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도 숨기는 매향리 숨겨진 비밀

이 사실을 꼭 알려드리고 싶어요

by 보리똥

매화꽃 피는 봄이 찾아오면, 매향리는 매화향으로 가득하다. 어느새 벌과 나비는 활짝 핀 꽃을 찾아와 인사한다. 봄 햇살이 뜨거워질수록 벌과 나비가 분주하게 일 한 덕분일까. 올해 열린 매실은 유난히 단단하고 실했다.


매향리는 임해 마을이다. 원래 고온포라 했는데, 전설에 의하면 옛날 서원과 구장이라는 두 문장가가 마을 이름을 지을 때 서원은 매(梅매화나무 매) 자를, 구장은 향(香향기 향) 자를 짚어서 매향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이곳에서 사격 연습이 시작된 것은 6.25 전쟁이 한창인 1951년으로, 이후 50년간 주한미군의 공군 폭격 훈련장으로 이용되어 왔다. 매향리 인근 구비 섬에 조성된 사격장은 총 728만 평이다.

사격은 보통 로켓포, 기관포, 기총, 레이저포 사격이 실시되는데,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연간 약 250일에 걸쳐 실시한다. 일일 평균 11.5 시간 동안 15~30분 간격으로 행해지며, 사격 횟수만도 1일 600회를 넘는다.

뿐만 아니라 야간에도 훈련이 실시되기 때문에 주민들은 그동안 훈련이 없는 주말에만 사격장 농지에서 농사를 짓거나 바다에 나가 일을 해왔다.


이 사격장이 건립된 이후 피해를 입은 주민만 713가구 4천여 명에 달하는데, 그동안 오폭 사고와 불발탄 폭발로 인해 사망자만 12명, 손목 절단 및 옆구리 부상 등 오폭으로 인해 중상, 부상을 당했다. 그밖에 소음과 폭발 여파 등으로 인한 주택 파괴, 소음에 따른 난청 현상, 대규모 환경 및 연안어장 파괴 등 경제적 어려움은 물론이었다.

그러다 지역 주민 14명이 미군 사격장의 폭격 소음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서울지방법원이 2001년 4월 11일, 국가는 원고들에게 배상 판결을 내렸고, 20년 동안 진행된 사격장 철폐운동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




사격이 있는 날이면 사격장 문 앞에는 빨간색 깃발이 걸리며 철장 문은 굳게 닫힌다. 사격장 주변 둘레에는 철로 만든 담장이 있었고, 담장 위로는 뽀죡한 철사들을 엮어 놓았다. 철장 문이 닫혀있을 때는 아무도 이곳을 침범할 수 없었다. 설령 누군가 몰래 담장 너머로 들어갔다 하더라도 비행기들이 불빛을 반짝이며 언제 폭탄을 쏠지 모르는 상황이라 개구멍이라도 있다면 나오고 싶었을 것이다. 빨간색 깃발은 그런 의미였다. 너희들 고향이지만, 이곳은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명령을 따라야 하는 곳이었다.


사격장 규모는 어마어마했다. 작은 매향리 마을 중 절반 이상을 차지했을 정도로 큰 땅이었다. 처음 사격장이 들어설 때 마을 사람들은 갖고 있던 땅을 국가에게 강제로 뺏길 수밖에 없었다. 당시 매향리 땅값은 500~600원이었다. 하지만 미 공군은 반값도 안 되는 180~230원에 땅을 징발했다.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다. 국가가 국방용 도로 땅을 사용하겠다는데, 말을 듣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던 시절 말이다. 그렇게 오래전 할머니는 농사짓던 땅을 빼앗겼고, 대신 국가는 사격을 하지 않을 때는 농사를 허용했다. 땅이 없던 사람들까지도 국가 소유 땅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다.

빨간 깃발이 내리고 파란 깃발이 펄럭였다. 사격이 끝났으니 출입을 허용한다는 의미였다. 굳게 닫혔던 철문이 열리면 마을 사람들은 기다리기라도 한 듯 너도나도 호미와 삽을 들고 사격 장안으로 들어갔다. 사격장은 언제 비행기가 날아다녔냐는 듯 고요했다. 우리 밭에 열린 손바닥만 한 들깻잎은 반질반질 윤기가 흘렀고, 고추는 붉게 물들었다. 고추를 따다 보면 어느새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고, 햇볕을 가리려고 쓰고 온 모자는 더워서 벗어던진 지 오래다. 가지고 온 잿빛 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바람이라도 불어오면 좋으련만 야속하게도 바람 한 점 없는 8월 중 가장 무더운 날이었다.


우리 아버지는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인 14명 중 한 명이었다. 몇십 년 동안 동네일을 꾸준히 했고, 누구보다 정직하게 일했던 사람이기도 했다. 동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아버지를 찾아왔고, 면사무소에서 서류가 필요한 일이면 적극 나서서 도와줬다. 나는 그런 아버지가 자랑스러웠다.



시간이 흘러 드디어 미군이 떠나고 평화를 되찾은 매향리. 예상대로 사격장 부지는 평화공원이 조성되고, 주변에는 국내에 내로라하는 리틀야구장이 개설되었다. 넓은 땅이 나름 의미 있게 사용되는 걸 보며 주민들은 기뻐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평화공원이 들어온들, 리틀야구장이 멋지게 들어온들 마을 주민들의 생활수준은 그것으로 인해 나아지질 않았다. 빨간 깃발만 내걸지 않았을 뿐, 바닷가에 나가서 굴과 바지락을 채취했고, 겨우 입에 풀칠하며 먹고 살 정도였다. 그나마 사격장 안에 짓고 있던 논과 밭도 평화공원 개발 이유로 강제로 빼앗겨 농사를 짓는 주민도 몇 되지 않았다.


나라는 개발범위에 벗어나 있는 사격장 일부 땅을 공개 입찰했다. 주민 우선권을 주면 좋으련만, 돈 많은 국내에 있는 부자들은 너도나도 매향리 땅을 사들였다. 180원에 판 땅인데 돈이 없어서 내 땅을 되찾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아버지는 이미 몇십 년 전부터 그 땅에 논농사를 짓고 계셨다. 그 땅을 돈 많은 공무원이 자신의 부모를 사주기 위해 아버지가 짓던 땅을 매입했다. 아버지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땅을 빼앗기고 싶지 않은 마음에 화성시에 민원을 제기했다. "농사를 짓고 있는 사람을 우선권으로 줘야지, 어떻게 돈 많은 사람을 위해 나라가 주민 땅을 빼앗을 수 있느냐. 이건 가슴에 두 번이나 못질을 하는 겪이다"라고 말했다. 가만히 보면 나라도 장사꾼이나 다름없었다.

수 십 년 피해를 본 주민들이야 어떻든 불필요한 땅을 높은 가격에 팔아서 이윤을 챙기는 장사꾼 말이다.


얼핏 보면 사람들은 매향리에 평화가 찾아왔다고 하지만, 주민들은 그렇지 않았다. 과거와 다를 바 없는 경제적 수준과 하다못해 평화공원에서 풀을 뽑는 일을 하는 할머니들조차 타지 사람을 고용했다. 참 아이러니하고 요지경이라고 밖에 할 수밖에 없겠다.


현재 사격장에는 빨간 깃발은 없어진 지 오래다. 그곳에는 넓고 넓은 잔디밭 벌판과 잘 가꾼 나무와 꽃들, 화려한 건물과 잔잔히 흐르는 연못이 있는 아름다운 곳으로 변모해 있는 평화생태공원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주민들 마음은 여전히 빨간색이다. 뾰족한 철장은 없지만 마음 편하게 다가갈 수 없는 이곳, 매향리. 평화롭게 공원에 앉아 바닷가를 보는 일은 손에 꼽힐 정도.

이런 가련한 사람들의 마음을 매화 열매가 알까. 매향리는 아직도 고요한 전쟁터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