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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엄마와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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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똥 Jul 31. 2022

진짜 옥수수는 '도깨비  방망이 옥수수'

옥수수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여름 한복판,  옥수수가 익어가는 계절이 찾아왔다.

옥수수는 제 몸에 수많은 씨앗을 품기까지 다양한 성장 과정을 거쳐야 한다. 봄이 되면 땅속에 씨앗을 묻고, 비와 햇볕을 받고, 곡식을 탐하는 새들을 피해야만 싹을 틔울 수 있다. 엄마는 작년 한 해 보관해 놓은 옥수수씨를 땅 속에 심었지만, 배고픈 새들의 공격을 피할 수 없었다. 씨앗을 심기만 하면 새들은 어떻게 알고 찾아와 옥수수만 쏙쏙 빼먹었다. 옥수수 몇 백개를 심었지만 듬성듬성 대머리 독수리가 된 것처럼 싹은 몇 포기되지 않았다. 딸 네 명에게 각자 수확한 옥수수를 나눠주기엔 턱 없이 부족한 양이다. 봄이 지나기 전에 시내에 나가서 옥수수 모종 몇십 개를 사 왔다. 이미 손가락만큼 자라 있는 모종은 밭에 심기만 하면 금방 자란다.

넓은 밭에는 옥수수만 자라는 게 아니다. 밭 절반을 점령하고 있는 식물은 고추와 오이, 참외, 들깨, 참깨다.

옥수수와는 달리 고추는 수확해서 고춧가루를 내어 판매를 하면 돈이 되는 식물이다. 들깨, 참깨는 한 해 동안 식구들이 고소한 기름을 맛보게 해주는 일등공신이므로 밭에서는 없어서 안 될 주인공이다. 엄마는 가끔 참외를 심는데 해마다 참외 맛이 오이가 돼버렸다. 아무 단 맛도 없이 오이처럼 아삭거리기만 한다고 하여  이름 앞에 오이를 붙여 '오이 참외'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올해도 참외는 맛이 오이처럼 맹숭맹숭했다. 그래도 맛을 보기 전까지는 거친 밭에서 보기 힘든 노란 빛깔 고운 비단옷을 입은 아이같이 동글동글 귀여운 모습이다.

참외는 지친 밭일 도중 출출할 때 껍질째로 한 입 베어 먹으면 입안에서는 시원한 참외 비가 내린다. 오이 참외라도 참외는 참외다. 여름 해가 뜨거울수록 더욱 노랗게 변하는 참외는 여름 과일 중 으뜸이다.


밭에는 다양한 식물들이 자라기 때문에 몇 시간을 꼬박 이야기해도 모자라다. 그만큼 밭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조용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빠르게 성장해 가는 모습은 인간의 삶과 다를 바 없었다. 새싹은 인간의 어린 시절이고, 꽃은 청춘이고, 열매는 중년, 씨앗은 노년을 의미하지 않을까. 인간은 죽은 다음 세상이 존재하지 않을 거라 믿지만, 식물의 씨앗은 그렇지 않다. 씨앗 한 알은 다음 해를, 또 그다음 해에 태어날 것을 약속한다. 삶도 그렇다. 노년은 다시 태어남이다. 그러니 지금 이 시간을 어찌 허투루 보낼 수 있을까. 하물며 씨앗 한 알도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는데 지혜로운 인간이 삶을 포기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생각하며 글 쓰고 일련의 활동들이 모여 단단한 씨앗이 되리라 믿는다. 만일 씨앗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좋아하는 옥수수도 맛보지 못했을 것이고, 매운 고추맛도 먹지 못했으리라. 그러니 삶 중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꼽으라면 노년이라 생각한다. 또한 인간의 년은 가장 지혜로움이 충만한 시기이기도 하다.

여름 날씨가 하도 뜨거워 올해 옥수수는 꽤 잘 영글었다. 알록달록 실한 옥수수를 처음 수확한 날.

저마다 크기나 생김도 제각각이지만 게 중에 눈에 띄는 옥수수가 있었다. 이름하여 '도깨비방망이'라는 옥수수다. 일반적인으로 생긴 옥수수에 비해 알은 크지만 개수가 적어서 생김새가 달라서 붙인 별명이다. 아이들은 도깨비방망이 옥수수를 좋아한다. 몇 알베어 먹지 않아도 뚝딱 먹어 해치우는 옥수수는 인기가 좋다.


옥수수는 냄비에서 익어갈 때 알맹이 색깔은 더 짙어진다. 이후 콧속에서 맴도는 옥수 수향은 내가 좋아하는 옥수수수염차와는 차원이 다른 향이다. 가공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냄새. 이 냄새는 딱 지금 계절이 아니면 맡아볼 수 없다. 더위로 지쳐가는 여름, 옥수수는 귀한 손님이 아닐 수 없다. 엄마는 잘 익은 옥수수를 쟁반에 꺼내어 차곡차곡 쌓았다. 연기는 바람이 향하는 곳을 향해 날갯짓하더니 이내 사라졌다. 옥수수 한 알을 떼어 입에 넣는다. 입에 톡 터지는 감촉이 좋다. 작은 눈이 둥그렇게 떠질 만큼 맛이 좋다. 한 자루, 두 자루, 세 자루 , 옥수수 대회 나간 듯 빠르게 옥수수를 먹었다. 엄마도 나도 옥수수를 먹어 배가 부르다며 빵빵한 배를 움켜잡고 웃는다.


어린 시절 밤하늘에 떠있는 별을 구경하며, 북두칠성과 별자리를 찾으며 옥수수를 먹던 추억이 떠오른다.

그때 먹던 옥수수 알은 더 작았고, 볼품없이 생겼었다. 못난이 옥수수라도 좋았다. 사람도 얼굴이 못생겼어도 심성만 진국이면 된다. 못난이 옥수수여도  맛은 최고였다.


나도 못난이 옥수수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볼품없이 생겨도 쫄깃쫄깃 맛있는 옥수수처럼 구수한 사람이였으면 좋겠다. 왠지 오늘은 옥수수 다섯 개는 너끈히 먹을 것 같은 기분이다. 옥수수로 빵빵해질 배를 떠올리니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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