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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엄마와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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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똥 Aug 14. 2022

바지락 부침개가 그리울 때

부침개가 익어가는 소리

비가 내린다. 이런 날이면 어김없이 기름 냄새로 코끝을 적시는 부침개가 그리워진다.

치킨, 햄버거, 피자 등 손가락 하나 까딱하면 집으로 배달되는 편하고 맛있는 음식도 많은데, 왜 하필 부침개가 그리운 걸까. 이유를 고민해보았다. 부침개 반죽이 프라이팬에 둘러진 기름을 만나면 - + 극이 만난 것처럼,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을 만난 것처럼, 차가운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가 마치 비 내리는 소리와 닮았다. 소리에 민감한 우리들은 비 내리는 소리와 부침개가 익어가는 소리가 비슷하기 때문에  이런 날이면 부침개를 그리워하는지도 모르겠다.  


자, 비도 내리고, 부침개를 만들고 싶다면,  시골표 부침개를 소개한다.

내가 태어난 시골은 농촌과 어촌이 공존하는 곳이다. 시골 부모님은 벼농사와 어업 두 가지를 하시는데, 지금 바다에서는 한창 바지락을 채하는 시기다. 바지락은 시기에 따라 살이 통통하게 오를 때도 있고, 삐쩍 마를 때도 있다.


지금은 너무 통통하지도 그렇다고 마르지도 않은 중간단계이다. 엄마는 바지락을 채취하여 중간상인에게 판매를 하는데, 그중 킬로수에 미달하는 바지락은 집으로 가져온다. 보통 가져온 바지락은 작은 칼로 껍질을 까서 젓갈을 만들기도 하고, 반찬으로 먹기도 한다. 바지락 젓갈은 숙성될수록 맛있긴 하나, 갓 담근 젓갈도 맛이 참 좋다. 젓갈에는 풋고추를 잘게 잘라 고춧가루와 함께 버무려주면 고추에 알싸한 맛이 흰쌀밥과 궁합이 맞는다.


 엄마는 미리 전화로 깐 바지락을 준비할 테니 부침개를 해 먹자고 했다.  시골집에 가니 엄마는 부지런히 바지락 껍데기를 까고 있었다. 나는 부침개에 넣을 생오징어를 사 갔다. 배도 고프니 빨리 부침개를 만들어보자.

준비물

생바지락, 오징어 두 마리, 부추, 홍고추, 후추, 부침가루 (부침가루에 간이 되어있다)

생바지락은 대여섯 번 흐르는 물에 씻어주고, 오징어도 얇게 채를 냈다. 부추도 아이들이 먹기 좋게 작은 사이즈로 썰었으며, 홍고추도 반개만 넣었다. 부침가루는 간이 되어 있어서 굳이 간을 하지 않고 후추만 조금 넣어줬다. 생수는 적당히 묽은 느낌이 날정도로 넣어주면 되는데, 밀가루가 국자에서  흐르는 느낌이면 적당한 것 같다.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팬이 달궈지면 부침개 반죽을 살살 얇게 펴준다. 역시 예상한 대로 반죽이 기름을 만나자 비 내리는 소리를 냈다. 10분 후에는 기다렸다는 듯 비가 더 거칠게 쏟아졌다. 가스레인지 옆에 작은 창이 있는데 창밖에서 들리는 소리는 누가 진짜 비인지  분간하는 게 어려웠다. 촤아악, 치이익, 촤아아. 부침개가 내는 소리가 진짜 빗소릴까. 창밖의 빗소리가 부침개 소리일까.


하얗기만 했던 부침개 반죽이 기름을 만나 노르스름하게 익어갔다. 노랗게 익은 부분을 잘라한 입 넣어보면, 오이처럼 아삭아삭 고소한 맛을 내는 소리가 난다. 입안에 감도는 바다내음은  저 멀리서 파도를 데려오는 것만 같았다. 바닷가 한가운데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먹는 것만 같았다. 부침개가 조금 더 노릇하게 익어갈 때 손에 쥐고 있는 뒤집개로 온 몸을 뒤집어 줄 차례다. 첫 타이밍이 가장 중요하다. 지금 제대로 뒤집지 못하면 부침개는 반쪽나 버린다. 부침개가 온전한 형태 그대로 동그랗게 뒤집기 위한 작전이 시작된다. 뒤집개와 숟가락까지 대동하여 위아래를 잡고 살살 뒤집어준다. 앗싸 성공이다. 부침개가 찢기지 않고 모양대로 동그랗게 뒤집어졌다.

예쁜 모양 부침개를 하얀 구름 접시에 담았다. 우리 가족은 부침개 한 조각으로 젓가락 싸움을 벌인다. 부침개는 갈기갈기 찢겨 언제 접시에 담겼냐는 듯 금방 사라졌다. 부침개가 사라지기 무섭게 프라이팬에는 다른 부침개가 익어가고 있었다. 촤아아, 지글지글, 아마도 비는 부침개가 다 익어 갈때쯤음 그치리라 믿는다.


시골집에 내리는 비는 13층 아파트에서 바라볼때와는 또 다른 감성이다. 비 내리는 날마다 마당 바닥에는 흙과 비가 만나 더욱 구중중한 느낌이지지만,그런 날 먹는 부침개 한 조각은 질척한 마음을 건조한다. 한 주도 이만큼 살았으면 잘 살아왔다고, 극성맞은 아이들과 지지고 볶고 힘들었지만 이것 또한 행복이라고, 내 손길을 기다리는 직장에서는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일했노라고.. 이만하면  잘 하고 있는 거라고.


비는 살짝 대지와 꽃을 적시고, 아픈 마음을 씻긴 떠날 비의 존재가 귀해진다.  다가 올 한 주는 그만 비가 그쳐 누군가에게 아픔을 주는 일이 없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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