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다음(daum) 메인에'옥수수빵 만들기'레시피기사가 떴다.떡, 빵 덕후인 나는 보자마자 쉽게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강력분 밀가루와 옥수수가루, 이스트, 깡통에 들어있는 옥수수를 구매했다. 퇴근 후 아이들과 함께 맛있는 옥수수빵을 만들 거란 기대로 직장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심지어 직장 동료에게 옥수수빵을 만들 거라며 한 껏 자랑했다.
오래전부터 나는 막걸리가 들어간 '옥수수 술빵'을 좋아했다. 둥그런 찜통에 냄비 모양 그대로를 유지한, 케이크처럼 예쁜 삼각형으로 잘라있는 모습을 보면 솔솔 군침이 돈다. 게다가 일반 빵에 비해 크기도 팔뚝만 하게 크다. 이렇게 큰 걸 어떻게 다 먹을 수 있냐고 하겠지만, 팔뚝만 한 술빵일지라도 술술 잘도 넘어간다. 오히려 술빵이 케이크처럼 작은 크기였다면 감칠맛 난다고 집어던졌을 거다. 자고로 술빵이란 큼지막해야 뜯어먹는 재미가 있는 법이다.
시골에서 옥수수 술빵을 사 먹을 수 있던 곳은, 가끔씩 파란 트럭에 먹거리를 잔뜩 싣고 다니는 아저씨였다.
아저씨는 동네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스피커를 켜고 방송했다.
"두부 사세요. 두부. 동태도 있습니다. 계란도 왔습니다."
우리는 아저씨가 동네에 왔다는 설렘과 기쁨으로 환호성을 치며 아저씨 목소리를 따라 했다. 아저씨 목소리는 낮은 톤이지만 호소력이 있었다. 두부와 동태를 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아저씨만의 독보적인 매력이 동네 전체에 울려 퍼졌다. 엄마는 우리를 보며 다급한 손길로 천으로 된 지갑에서 5천 원을 꺼냈다. 자칫하면 아저씨가 우리 집을 지나칠 수도 있다. 엄마는 분홍색 고무 슬리퍼를 신고 달려가며 아저씨를 불렀다.
"술빵이 통통한 게 아주 맛있게 됐네. 술빵 두 개 주시고, 계란 한 판 주셔."
"내가 이 집을 그냥 지나치면 노망난 거지. 이 집 딸내미들 때문에 술빵은 항상 챙겨 온다니까, 허허허."
술빵은 발효가 잘되어 위아래를 꾹 눌러도 포근포근했고, 노란 구름 위에서 통통걸음 걷듯 귀여운 자태였다. 냄새는 구수한 막걸리와 발효향으로 입맛을 자극했다. 빵이거나 떡 같기도 한데 뭔가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한 중간쯤에 있는 맛이었다. 어린 시절 술빵은 다른 어떤 간식보다 최고였다.
어른이 되어 시골을 떠나 살면서부터는 트럭 아저씨를 만날 수 없었다. 엄마도 더 이상 술빵을 사놓지 않았다.
시내를 걷다 보면 만두가게에서 만든 술빵을 볼 수 있었다. 그저 그런 술빵이거니 생각하고 만두 봉투만 달랑 들고 나오는 나는 진짜 어른이 되었다. 가끔 술빵이 먹고 싶어서 남편에게 사 가자고 하면 요즘에 그런 걸 누가 먹느냐고 한다. 하긴, 그 시절에는 먹거리가 흔하지 않아서 술빵이 주는 위로는 참 따뜻했다.
시대가 변하니 입맛과 취향은 많이 달라졌다. 우리 아이들만 보더라도 피자와 햄버거는 기본, 젤리와 사탕은 입에 달 고사니 밋밋한 술빵을 좋아하기나 할까. 빵집에 가면 술빵과 유사한 달콤한 카스텔라도 있고, 소시지가 쏙쏙 박힌 소시지빵도 있다. 남편은 소시지빵을 좋아하고, 아이들은 카스텔라를 좋아한다. 나는 그런 와중에도 담백한 바게트 빵이 좋고,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는 이스트 냄새 가득한 밋밋한 식빵이 좋다.
오늘은 아이들을 위한 '옥수수빵'만드는 날!
빵 만들기에 참여할 선수들은 우리 아이들과 엄마다. 먼저 그릇에 강력분을 담아 미지근한 물에 반죽을 하고, 반죽에 이스트 한 봉을 넣어 주물럭주물럭해주었다.
아이들이 직접 만든 반죽은 방바닥에 찧고 굴러다녀서 놀이 용도로 사용했다. 내가 만든 반죽을 두 시간 정도 랩을 씌운 후 발효해주었다. 반죽 크기가 처음보다 좀 부풀었다 싶을 때 옥수수 가루와 옥수수를 넣고 찜통에 쪄주었다. 옥수수빵은 제법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고, 구수한 발효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맛있겠다!'
젓가락을 찔러서 반죽이 묻어 나오면 조금 더 익혀야 한다고 한다. 이제 부풀대로 부푼 옥수수빵을 접시에 담았다. 어? 근데, 먹어보니 소금과 설탕 비율이 맞지 않아서 아무 맛도 나질 않았다. 그냥 멋대가리 없는 밋밋한 옥수수빵. "에이! 맛이 없어 퉤 퉤 퉤!"
아이는 한 입 먹더니 이건 아니라며, 빵을 내던졌다. (어떻게 만든 빵인데...)
평점 ★ (별 한 개도 아깝다는 아이 말 )
나 역시 옥수수빵을 한 조각 먹어보고 맛이 없어서 못 먹겠더라.
오늘따라 소금, 설탕 간이 잘 된 뽀송뽀송 추억의 '옥수수 술빵'이 생각나는 아침이다.
그 시절 옥수수 술빵은 참 맛있었는데... 문득 추억이란 이름이 주는 구수한 그 맛이 그립다.