무실에 들어오는 그의 얼굴부스스한 걸 보니 하루에 한 번은 꼭 낮잠을 자는 것 같다.


남들에게 피해 주기 싫어서 휴일 근무도 마다하고 출근하는 나는, 남자에 비하면 성실한 회사 생활을 하고 있는 편이다. 아이들이 있지만 한 달에 한 번 쉬는 것조차 쉽지 않다. 쉬는 날이면, 누군가는 업무를 대체해줘야 하는 상황이라 피해를 주고 싶지 않은 이유다. 가끔은 사람인지라 때론 남자처럼 멈추며 살고 싶을 때가 있다. 모든 일 내려놓고 편하게 일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딨겠는가. 하지만 나는 두 아이의 엄마이고, 부모님의 셋째 딸이다. 내가 갖고 있는 삶의 무게가 남자보다는 크단 의미다. 설렁설렁, 대충대충 하루를 때우고 집으로 향하기엔 남은 삶이 짧다. 살고 있는 매 순간이 소중한데, 어찌 오늘을 대충 살아갈 수 있을까?


오늘도 어김없이 나의 근질근질 오지랖이 발동한다.

'너란 남자, 마흔 전에 장가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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