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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엄마와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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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똥 Jul 16. 2022

저녁 7시면 그가 나를 덮친다

엄마, 늦은 나이에 어른이 되려나 봐요

오후 7시, 악마 얼굴을 하고 있는 그가 찾아오는 시간.

이 정도면 거부할 수 없는 숙명으로 여겨야 할까. 아니면 꿋꿋하게 싸워 이겨야 하는 걸까. 악마의 마법이 시작되면 나는 어김없이 손가락을  움직인다. 여기서 잠시 멈추는 듯싶더니 또다시 시작이다.  손톱은 너무 바짝 자르기보다 적당히 긴 편이 낫겠다.

그것만이 못된 악마와 싸울 수 있는 최대 무기란 걸 알고 있다.  대체 그는 누굴까.  왜 내게 찾아왔는지 궁금하다.



나는 평일 오후 7시면 퇴근 후 저녁식사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다. 그 시간 동안 아이들은 배고프다 난리, 장난감 하나 갖고 싸우는 건 다반사고 물 달라, 뭐 해달라 요구하는 게 많다. 하필  엄마로서 가장 바쁜 시간에 갑자기 그가 들이닥쳤다. 어묵을 썰다가도 양파껍질을 까면서도 상황 가리지 않고 예고 없이 찾아온 것이다.  오늘은 연약한 피부인  허벅지부터 시작인가 보다.  멀쩡했던 피부는 슬슬 달아오르더니  모기에 물린 것처럼 부풀었다. 간지러워 벅벅 긁었더니  피가 났다.  또 이번에는 종아리다. 하필 종아리 알이 많은 여린 피부를 공격했다. 이후 배로, 등으로 온 부위를 벌집 쑤셔놓듯 휩쓸었다. 온몸이 마치 모기에 물린 듯 울퉁불퉁 한 껏 달아오른 모습이 징그럽다. 그것보다 참기 힘든 건 가려움이란 녀석이다. 벅벅, 북북 리듬을 타고 이곳저곳을 휘져었다.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오기 시작한 건 약  한 달전쯤이다. 피부는 조금씩  애교처럼 간지럽기 시작했다. 별게 아닐 거라 믿었다. 하지만 어떤 날은 잠을 자면서도 피부 이곳저곳에서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만신창이가 되었다. 신기한 건  아침이 되 출근만 하면 말끔하게 사라지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렇게 악마는 저녁 7시면 나를 괴롭히다가 구름처럼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병원에 찾아가 진료를 봐도 이유를 알 수 없단다. 피검사를 해서 원인을 찾기 전까지는 두드러기 같은 피부 현상을 잡을 길이 없다고 했다. 할 수 있는 건 스테로이드제가 들어간 약을 먹어야 하고 그 약 때문인지  저녁만 되면 금세 꿈나라로 떠난다. 아침이 되어도 비몽사몽 , 몽나라 여행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병원에 다녀오는 길에 이런저런 생각으로 엄마가 떠올라서 휴대폰 전원을 켰다.

엄마에게 전화해볼까. 피부 때문에  힘들다고 하면  분명 걱정하실 텐데. 통화버튼만 누르면 되는데 도저히  손가락이 무거워서 누를 수가 없다.  조금 더 젊을 때는 감기만 걸려도 엄마에게 곧장 연락하던 자신이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밥 잘 챙겨 먹고 약 먹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말했다. 엄마가 어떤 말을 할지 잘 알고 있지만, 엄마의 걱정스러운 음성이 듣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그날 나는 엄마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이 순간을 참는다면 엄마는 셋째 딸이  건강하게 잘 지낼 거라  생각할 것이다. 휴대폰을 내려놓는다.


나이가 든다는 건, 웬만한 아픔쯤은 견뎌낼 용기를 갖는 것인가 보다. 이제야 조금씩 철이 드는 것 같은데,  그사이 엄마는 참 많이 늙었다. 문득 아프다고 투정 부리던 그 시절이 그립다.


저녁 7시, 아침에 먹은 약기운으로 악마는 찾아오지 않았다. 간혹 붉은 점들이 피부 속에서 불쑥불쑥 뛰쳐나오려 하지만 그보다 더 강한 스테로이드제는 악마를 잠재운다. 조금씩 졸음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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